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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 밑 밝기

1022

by 이숲오 eSOOPo

우리는 가장 가까이 근접한 것들을 지우며 산다


등잔을 잊은 지 오래되거나 겪은 기억이 없어서


늘 익숙한 빛 아래에 어두운 위치를 가져본 적 없다


보여야 욕망하지


지닌 것은 지우다 지우다 지겨워 남겨진 것인가


처참한 흔적들을 침으로 눈물로 지우지만 얼룩져


삶을 통째로 빨아주는 세탁소는 예약이 밀려 있다


어치피 달력에는 공간을 지시하는 숫자가 없으니


찢을 때마다 뒷장에다 바통을 넘겨주기로 한다



딱 한 번만 코를 막아 주겠니


눈을 감고 못 본채 하려다 갑자기 코를 더듬는다


이미 보이는 것들은 가짜가 많아져서 눈보다는 코가 그 진가를 발휘할 거라며 구멍을 열어 보인다


냄새는 속일 수 없다 그러나 현재는 쉽게 상한다


3초 후에는 과거로 변질되어 냄새가 탈을 벗는다


냄새가 달라질 때 탈이 나는 것은 이러한 연유이다


집착만 하지 않아도 편안했을 시선과 시간들


미련만 미련하게 붙들고 있다가 놓친 빛을 그린다


다시는 악보를 거꾸로
두고 연주하지 않을게요


한 계절 이르게 꺼낸 옷의 주머니에서 나온 영수증에는 기억에도 없는 식당이름이 있고 2인분의 메뉴가 있고 지불한 가격이 찍혀 있다


그 음식의 한 톨도 내 몸에 남아 있지 않고 냄새 한 줌도 내 몸에 남아 있지 않고 동석자도 모르는 식사


등잔 밑보다 어두운 곳이 세상 등잔 수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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