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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 Jun 06. 2017

Un ombra che vola

날으는 그림자

내 삶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절은 스물 여섯 이탈리아의 소도시에 머물며 연극을 하던 시절이다. 어디서 그런 밑도 끝도 없는 용기가 났는지 한국에서의 안정된 직장도 내던지고 무작정 이탈리아로 떠나 말도 못하는 상태에서 현지의 극단에 지원했다. 연극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었던, 그러나 막연히 동경해오던 영역이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디렉터의 지시에 그저 짐작과 주변 사람들을 따라하는 것으로 시작한 극단에 나는 갓 태어난 아이가 되어 새로운 것들을 흡수하고 사람들과 부댖겼다. 일주일에 두 번 모여 몸을 쓰는 법을 배우고, 주어진 테마로 스스로 극을 만들어 다른 이들 앞에서 공연했다.  6개월 후 우리는 관객들 앞에 정식으로 스스로가 만들어낸 극을 올렸고, 나는 새가 되고, 그림자가 되어 무대 위를 누볐다. 


마법 같았던 공연이 끝나고, 밤새 파티를 벌였던 밤 다닐로가 우리를 한 명 한 명 불렀다. 그는 무릎을 꿇고 직접 다듬은 흰 장미와 함께 극단의 책을 건넸다. 조심스레 건네 받은 책에는 Yoenjae, un ombra che vola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연재, 날으는 그림자'라는 뜻이었다. 그림자와 새를 연기한 나를 표현한 것이었다. 


십 여 년의 세월을 건너와 출근 길 문득 그 구절이 떠올랐다. 배경과 장소가 되는 공간을 만드는 건축가라는 직업이, 앞에 나서는 것보다는 은은히 존재하고 싶은 나의 성향이 문득 그림자와 같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유로이 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돌아온 삶의 현실에 휘말려 이리저리 치이다 문득 고개들어 마음을 재긴다.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특별하고 귀한 존재라는 것을. 이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그러하듯.


2017.01.31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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