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무의식 속에 나를 규정하는 목소리가 있다
북 카페에서 자원 봉사할 때의 일이다. 그 기관의 초창기부터 자원봉사하신 분은 오전, 나는 오후에 근무했다. 오랫동안 그 기관 봉사를 하신 분이라 처음에는 그분의 지도를 받았다. 배울 점이 있었고, 적응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어느 날 출근 인사를 하는데, 그분이 계속 안내 자리에 앉아있었다. 한글타자연습을 한다고. 오후 봉사자에게 안내 좌석을 내주어야 하는데 말이다. 처음에는 금방 일어나겠지 싶었다. 컴퓨터가 없는 안쪽 자리에 가방을 놓고 북 카페 안의 책이나 의자 정리를 했다. 그런데 그 일이 몇 번 반복되었다. 더 이상 방관하면 안 되겠다 싶어 출근하면 자리를 비켜달라고 조심스럽게 요청했다.
그때부터였는지 오전 봉사자가 더 이상 알려줄 일이 아닌데, 자꾸 가르치려 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하라고 아랫사람 대하듯 지시했다. 북 카페 봉사는 봉사자끼리 소통하는 일이 중요했다. 근무 시간에 끝내지 못한 일이 있으면 상대 봉사자가 마무리하는 식으로. 관계가 불편해지면서 나는 메모로 대체했다. 불편해지기 전에도 그분은 내가 묻지 않는 한 오전 업무를 인계해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까지 똑같이 할 수는 없었다. 사적 감정으로 공적 업무에 차질이 생기거나 공백이 나면 안 되니까. 오후에 진행한 중요 업무나 마무리하지 못한 업무는 어쩔 수 없이 메모에 적어놓고 퇴근했다.
결정적으로 그분과의 관계가 완전히 부서진 일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날 기관 담당자가 오전 봉사자가 아닌 나에게만 따로 맡긴 일이 있었고, 나는 그 일을 잘 마쳐서 스스로 뿌듯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오전 봉사자가 기관 담당자에게 이렇게 전했다. “그 사람, 북 카페 일이 힘들다고 하던데요.”
그 말은 원래 봉사자들끼리 서로 공감하며 나눴던 이야기였고, 맥락이 있었다. 그런데 앞뒤가 잘린 채 전달되면서, 마치 내가 일을 못 하겠다고 한 것처럼 들리는 말이 되었다. 게다가 그런 말은 제삼자를 통해 전달할 게 아니라, 당사자인 내가 직접 상의할 말이 아니던가. 그 일로 나는 그분에게 크게 화를 냈고, 이후로는 마주치지 않으려고 되도록 근무 시간에 딱 맞춰 출근했다.
그 일을 겪으며 나는 그동안 마주쳤던 심리조종자들과 나르시시스트들을 떠올렸다. 다정하게 다가왔다가 어느 순간 싸늘한 비난을 쏟아내며 나를 흔들고 통제하던 사람들. 나는 왜 자꾸 그런 사람들과 엮였을까. 돌아보면 나에 대한 정의, 나를 규정하는 목소리가 먼저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주로 어린 시절부터 자라오며 들었던 말들, 거대한 무의식의 지하 창고의 가장 깊고 비밀스러운 서랍 속에 숨어 있어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했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 가장 취약할 때나 결정적인 순간에 불쑥 튀어나와 내 발목을 잡았다. “네가 뭘 한다고 나서? 가만히 있어.” “넌 제대로 하는 게 없어.” “나가지 마. 밖은 위험해.” “아무도 널 생각하지 않아. 넌 외톨이야.” 등. 어린 시절 엄마에게 그리고 자라면서 사회와 어른들에게 들은 목소리였다.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나서면 가로막는 목소리였고, 실패나 좌절을 경험했을 때 나를 완전히 주저앉힌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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