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로 도망갔다 (1)

파리 한 달 살기

by 양갱
출발


나는 지금 파리에 가고 있다.


내 인생 두 번째로 나가는 외국이다. 처음 간 곳은 파리였고 지금도 파리에 가고 있다. 그 외에는 가본 곳이 없다. 어쩌다가 파리에 두 번씩이나 오게 되었지는 다음에 좀 이야기하기로 하자. 전역한 후 나를 잡아두던 모든 문제를 그대로 놔두고 나는 프랑스 파리로 도망쳤다.


나를 프랑스 파리까지 실어다 준 A350-900


현대기술의 집약체인 날개 달린 깡통은 장장 12시간을 날아가고 있다. 나는 제일 편한 바지를 입고 의자에 반나절 동안이나 앉아 있다. 허리는 아프고, 비행기는 아직도 낯설다.


비행을 할 때면 초자연적인 기분을 느낀다. 어떤 대단한 여정의 시작들이 항상 하늘을 나는 걸로 시작하는 것도 멋지고, 인류가 불가능하게 보였던 엄청난 과제를 그저 운송 수단의 하나로 전락시켜 버린 것도 멋있다. 군대에서 읽었던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이 기억났다. 여기에는 비행과 사람들의 인생에 관한 많은 비유가 담겨 있는데, 그 문장들이 희미한 개념으로 남아 생각나고 잊히고를 반복했다. 그때는 책을 보며 하늘을 나는 것과 여행하는 것이 얼마나 멋있을지를 상상하며 혼자만의 낭만을 되새겼다. 그 시절 이층침대에서 여행의 꿈을 꾸던 나는 어느새 파리행 비행기의 딱딱한 이코노미 좌석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짐을 싸고, 희망을 품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 욕구를 회복한다. 곧 다시 돌아가 공항의 중요한 교훈들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십몇 시간이 지속되는 비행기에서 하늘을 나는 경이로움에 어느새 적응하게 되었는데, 때때로 커다란 비행기가 그 자국을 그리는 스크린을 통해, 구름뿐인 창문 풍경을 통해 내가 하늘을 난다는 경이로움을 상기할 수 있었다.


도착

공항의 불빛이 참 멋있다. 뭐랄까, 반겨 준다는 표현으로는 전달이 안 될 듯하다. 14시간의 비행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비행기의 속도로 눈동자를 스치는 일렬의 불빛들은 감동을 자아낸다.


이렇게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안전하게 착륙해서 감사하다고 기도를 드렸다. 확실히 비행기만 타면 교회에 다닐 때보다도 기도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도착한 파리는 저녁이다. 내 몸은 아직 한국의 시간을 살고 있다. 지금쯤 밤을 샌 새벽 세 시 정도의 컨디션이다. 이제 지하철을 타고 파리 시내로 들어가서, 숙소를 찾아내서 잠을 푹 자면 오늘 할 일은 끝난다.


계속 드는 생각이다. 생판 남의 나라인 프랑스에 갑자기 와야겠다는 발상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 완벽하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것도 한 달이다. 해외라고는 인생에서 딱 일주일만을 나갔던 내가 한 달 동안의 여행을 가겠다고 결정을 내리고, 표를 끊고 비행기를 탔다. 내 결정이 순간의 감정에 의해 지어진 것은 아닌지, 이것이 이성적으로 옳은 결정이었는지를 반복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지금이 정확히 그렇다.

인천공항에서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외국인들을 보면 우리는 그들을 이방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순간부터, 내가 이 사람들의 집에 찾아가는 이방인으로 입장이 바뀐 것이다.


내가 프랑스 파리에 가면, 프랑스어를 하는 프랑스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러니까 나는 평생 한국에서만 살았는데, 내가 외국인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의 삶 한가운데 툭 던져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이방인이라고만 생각했던 사람들 가운데에서 이방인이 되는 경험은 굉장히 비일상적이다. 이게 맞는 선택일까? 두려움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