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한 봄나물의 왕
올해는 유난히 야들야들하고 여린 봄나물들이 많이 눈에 띄는데, 그렇다고 그 맛이 흐릿하진 않은 게 특징이다. 보통 새순은 식감이 부드러운 만큼 특유의 향이나 맛도 약하기 마련인데, 이상하게 한없이 연하면서도 각자가 가진 풍미는 충만해서 그야말로 푸릇한 봄의 향취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상황이다.
덕분에 정말 다양한 봄나물을 맛보고 있는데, 그중에는 쑥도 있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봄나물이고 가장 대중적인 봄나물이지만, 사실 나는 쑥으로 마들렌을 만들어 올린 적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내가 쑥을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나는 백설기나 가래떡처럼 새하얗고 깔끔한 떡을 좋아했는데, 그럴 때면 항상 옆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서 나의 코를 못내 불쾌하게 자극하던 게 바로 쑥떡들이었다. 떡에 쑥을 넣는 게 워낙 흔한 일이다 보니, 절편을 먹어도, 송편을 먹어도, 백설기를 먹어도 으레 그 옆엔 쑥을 섞어 만든 녀석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하얀 떡들만 마음대로 골라 먹지도 못하니 어린 마음에 괜스레 반감을 품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쑥에 별다른 유감은 없다. 다만 아직도 어릴 때의 기억 탓인지 굳이 내 손으로 쑥을 고르는 일이 드물 뿐이다.
그러다 보니 6년 전 이맘때쯤 우연히 어머니가 가져다주신 쑥으로 마들렌을 만든 이후로 깻잎을 비롯해 달래, 명이, 취나물, 머위, 냉이 등 다양한 봄나물을 활용하면서도 쑥을 다시 찾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마트에서 마주한 쑥을 보니 문득 마들렌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쑥을 이용하는 길은 그다지 순탄치 않았다.
몸 상태가 오락가락한 탓도 있지만, 구매한 쑥이 골라도 골라도 돌아서면 또 골라낼 게 나왔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깨끗이 씻어서 말려두려고 어머니께서 한번 골라주신 것을 내가 씻으면서 한 번 더 골랐는데, 말리기 전에 보니 또 시든 녀석들이 있어 어머니와 함께 또 한 번 골라야 했다. 그 때문에 쑥을 말리기 시작할 즈음엔 이미 잔뜩 지쳐서 별생각 없이 그대로 말렸는데, 그게 재앙의 시작이었다.
다른 봄나물을 말릴 때도 고운 가루를 내다보면 섬유질이 항상 문제가 되곤 했는데, 쑥에 비하면 그건 섬유질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말리기 전 미처 제대로 된 정보를 찾지 않은 탓일까. 보통 쑥을 말릴 땐 데치거나 삶아서 말린다는데, 그냥 말렸더니 쑥이 갈리지 않고 보송보송한 솜이 되어버렸다.
가루 내기에 실패하면 언제나 돌파구가 되어주었던 칼도 이번만큼은 무용지물이었다. 아주 가벼운 녹색 솜이 되어버린 쑥은 가위로 잘라도 금세 주변 섬유질들과 다시 엉겨 붙어버렸고, 가정용 분쇄기의 힘으론 그 질깃한 고리를 끊어낼 수 없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솜 자체를 고명으로 이용할 수 없을까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무리라는 걸 깨달았다. 소량을 뜯어내서 올리는 것까진 괜찮을지 모르나 양이 늘어나면 입에서 서로 뭉치며 종이 같은 식감을 낼 게 분명했다.
결국 솜뭉치 아래 모인 곱게 갈린 소량의 가루를 쓰기로 했다.
원래 오메기떡을 보면서 어떻게 마들렌으로 만들어볼까 고민 중이었는데, 기존에 세웠던 계획은 모두 미뤄두고 이번엔 향을 오롯이 담아내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가루 일부는 반죽에 섞고, 쑥솜으로는 진한 차를 우려내 시럽을 만들어 부족한 풍미를 채웠다. 나머지 가루는 버터와 설탕을 섞어 반죽 위에 아주 얇게 펴 발랐고, 글라세까지 준비했다. 토핑으로 준비한 건 누룽지다. 쑥 인절미처럼 고소한 맛을 더하고 싶었지만, 콩가루는 맛이 너무 강할 것 같아 쑥을 우려낸 버터로 누룽지를 볶아 고소함을 더했다.
오랜만에 만난 쑥의 향은 실로 대단했다. 깻잎으로 마들렌을 만들면 은근한 쑥 향이 난다고 생각했는데, 그에 비해 화한 맛이 한결 덜하고 좀 더 따뜻하게 혀에 감기는 달큼함이 느껴졌다. 입에 넣기도 전에 콧속 가득 쑥 향이 진동해서 맛이 흐릴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왜 가장 대중성 있는 봄나물 자리에 올랐는지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선명하고 향긋한 풍미. 거기에 고소한 누룽지까지 더해지니, 이건 그야말로 봄의 축복이었다.
어쩜 이리 다양한 봄나물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자신의 독특한 풍미를 오롯이 자랑하며 매력을 뽐낼 수 있을까. 이런 봄나물의 맛을 끌어내기 위해 수없이 노력했을 선조들의 노고에 새삼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그 지혜에 감탄했다. 역시 나물을 손질하는 방법에는 다 마땅한 이유가 있다. 그러니 의심하지 말고 따라야 한다. 고로 쑥은 익혀서 말리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