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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Aug 22. 2024

할머니가 되어버린 엄마


엄마의 병원 일정이 있는 날이었다. 늦잠을 자서 여섯 시 십 분에서야 눈을 떴다. 떠지지 않는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려 급하게 커피를 만들어 들이켰다. 매일 복용해야 하는 내 약들도 한 주먹 입에 털어 넣었다. 여섯 시 오십 분에는 출발을 해야 제때 부모님 댁에 도착하는데, 머리를 감을 시간이 애매하다. 환자 보호자 외모가 지저분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쏜살같이 머리를 감고 타월로 물기만 제거한 후, 급하게 가방과 차키를 챙겨서 나왔다.


출근길 정체를 뚫고 사십 분 만에 부모님 댁에 도착했다. 아빠가 챙겨 놓으신 엄마 진료카드와 신용카드를 지갑에 넣고서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출발했다. 보통 병원까지 가는데 삼십 분이 걸리고 주차하는데 20분이 걸리는데, 오늘은 십 분 만에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지난번 뇌 PET-CT 결과 주치의는 파킨슨 질병이 의심된다고 뇌 mri와 파킨슨 척도 검사를 받도록 오더를 냈다. 오늘 검사는 mri이다.

아홉 시에 채혈을 해서 신장 기능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 후에 열두 시에 뇌 mri를 찍는 스케줄이었다. mri를 찍기 전 두 시간만 금식을 하면 됐기에 채혈 후 병원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이후 영상 의학과로 이동해서 대기를 했다.

지팡이를 짚고 구부정하게 휜 등으로 어기적 어기적 걷는 엄마를 병원 이곳저곳으로 모시고 다니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노인네가 두 시간이나 앉아서 대기하려니 힘이 들었는지 엄마는 나란히 붙어있는 의자 세 개에 누워버렸다. 대기실에는 비슷한 연배의 환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눈총 주는 사람도 없었고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였다.


엄마 차례가 돼서 호명이 되었고, 간호사는 조영제를 투여할 주사 바늘을 꽂기 전에 환자복으로 환복을 하라고 했다. 탈의실로 들어가서 지팡이를 한켠에 놓고 상의를 벗는데 엄마가 비틀거린다. 나는 아기 옷 갈아 입히듯이 만세를 하라고 시킨 후에 상의 두벌을 벗겼다. 내 어깨가 아팠다.

이제 하의를 벗기고 나니 사시사철 입고 있는 무릎 보호대가 나온다. 엄마가 이거는 무릎이 시려서 절대로 안 벗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이거를 벗어야 영상을 찍을 수 있다고 두 번이나 말했는데도 막무가내다. 옆에서 같이 옷을 갈아입던 할머니 한 분이 '답답한 양반이네'라고 말하자 엄마가 그 할머니를 노려봤다. 그 할머니의 보호자는 할머니를 모시고 저쪽으로 이동해서 우리 엄마와 멀찌감치 떨어뜨려 놨다.

그제서야 엄마는 무릎 보호대를 벗었다. 나는 엄마에게 다시 만세를 시키고 푸른색 원피스 환자복을 입혔다. 또 내 어깨가 아팠다.


짜증이 났다. 옷을 벗은 엄마의 몸은 더 쪼그라들어 있었다. 그 간섭쟁이 할망구는 자기가 뭔데 답답하다고 하나. 답답한 건 난데. 상관 말라고 한 마디 했었어야 했는데 왜 아무 말도 못 했나.

딸아이가 아기일 때에는 목욕시키고 옷 갈아입히고 하는 게 힘은 들었어도 나에게 웃음꽃을 주고 행복감을 줬었다. 세월이 흘러 나도 나이를 먹어 이제 중년이 되었다.

엄마를 돌보는 건 내 체력도 부치고 엄마의 그 이상한 고집을 꺾어야 일이 진행이 된다는 게 나를 지치게 만든다.

피곤하다.


그런데 '엄마도 아기인 나를 키우면서 힘들면서도 행복했겠지?'라는 생각이 드니까, '내리사랑' 뭐 이런 거 그냥 집어치우고 '나는 그냥 못된 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살았던 기간에 엄마가 나한테 했었던 말들과 행동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화가 치밀어 오르고 엄마가 밉지만, 쪼그라든 몸을 지팡이에 의지해서 걸어 다니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를 충분히 나쁜 년으로 만들어 버린다.

엄마는 평생 나를 조정하면서 살아왔는데 할머니가 돼서는 이런 식으로 나한테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구나.


엄마는 왜 이렇게까지 찌그러든 거야..

엄마가 더 미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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