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셋째 주의 마들렌
염소치즈를 구매했다.
염소치즈는 말 그대로 염소의 젖을 이용해서 만든 치즈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종류에 상관없이 염소치즈라고 부르지만, 유럽에선 다양한 종류의 치즈로 구분해서 소비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염소는 소에 비해 특유의 냄새가 강한 편인데, 염소의 젖을 이용한 치즈 역시 이 특성이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염소치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냄새를 ‘독특한 풍미’라고 생각하지만, 싫어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누린내’라고 느낀다.
평소 염소치즈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고 마트에서 우연히 할인 행사를 진행하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구매한 것인데, 구매 후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염소치즈 특유의 풍미를 누린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인터넷에선 다양한 표현으로 염소치즈와의 첫 만남에 대한 충격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평생 안 씻은 염소의 엉덩이를 깨문 맛’이라는 표현이었다.
사실 별 계획 없이 구매했기에 일단 마들렌에 조금 사용해 보고 나머지는 빵에 발라먹거나 요리에 넣어서 사용할 생각이었는데, 한 입 먹자마자 쓰레기통에 넣었다거나 억지로 참고 먹어보려 했으나 도저히 못 먹겠기에 버렸다는 수위 높은 후기들을 접하고 나니 공포감이 스멀스멀 몰려왔다.
안 그래도 누린내에 민감한 편이고, 그 때문에 양고기 역시 그다지 선호하진 않아서 그대로 반품해야 하는 건가 깊은 고민에 빠졌었는데, 어차피 양고기의 누린내도 양이 바로 옆에서 날 쳐다보고 있는 기분일 뿐 못 먹을 정도는 아니고, 음식이란 게 직접 먹어보지 않으면 자신의 취향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거니까 한 번쯤 도전해 봐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사용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은 염소치즈로 마들렌을 만들어 보았다.
참고로 염소치즈의 뒷면에 적힌 ‘산양유’라는 단어 때문에 혼란을 느끼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 산양은 염소와 같은 말이다.
엄밀히 말해서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된 야생 산양과 가축용 염소는 다른 종이지만, 우리나라에선 둘 다 산양이라고 지칭하고 있으므로 산양유는 야생 산양의 젖이나 양유의 한 종류가 아닌 염소의 젖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구매한 염소치즈는 미국에서 생산된 자연치즈로 크림치즈와 비슷하게 부드러우면서 포슬포슬한 질감을 갖고 있었다. 처음엔 누린내에 대한 걱정 때문에 다양한 과일을 섞어 크림 필링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일단 정확한 맛을 알아야 레시피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마들렌을 만들기 전 제대로 맛을 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런데, 떨리는 마음으로 직접 맛본 염소치즈는 생각보다 누린내가 강하지 않았다.
물론, 짠맛과 신맛이 강한 편이긴 한데, 양유를 이용해서 만드는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나 양유와 산양유(최대 30%)를 섞어서 만드는 페타 치즈처럼 짠맛과 특유의 향이 강한 치즈도 폭넓게 소비되는 걸 보면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한 치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어머니께서도 별달리 풍미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시진 못하셔서 원래의 계획 대신 염소치즈를 마들렌 반죽에 섞어 치즈 자체의 맛을 좀 더 살린 마들렌을 계획하게 되었다.
치즈를 직접 마들렌 반죽에 섞게 되면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 써서 레시피를 만들어야 한다. 치즈의 종류에 따라 녹지 않거나 열을 받으면 지방이 분리되는 경우가 있어서 반죽의 물성에 영향을 주기 쉽고 결과적으로 생각과는 사뭇 다른 마들렌이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사뭇 달라진다…….
많은 양의 치즈를 반죽에 섞는 건 오랜만이라 별다른 생각 없이 구웠다가 대차게 실패한 뒤, 신중하게 레시피를 수정해서 다시 마들렌을 구워냈다.
짜고 신 맛이 강한 치즈라 꿀을 섞어서 은은한 달콤함과 향긋함을 더했고, 바삭한 호두와 염소치즈 덩어리를 표면에 올려서 샐러드를 먹는 듯한 느낌을 표현했다.
결과는 생각 이상으로 성공적이었다. 마들렌 반죽과 섞여서 한결 부드러운 풍미를 자아내는 염소치즈와 달콤한 꿀의 조화가 기분 좋게 느껴졌고, 강한 짠맛과 신맛으로 맛의 포인트 역할을 해주던 염소치즈 덩어리의 존재와 고소한 호두도 정말 만족스러웠다.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직접 접해 본 염소치즈는 소문만큼 상종 못 할 재료는 아니었다. 잘만 이용한다면 종종 즐겨볼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