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로 도망갔다(2)

'파리 한 달 살기'의 2번째 글

by 양갱
1.PNG Boulainvillers 역 앞 풍경. 첫날 찍은 건 아니고 며칠 지나서 찍었다


나는 공항에서 나왔다. 프랑스로의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는 셈이다. 여행자의 관문인 공항은, 기대를 증폭시켜주는 시설의 역할도 한다. 여기저기 표지판에 써있는 프랑스어들을 보며 점점 실감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공항에서의 이야기는 다음에 한 편 따로 적겠다.


낯선 도시에서의 첫 풍경은 대충 이런 느낌이다. 베이지색의 석재 건물들은 내가 진짜 파리에 왔음을 실감케 했다. 기본적인 주거 건물들의 톤이 한국과 너무 다르다는 것. 정말 먼 나라에 왔다는 것이 체감된다. 그저 도시 한 구석을 꾸며 놓은 것이 아니다. 도시 어디를 가도 이런 모양에 이런 색이 보인다.


한 시간 전에, 나는 공항에서 나와 출국심사를 하고, 파란색 노선인 RER B선에서 노란색 노선인 RER C선으로 갈아탔다. 여행자의 관문인 공항은, 기대를 증폭시켜주는 시설의 역할도 한다. 여기저기 표지판에 써있는 프랑스어들을 보며 점점 실감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공항에서 이야기는 다음에 한 편 따로 적겠다.


다시 RER C선, 나는 지도에서는 두껍고 노란 선으로 표시되는 노선의 어느 부분에 있다. 한 달 동안 내 집이 되어줄 숙소로 향하는 중이다. 가는 길에도 계속 의문이 들었는데, 이 노선은 중간에 두 갈래로 갈라지는 노선이기 때문다. 목적지를 확인하려 글자를 일일이 대조해 보고 탔음에도 잘 탄 것이 맞나 고민됐다. 옆에 있던 여성분에게 되도 않는 프랑스어, 영어와 손짓을 섞어 가며 물어봤다. 다행히 영어를 할 줄 아는 분이셨고, 자기도 퇴근하는 길인데 자기 집이 내가 가는 방향이란다.


다행히 열차는 잘 탔다. 그리고 지금은 열차에서 내려 캐리어와 백팩을 꼭 잡은 채 숙소의 철문 앞에 서 있다. 하늘은 깜깜하고, 도보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도로의 가로수에는 편향되고 못생긴 내용의 현수막 대신 크리스마스의 반짝이는 조명들이 침착하게 빛나고 있었다. 한참을 가만히 서 있다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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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가 여기에 오게 되었는가?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를 갔다. 18개월 후 전역 두 달 만에 수능을 치렀다. 그리고 지금은 지구 반대편이다. 수많은 질문과 가려진 영역들의 의문을 붙잡고 머나먼 땅으로 떠나왔다. 지금 내 머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생에서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해야 할 순간이 있었을까?' 지금 당장 내가 내 앞의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 비로소 나는 지금 완전한 자주권을 쥐게 되었다. 무얼 먹든, 어디에 가든, 무엇을 하든 아무도 상관하지 않으며 이것은 순전히 내 의지에 의해 이루어질 터였다.


그러나 이것이 가장 큰 고민인 이유이다. 나는 여느 대한민국의 학생들과 다르지 않게 중학교 때는 자사고에 가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수능을 잘 봐서 이 글을 읽는 당신이라도 적당히 괜찮다고 생각할 만한 대학교에 가야 했다. 군대에서는 전역만을 바라보며 달려왔다. 전역하자마자 재수를 하며 다시 한번 대학교의 목표를 두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앞에 뭐가 있지?


대학교에서 학점 4점대 넘기기, 토익 900점 넘기기, 매일같이 어색한 사람들과 술 먹으러 가기는 절대로 내 버킷리스트에 오를 만한 목표들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모두가 하던 것을 어설프게 따라하면 그게 멋지고 든든한 목표로 보였지만, 이제는 아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그게 절대로 나의 예시는 아니었고.


전역을 하고 두 번째 수능을 본 이후로부터 계속 든 생각은, 내가 사막 한가운데에 던져졌다는 생각이다. 밑도 끝도 없이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20대라는 시절이 나에게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나 가슴으로나 알고는 있는데, 당장 내가 어디에 발을 내밀어야 할지를 모른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내가 좋아했던 것들은 어찌보면 모두 싫증 나는 노력으로부터의 일탈이었다. 공부가 싫어서 종이모형을 만들고, 기말고사를 피해 한강으로 자전거 라이딩을 나갔다. 이런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원해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하여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이 대충 이렇다. 아마 수많은 사람들이 나랑 같은 고민을 하고 있겠지?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고 전문가가 되어 가는 주변 사람들이 두렵다. 내가 저렇게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누군가는 순전히 취미로, 누군가는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며 인고하고 나아간다. 나도 저렇게 돼야겠다는 가슴 뛰는 결심이 들지만서도 그만큼의 노력을 할 자신도, 그만큼의 애착을 가지는 분야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게 잠깐의 두려움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는 안다. 결국 언젠가의 나는 이런 고민들을 다 먹어치우고 생산해 낸 결과들을 보고 내가 어떻게 이 길을 걸어왔는지를 까먹겠지...





에어비앤비 앞에서 10분 정도를 기다렸다. 철창으로 된 아파트 대문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재미있는 풍경을보게 되었다. 작은 소형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춰섰다. 어머니와 딸이 자동차에서 내렸다. 짐을 챙기더니 어머니는 딸에게 작별을 고하는 말들을 했다. 한참 동안 프랑스어로 된, 이해는 못하지만 너무나 뻔할 듯한 사랑의 말들을 주고받더니, 어머니는 마지막 인사로 Bisous!(비쥬)를 외쳤다. 딸도 그대로 인사를 하고 가족은 헤어졌다. 짧은 가족극을 보고 나니 부모와 자식간의 애정이란. 여러 생각이 들면서 애틋했다. 또 무엇보다 남들의 감동적인 일상을 눈 앞에서 펼쳐지는 단편극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내가 프랑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이렇게 들여다볼 기회는 없었겠지?


그런 여러 가지 생각들에 잠겨 있는 가운데, 집주인인 발레리씨가 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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