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또 보자
직원이 자기는 ‘라김’을 먹으러 간대서 대체 그게 뭐냐 하니 ‘라면과 김밥’이라고 한다.
듣기 별로다.
흥. 별다줄.
“뭐야? 지금 저 말, 지금 저 말 들었어?”
새로운 ‘요즘’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다. 음, 하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던 말인 듯, 쓱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그 말이 축구를 중계하는 아나운서의,
“사나노보리가 아프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중략)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말에 대해.
내일 또 보자.
그 말을 들으면 나는 단박에 행복해진다.
가오리 작가의 글을 어려서부터 너무 여러 번 본 탓에 내가 그녀를 따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내 성향이 그러했는지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아무튼 이 에세이도 참 공감되는 이야기다.
자기 전, 아이들에게 나눈 나의 인사는 늘 변함이 없이,
- 푹 자, 내일 봐.
등교하거나 출근할 때도,
- 차 조심하고, 이따 봐.
공부 열심히 하라거나 친구들과 잘 지내라거나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는 인사는 해 본 적이 없다.
특히 공부 열심히 하라는 인사는 너무 싫어하는 말이라 사는 동안 내 입에서 나올 일은 없을 것 같다.
내일 보자거나 이따 보자는 말은 참 다정하고 좋다.
내 옆에 앉은 직원은 퇴근할 때, 꼭 나에게 같은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 차장님, 내일 봬요!!!!
그렇게 다정하게 들릴 수가 없다.
먼저 가 보겠습니다, 혹은 수고 많으셨습니다 등등을 대신하여 내일 보자는, 경쾌하고 다정한 목소리.
이왕이면 그 사이에 ‘또’를 넣어주면 더 좋겠다.
내일 보자거나 이따 보자는 말에는
오늘 봐서 참 좋았고
못 보는 동안 보고 싶을 거고
내일 꼭 만나자는 뜻이 함축돼 있는 것처럼 들린다.
물론 T 100%인 그 직원은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줄 알면 기겁하겠지만, 내가 그녀를 향해 웃는 것은 다 의미가 있다.
내가 그냥 원래 잘 웃는 줄 알겠지, 기분 좋은 말을 들어서인 줄은 꿈에도 모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