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 믿음이 내 첫 무대였다.

by 성우 김태리

성우를 꿈꾸던 나에게 동화 구연 교실은 작은 기적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주 1회, 3달 정도 되는 과정의 첫날,

나는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그곳에는 대부분 인생 2막을 준비하시는 지금의 내 나이대 분들이 계셨다.

그 사이에 스무 살짜리인 나는 당연히 막내였다.


첫 수업은 그렇게도 갈증이 났던 발성과 호흡이었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따라 하며 매주 변성에 구연, 손유희, 동요까지 섭렵했다.

선생님이 시키면 맨 먼저 앞으로 나가서 “방귀 뽕뽕~”(이 대사는 정확히 기억난다.) 거리며

율동을 하면서 구연을 했었다.

40~50대 선생님들 눈엔 내가 그저 ‘귀여운 꼬마’쯤으로 보였을 테지만,

내 마음은 “이것이 내가 찾던 소리다!”라는 생각이 들며 숨이 트였다.


그렇게 종강이 가까워질 무렵, 선생님 한 분이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건넸다.


“이번에 대학생∎선생님 구연동화 대회가 있는데 나가 볼래요?”


‘제가요? 제가 그럴 실력이 되나요? 이제 겨우 10주 배웠는데?’라는 물음표가 떠다니는데

선생님이 더 적극적이셨다.


혹시, '저 친구는 할 수 있겠다.'라는 믿음이 있으셨던 건 아닐까?

그게 아닐지라도 그때의 선생님은 내게 가장 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한번 해보자, 할 수 있다"라고 말하니

그 어떤 이유에서건 가슴이 벅차오르기엔 충분했다.


레슨비도 거절하셨기에

배운 건 찰떡같이 해내려고 연습을 거듭했다.


(지금의 대본 체크와 크게 다를 게 없는 거 같은 과거의 대본)

캠코더를 관객 삼아 수십 번씩 대사와 몸짓을 반복연습했다.


엄마 앞에서 첫 시연을 보이던 날,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엄마가 딱 한마디 했다.

“괜찮네.”

나에겐 그 한마디가 이미 합격(?) 도장이었다.


쿨하게 말했지만 ‘저거 그래도 좀 하네.’ 생각하셨단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아빠의 반대'를 끝까지 거들지 않았다.




대회 결과는 2등, 최우수상.

대상은 아니었지만, 상장을 쥐던 순간

‘할 수 있겠다’라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선생님께 뒤늦게나마 또 한 번 이렇게 글로 마음을 전한다.


그때 배운 동화구연 수업이, 지방에서 성우 공부를 하기 위한 나의 첫걸음이었고,

지금의 동화 낭독과 애니메이션 캐릭터 연기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이다.


지방에 있다고, 정보가 부족하다고 너무 주저앉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튜브에서 동화 구연을 찾아서 모사라도 해보자.

그리고 잘 찾아보면 동화구연대회나 시낭송대회가 의외로 많다.


나도 ‘한 번 쪽팔리고 말지, 뭐!’ 하고 당당히 무대에 올라가서 쭈그러져 내려온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도전한 내가 참 대견하다고 생각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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