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니 Feb 25. 2021

사소한, 사소하지 않은

드라마 '아저씨'에는 요양원비를 못내 할머니를 데리고 도망친 지안에게 박동훈 부장이 손녀는 부양의무가 없다며, 할머니 같은 경우는 나라에서 비용을 부담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도 몰랐나며 어처구니없어하며.

아이들은 모른다. 보살핌을 받고 자라지 못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정보들에서 소외되어 있다.


내게는 학교 밖 아이가 되어 온갖 인생의 방황을 한 어린 친구가 하나 있다. 개성이 뚜렷했던 아이는 친구들과의 다툼 후 자퇴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안 환경 탓에 한예종에 진학해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했던 꿈을 접었다. 이후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계속 방황하며 정신적 문제를 호되게 겪었고, 최근엔 비교적 안정을 찾았지만 부모님과의 갈등 끝에 집을 나왔다.


아이는 청소년 대상 워크숍에서 짧게 만난 사이에 불과한 내게 종종 전화를 걸어와 조언을 구하곤 하는데, 며칠 전에도 불쑥 연락이 왔다. 방통대를 다니며 명품샵의 판매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일이 너무 맞지 않아 그만두고 공부만 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다른 일을 하는 게 어떻겠냐니 딴 일보단 벌이가 좋아 그럴 수가 없다 했다. 이럴 때 참 진퇴양난이다. 어떤 조언도 마음에 들지 않는, 퇴로를 막아버리는.


일단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몇 개의 정부 프로그램을 알려주고, 환경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찬 아이를 반은 달래고 반은 곧추세우며 늦은 통화를 마무리했다. 다음 날 지방 출장을 다녀와 뒤늦게 확인한 서울시 관련 메일에서 아이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발견하곤 바로 링크를 보내주었다.


아이들은 모른다. 부모의, 학교의,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한 아이는 대부분의 정보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정보의 소외는 기회의 소외가 된다. 어린 시절의 작은 차이는 어른이 되었을 때 수습 불가한 큰 차이로 삶을 덮친다. 외면할 수 없는, 딱히 선한 사람이 아니어도 한번 더 마음을 쓰게 되는 이유이다.


2021.02.25 서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