2. 지방에서 성우를 꿈꾼다는 것.

by 성우 김태리

요즘에도 지방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는 성우 지망생들이 존재한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가... 하는

그 막막함을 나도 알고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스무 살 무렵, 바로 내 이야기였으니까.


요즘 서울에는 ‘성우’라고 검색하면 직업으로든 혹은 취미로든 배울 수 있는 기관이 많다.

하지만 지방은 사정이 다르다.


내가 아는 한 부산, 대구, 대전에 각각 한두 곳, 혹은 일반 연기학원에 셋방살이로 껴있는 경우가 전부다.

성우연기를 전문으로 가르치고 녹음실까지 갖춘 곳은 손가락에 꼽힌다.

지방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출발선’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

2000년대 초, 지방에서 성우를 준비한다는 건 ‘길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당시 성우를 공부하고 싶다면 MBC나 KBS 방송사의 아카데미에 등록해야 했다.

부산에도 MBC 아카데미가 있었지만 주말반뿐이었고, 정보도 미미했다.

나는 아카데미의 존재를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 되어서야 알았다.


나는 연극영화과는 꿈도 못 꿔 보고 일반학과에 떠밀려 들어갔고,

학비 부담으로 장학금이 절실해서 하기 싫은 공부에 매달렸다.

동아리도 선택지에서 지웠다.

방송부나 연극동아리에 들어가면 되지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궁금했던 건 성우니까.

그리고 새내기 시절 MT에서 겪은 불쾌한 경험 탓에 동아리는 내게 ‘가지 말아야 할 공간’이 되어버렸다.


대신 나의 안식처는 도서관이었다. 스케줄표에 빈칸이 생기면 곧장 도서관으로 향했다.

뭘 읽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연기 관련 서적이나 소설 등,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 읽었다.

돌이켜보면 문자를 머릿속에서 3D로 변환하는 훈련 과정이었던 거 같다.

게다가 그 작업은 글 읽는 걸 힘들어하지 않게 하는 훈련도 덤으로 됐다.

(요즘 친구들은 글 읽기를 힘들어하더라. 그런데 난 왜 자꾸 오독을 하니...)


집에서는 TV앞에만 있었다.

착한 동생이 화를 낼만큼 더빙애니메이션을 본방사수하고, 녹화해서 보고, 빌려서 봤다.

그러나 아무리 애니메이션을 봐도

“뭘 어떻게 해야지 성우가 될까?”라는 질문에는 답이 보이지 않았다.


답답함이 극에 달했던 어느 날,

시내의 한 대형서점에 방문했을 때 계시처럼 팸플릿 하나가 눈에 박혔다.


<동화구연>


세상에! 내가 찾던 게 이런 거였다.


발성과 호흡에, 변성까지 포함된 주 1회, 3개월 과정.

가격이 얼마든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길이 없다고 여겨졌던 지도 위에 희미한 점 하나가 드러난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창밖 풍경이 새롭게 보였다.

뭘 해야 하는지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는 드디어 알게 되었으니까.


지방에서 혼자 고민 중인 당신에게 전하고 싶다.

길이 안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작은 표지판은 반드시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

찾을 때까지 눈을 떼지 말자.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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