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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희 Jun 13. 2019

보물

첫 마음을 잃은 그대에게

소풍을 가면 보물 찾기라는 놀이를 하곤 했다. 내가 너무나도 싫어하던 놀이다. 도대체 보물이 어디 있다는 것인지 찾으려 나서도 보이질 않으니 쉽게 포기하곤 했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용케도 찾아내던 보물. 숨겨둔 사람의 의도를 모른 채 숨은 보물을 찾는 것은 맨 하늘에 대고 헛손질을 하는 것만큼이나 바보처럼 느껴져서 정말이지 재미가 없었다. 



숨겨놓은 물건 찾기보다 더 황당한 건 내가 숨겨놓은 번호를 찾지 못할 때이다. 바로 비밀번호. 

살다 보니 비밀번호가 쌓여간다. 은행통장 비밀번호부터 인터넷 로그인 비밀번호까지 엄청나다. 그 많은 비밀번호 다 외울 수가 없다. 통일하면 좋은데 불가능하다. 쇼핑몰이며 각종 사이트의 비밀번호를 하나로 통일하고 싶지만 요구하는 비밀번호의 안전기준이 달라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어디 인터넷 비밀번호만 그러랴. 중요한 물건도 나만 보는 곳에 잘 보관해 둔다는 게 가끔 어디에 뒀는지 새까맣게 기억이 안 날 때가 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시간이라도 쫓기면 그 급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번호 하나 정확히 알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을 그걸 몰라 헤매고 돌아가기를 밥먹듯이 한다. 시간을 낭비하고 체력을 소모하고 결국 찾아내거나 다시 만들어 내는 비밀번호. 숨겨놓지 않았다면 그럴 일도 없을 것을... 숨기고 가려두어서 나조차 기억에서 희미해지는 바보 같은 짓이라니... 


비밀번호 잊고 살 듯 꿈을 잊고 사는 경우가 있다. 비밀번호 숨기듯 꿈을 숨겼기 때문이다. 누가 볼까 봐, 누가 알까 봐, “네가?” 라며 알게 된 누군가가 비웃고 조롱할까 봐 두렵고 부끄러워 숨겨두었던 꿈들은 얼마나 가려진 채 잊혀 갔을까.     

마흔이 넘어 겨우 알게 된 것은 비밀번호를 자꾸 떠올려야 잊지 않듯이 꿈도 자꾸 꺼내보고 되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잊지 않고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겠는가.     


한 번은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아이들 몰래 숨겨놓은 적이 있다. 

혼자 있을 때 먹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 못 볼만한 높은 곳에 숨겨 두었는데 몇 달 후에 선반장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것이다. 아차.. 싶었다. 내가 숨겨놓고 내가 몰랐다. 잠시 숨겨놓는다는 게 숨긴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이다. 과자 하나쯤이야 괜찮지만 이루지 못한 꿈을 부끄럽다고 숨기고 안 될 거라고 포기하고 지레짐작으로 아예 볼 수조차 없는 가려진 곳에 둔 나의 꿈 조각은 없는지 되돌아보자.     

그러다 영영 잊어버려 내가 꿈이 있긴 했었는지조차 잊고 살게 되기도 한다. 

물론 찾을 일이 없다가 영영 없었던 것처럼 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내게로 향하는 비밀 번호를 잊어버리는 일이 있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이것저것 일을 벌여놓고 있다가 닥치는 대로 벌여놓은 일을 처리하기 급급해서 하루하루 살다 보면 왜 이러고 있는지조차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이른바 슬럼프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수렁은 살다 보면 누구나 찾아오기 마련이다. 문제는 슬럼프라는 시기가 아니라 그 시기를 어떻게 딛고 일어서냐는 거다. 바닥을 쳤다면 치고 올라오는 것만이 길이듯이 바닥이라고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다시 옆을 보고 위를 보고 내가 어떤 모습인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피폐해진 자신을 다독이고 다시 천천히 올라오는 것. 우리에겐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 아닐까. 슬럼프에서 나를 건져내는 건 두리번거려 찾아내려는 누군가의 도움보다도 내가 온전히 원하는 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고요함과 혜안일 것이다.      



내게 보물처럼 갖고 있는 물건이 하나 있다. 바로 아이들이 어릴 때 입던 배냇저고리 상자다. 아이들 셋이 태어나서 한 달 동안 입었던 그 앙증맞은 배냇저고리... 어쩌다 삶아 널어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그때의 감사함과 소중한 시절로 돌아가 가슴에 아지랑이가 핀다. 

분명 소중한 것인데.. 갑자기 찾으라고 하면 나는 또 기억이 가물거릴 것이다. 물론 어딘가에 있으니 잃어버린 것은 아니라는 마음에 안심은 되지만 말이다. 

내가 아이들을 키우다 힘들고 지칠 때, 내 새끼지만 이뻤다가 너무 미워질 때, 아이들의 어릴 적 사진을 들여다보면 그 마음이 다시 새록새록하게 떠오르듯, 아이들 신생아 때 입었던 배냇저고리를 보면 미운 마음이 싹 사그라들고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하던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곤 한다. 내가 바란 것은 똑똑하고 공부 잘해서 멋진 대학 가고 승승장구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내가 바란 것은 나의 아이들이 많이 웃고 세상이 참 살만하고 좋은 곳이라고 믿으며, 엄마의 아이로 태어나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행복한 아이로 자라 주는 것이었다. 그것이면 족했다. 그런데 자꾸만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가 말이다.      


첫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그 길로 향하는 비밀의 문을 걸어 잠그지 말고, 수시로 훈풍이 불도록 문을 열어두고 길을 내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내일은 고이 접어둔 우리 아이들의 배냇저고리를 꺼내 폭폭 삶아 또 한 번 양지바른 곳에 나란히 걸어 두어야겠다.           

나의 1호, 2호, 3호


BGM_Peter, Raul, & Mary - Puff the Magic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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