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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울새 Mar 03. 2023

초콜릿 바나나 마들렌

2023년 2월 둘째 주의 마들렌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24시간이란 하루가 주어지기에,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모두에게 공평한 건 아니다. 모든 사람의 시간이 동등하게 흐르진 않기 때문이다.


자가용을 타고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과 대중교통을 타고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과 걸어서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은 모두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지만, 그 목적을 위해 소비하는 시간은 모두 다르다.


식기 세척기를 이용하는 사람은 직접 손으로 설거지를 하는 사람보다 더 빨리 설거지를 끝낼 수 있고, 설거지를 대신해줄 사람을 고용할 수 있는 사람은 설거지 자체에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한편, 같은 일을 해도 체력이 강한 사람은 더 빠르게 더 오래 일을 할 수 있고, 체력이 약한 사람은 더 느린 데다 일할 수 있는 시간도 짧다. 게다가 체력 회복에 드는 시간도 길다 보니 체력이 강한 사람과 동일한 일을 끝내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이처럼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지만, 개인이 가진 능력, 체력, 경력, 재력 등 수많은 요소가 복합적인 영향을 미쳐서 개개인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르게 된다.


마들렌은 재료가 비교적 간소하고 제법도 간단한 편이라 누구는 재료 준비부터 반죽까지 30분이면 모두 끝낼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보통 재료가 아주 간단하면 20분 정도, 자잘하게 준비할 재료가 많은 날엔 1시간 정도의 시간을 재료 준비에 소비한다.


물론, 30분 정도 연속으로 움직이고 나면 잠깐이라도 휴식을 취해야 몸에 무리가 없기 때문에 중간중간 휴식은 필수라서, 나는 어쩌면 남들보다 몇 배는 짧은 하루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사람은 평등하게 흐르는 시간을 상대적인 속도로 소비한다.


그런데, 이러한 점은 인간뿐 아니라 다른 동물, 식물 혹은 사물에까지 동일하게 적용되어서, 모든 존재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른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같은 바나나라도 온도, 습도 같은 날씨의 영향이나 보관하는 방법, 장소 등의 환경적 요소에 의해 익는 속도가 달라진다. 모든 바나나가 익는다는 같은 목적을 향해 달려가지만, 여러 가지 요소에 의해 각각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서 완전히 익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모두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 서론이 매우 길었지만, 결론적으로 내 바나나가 너무 빨리 익어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저번 주에 피호두와 함께 구매했던 덜 익은 바나나를 푹 익혀서, 다음 주쯤 바나나 마들렌을 만들 계획이었는데, 한동안 날씨가 추워서 보일러를 평소보다 많이 틀었더니 바나나의 시간이 내 생각보다 조금 더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고, 날씨마저 풀린 이번 주엔 바나나가 완전히 농익어서 한 주 더 시간을 보내기엔 위태로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어머니께서 이미 거무스름한 낯빛의 바나나를 며칠 내로 쓰지 않으면 먹어서 처리하시겠다고 선언까지 하시는 바람에 이번 주엔 무조건 바나나를 이용해야 했다.


그래서 오늘은 밸런타인데이를 상징하는 초콜릿에 바나나를 더하여 초콜릿 바나나 마들렌을 만들어 보았다.


바나나와 상성이 좋은 재료는 정말 다양하지만, 초콜릿과 바나나는 그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편이다. 부드럽고 촉촉하게 잘 익은 바나나의 독특한 풍미와 녹진한 달콤함이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묵직한 풍미와 경쟁하듯 어우러지는 그 맛은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만큼 정말 매력적이다.


바나나와 초콜릿을 잔뜩 넣은 농밀한 풍미의 마들렌 반죽에 한층 더 고급스러운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커피와 계피를 더해주었고, 좀 더 다채로운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캐러멜 팝콘과 치즈 팝콘의 부스러기를 곱게 간 뒤 초콜릿과 섞어서 그야말로 넛티한 고소함이 가득 찬 필링을 준비했다.


물론, 주제가 밸런타인데이 마들렌인 만큼 사랑의 징표는 마들렌 속 안에 고이 숨겨두었다. 원래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니까.



초콜릿의 향연 속에서도 바나나는 결코 존재감을 잃지 않았는데, 오븐 문을 열자마자 초콜릿의 향기를 가뿐히 누르고 기분 좋게 코끝을 간질이던 이국적이면서 녹진한 바나나의 향기는 정말로 인상적이었다.


언제나처럼 매력적인 바나나, 초콜릿의 조합과 은은한 고소함을 더해주는 팝콘 초콜릿 필링의 조화가 기분 좋게 느껴졌고, 마들렌 속 감춰둔 바나나의 사랑 고백도 적절하게 표현되어서 올해 밸런타인데이 마들렌은 나름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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