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탈출은 지능 순
- 기회가 있을 때 관둬.
- 아니, 차장님. 크크. 이제 들어온 신입한테 나가라니요. 크크.
- 계장님, 기회는 지금 뿐이야. 나처럼 결혼하고 애 낳고 하면 못 나가. 우리 남편도 지금껏 얼마나 힘들었는데.
- 진짜 은행이 그렇게 아니에요?
- 난 이 은행밖에 안 다녀서 모르겠지만, 여긴 딴 데보다 연봉조차 훨씬 적잖어. 게다가 이런 상명하복의 조직이 2023년에 또 있냐고. 공무원은 명예라도 남지. 은행원은 욕만 먹는 직업이야.
- 근데 전 지금 좋은데요, 선배들도 다 좋고.
- 잘 생각하셔. 물론 우리 지점 인력구성 좋지. 15년 경력상 이런 점포는 흔치 않아. 나도 지금 처음이다, 직원들 다 좋은 건. 하하.
블라인드에 ‘은행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하트를 눌렀다.
나는 머리가 나빠서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인가.
차장이면 뭐 하나, 사표 던지고 나가면 이 경력 대우해 주는 데도 없다.
지난달에 퇴사한 동기가 퇴직금을 1억 받았다고 했다.
1억을 받고 퇴사하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어리다.
이 많은 주거비용을 당장 어떡할 것인가.
욕심이 눈앞을 가리고 있는 이 기분.
- 자기야, 우리 지방 가서 살까. 그럼 지금보다 더 마음 편하고 생활도 여유로울 것 같아. 좁은 집에서 이렇게 많은 원리금 내면서 사는 거 어딘지 억울해.
- 또 그런다. 요즘 세상에 지방 가서 애들 키우자고?
- 지방에도 좋은 학교 많아.
- 지방에 가서 서울사람이 어떻게 영업해. 텃새 못 들어봤냐고. 주말에 좀 쉬어. 내가 애들 볼게. 힘들어서 그래. 어제 은행와서 욕하는 사람들 또 있었어?
-..
- 말할 기운도 없구나.
머리가 나쁜 탓에 여기 남아 있는 것인가, 손에 쥔 것을 놓지 못해 여기 남아 있는 것인가.
다시 또 출근길.
그냥, 나는 내가 좋아하는 우리 직원들 하대리, 김대리, 막계장 보려고 여기 남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련다.
오늘은 일단 그렇게 생각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