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맛을 이어 나가기 위한 노력
요즘 우리 집에서 중요한 이슈 중 하나는 어머니의 건강이다. 작년 연말쯤 건강검진을 받으셨는데, 생각보다 수치가 별로 좋지 않았다. 특히 문제가 된 건 콜레스테롤이었는데, 지금 당장 약을 먹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으셔서 집에선 비상이 걸렸다.
어머니는 기름진 음식을 별로 선호하지 않으신 데다 식습관도 나쁜 편이 아니시고, 애초에 우리 둘은 먹는 양이 워낙 적어 외식을 하는 것도 부담스러울 정도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까지 콜레스테롤 수치가 치솟은 건지 아직도 의문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수치 앞에선 별다른 수가 없었다. 결국 얼마 전부터 고지혈증 약을 드시기 시작하셨다. 여기에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까지 병행하시느라 요즘은 매일 약을 챙겨 드시기에 여념이 없으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약국도 자주 가시는데, 어머니의 얼굴이 눈에 익은 약사님께서 얼마 전 쌍화탕을 한 병 건네주셨다. 차마 호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오셨지만, 딱히 마실 사람이 없다 보니 식탁 위 쌍화탕은 어느새 두 병으로 늘어났다.
점점 쌓여가는 쌍화탕을 보다 문득 마들렌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onjium)’의 저서를 참고했으니, 괴식일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몇 해 전부터 전통 다과에 부쩍 관심이 갔다. 흔히 전통 다과 하면 떡과 한과 몇 종류 정도 외에는 별다른 게 있나 싶을 수도 있지만, 사실 조선시대 왕실에선 하루 네 번의 다과상을 챙겼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디저트에 진심이었다. 조선시대 조리서에 기록된 떡만 해도 250여 가지이고 한과도 마찬가지니, 현대에 이르러 발전한 다과 외에도 최소 500여 종의 전통 디저트가 존재하는 셈이다. 그야말로 방대한 규모의 식문화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몰라서 소비하지 못한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최근에는 이를 응용한 마들렌도 많이 만들어보려 하고 있다. 올해 초 접한 온지음 저서에서 대추고 누가와 함께 ‘쌍화편’이라는 디저트를 따로 기록해 뒀었는데, 이번이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쌍화편은 잣과 청포묵 가루에 노른자와 우유를 섞어 한국식 푸딩을 만들고 꿀을 넣어 졸인 쌍화차를 올려 완성하는 디저트이다. 재료가 워낙 독특해서 처음 보자마자 그 맛이 참 궁금했다. 곁들인 소스에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음료를 이용해도 된다기에, 마침 처리 곤란이던 쌍화탕을 사용하면 될 것 같았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한국식으로 풀어낸 푸딩이었다. 일단 집에 청포묵 가루가 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걸 위해 청포묵 가루를 따로 구매하긴 힘들었다. 결국 고민 끝에 조금 다른 형태로 응용하기로 했다. 잣과 우유를 함께 갈아서 고소한 잣 우유를 만들고 노른자 대신 전란과 전분을 섞어 기존 쌍화편 특유의 질감을 살리되, 좀 더 친숙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약간 묽은 커스터드 크림을 준비했다.
어릴 때는 아는 분이 한의원에서 직접 만든 귀한 거라며 소분된 수제 쌍화탕 가루를 종종 가져다주셔서 그걸 즐겨 마셨는데, 문득 그 맛이 떠올랐다. 그래서 반죽엔 준비한 소스를 소량 섞고, 호두와 잣, 호박씨 등 각종 견과류와 바삭한 대추 칩을 다져 올렸다. 그리고 혹시나 특유의 향이 너무 은은할까 싶어서 쌍화탕을 넣고 만든 글라세를 발라 마무리하기로 했다.
사실 쌍화 소스를 만들 때 음료의 맛이 생각보다 연하고 달아서 괜찮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쌍화탕 맛이 너무 튀지 않고 무난하게 완성돼서 다행이었다. 마치 어린 시절 연세 지긋한 한의사님이 계신 한의원에 갔다가 인자한 미소로 내어주신 한방 사탕을 먹은 듯한 맛이었는데, 다양한 견과류가 가득 올라간 덕분에 씹는 재미가 좋아 입안이 쉴 틈이 없었다. 고소한 맛 뒤로 퍼지는 달콤 쌉쌀한 쌍화차의 풍미와도 잘 어우러져 무척 만족스러웠다.
아마 동네 도서관에서 조선시대 실학자인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정조지’ 편을 접하고 본격적으로 전통 다과에 관심이 생겼던 것 같다. 거기엔 서양과자에 밀려 잊고 지내던 수많은 우리의 맛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각 계절에 한두 가지 정도는 우리 고유의 맛을 담아보자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 뜻을 조금씩 이루고 있다. 최근엔 한국 문화가 주목을 받으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전통의 맛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여기저기 보인다. 이를 통해 나 또한 좋은 영감을 받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어 더없이 기쁠 따름이다. 올해는 이런 기회를 좀 더 자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