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 공사

by hotlionheart

안방 욕실에는 욕조가 있다. 어쩌다 한 번씩 목욕 소금을 풀고 반신욕을 할 때는 유용한 물건이지만, 그 외에는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과체중인 몸으로 욕조 턱을 넘어갈 때마다 중심을 잡기가 어렵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을수록 중심을 더 잡기가 어려워졌다. 작년 말부터는 욕조에서 나올 때 왼편 수건걸이를 붙잡고 나오게 되었다. 언젠가는 이 수건걸이가 떨어져서 큰 사고가 날 거라는 불안감이 들면서도 자꾸만 내 몸을 의지하곤 했었다.

그러다가 결단을 내렸다. 욕조를 철거하기로.


집 앞 상가에 있는 인테리어 사장님께 전화를 했다. 집 앞에 있으니 우리 아파트 구조와 상태를 제일 잘 알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욕조를 걷어내고, 바닥과 벽타일을 교체하고, 수전과 변기 등 일체를 교체해 달라고 하고서 견적서를 받았다. 코로나 이후로 건설 자재비가 많이 인상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가 전에 알고 있던 공사비의 두 배가 견적서에 적혀 있었다.

잠시 갈등을 하긴 했지만, 내 몸 다쳐서 병원 신세 지는 것보다는 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사 기간은 설 전으로 잡아 달라고 했다. 그게 지난주 수요일이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사장님 트럭을 같이 타고 자재 업체로 향했다. 타일이며 세면대, 수전, 수납장 등을 보여주는데, 예쁜 건 다 기본 비용보다 비쌌다.

"청소가 간편하고 유지가 쉬울 것"이라는 기준을 세우고 물품들을 정했다. 벽과 바닥 타일은 크기가 크고 적당히 밝으면서도 어두운 것을 골랐다. 수전 기타 메탈 제품은 요즘 유행하는 크롬 제품으로 선택했다. 수납장은 작은 싸이즈의 블랙장으로 했다. 완성된 욕실을 머릿속에 그려보니 예뻤다.

인테리어 사장님이 주민 동의서를 받고, 관리사무소에 공사 신고를 하고, 공사 안내문을 엘리베이터와 일층 로비에 붙였다.


어제는 보양작업을 하는 날이었다. 나름 안방의 짐을 치운다고 치워놨는데, 사장님이 침대, 책상, 서랍장 등도 다 빼야 된다고 하셨다. 낑낑대며 사장님과 함께 짐을 빼서 거실에 테트리스 쌓기를 했다. 사장님은 왼편 식탁 자리와 오른편 거실 자리에 각각 봉들을 세우고 비닐 천막을 치셨다. 바닥에도 공사용 장판을 까셨다. 안방 벽과 바닥에도 보양작업을 하셨다.


드디어 오늘 철거 당일이 되었다. 다른 집 인테리어 할 때 드릴 소리가 집 전체에 울려서 뇌가 흔들릴 것 같았다. 바로 윗집에서 공사 소리가 났는데, 알고 보면 같은 라인 5층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만큼 소리가 크게 울릴 것 같아서 아침부터 피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드릴 소리가 크게 울리지 않았다. 공사하는 집 자체에서는 소음이 그리 크게 들리지 않은가 보다. 그래도 두 시간을 들으니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아서 딸아이와 카페로 도망을 갔다.


도망을 나오기 전에 재활용을 버리고 나가려고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오른쪽 엘리베이터는 인테리어 자재를 나르기 위해 내부 보양 작업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왼쪽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위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는데, 재활용 쓰레기를 든 사람들과 외출하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꽉 찼네”라고 혼잣말을 했는데, 안쪽에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트레쓰!” 그리고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나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2주 전에는 5층 공사, 3주 전에는 고층에서 공사가 있었고, 한 주 쉬고 우리 집에서 공사를 하니, 충분히 이해는 된다. 그렇다고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 옆에서 수레에 물건을 싣고 나온 사장님도 그 말을 같이 들었었다. 사장님은 다섯 시 반쯤 오늘 공사 분량을 마치고, 수레를 끌고 내려가려다가 다시 들어와서 현관 앞을 빗자루로 쓸어주셨다. 그러면서 점점 갈수록 공사하는 게 쉽지가 않다고 하셨다.

구축 아파트에 사는 이상 이사나 기타 이유로 인테리어를 할 수밖에 없는데, 어쩌라는 건가.

구축 아파트 주민으로 사는 죄인가.

이곳에 오래 살기도 했고, 지인들도 많고, 자연환경이 아름다워서 여기 아니면 다른데 못 살 것 같았는데, 그 말 한마디에 신축 아파트로 이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안의 그 중년 여성분아. 부디 그대 집은 수리하지 말고 평생 사시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결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