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귤 크럼블 마들렌

봄의 피곤함을 위로하는 맛

by 거울새

한낮의 햇살이 조금씩 따가워지는가 싶더니, 본격적인 봄이 온몸에 내려앉았다. 말 그대로 봄이 매달려 있는 것처럼 평소보다 두세 배는 몸이 늘어져서 움직이는 게 좀처럼 쉽지 않았다. 몸이 무거워진 만큼 부쩍 더 빨리 지쳤고, 전보다 훨씬 오래 쉬어도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덩달아 입맛도 떨어졌다. 그나마 이런저런 봄나물을 열심히 챙겨 먹고 있었지만, 몇 주 전보다 밥 먹는 일에 심드렁해진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새로운 메뉴를 떠올리는 것도 귀찮았다. 식사 시간이 그저 숙제처럼 느껴졌다.


몸이 알게 모르게 불편해서 밤에 자꾸 잠을 설치니, 낮에는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원래 이번 주는 전에 사둔 봄나물로 새로운 마들렌을 준비할 생각이었다. 마음 같지 않은 몸을 살살 달래 가며 봄나물을 하나하나 다듬고, 언제라도 사용하기 좋게 열심히 정리해 두었다. 근데 그것만으로도 며칠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마음이 점점 초조해졌다. 일정을 맞출 수 있을까 종일 발을 동동거렸다.


그런데 며칠 전 운동을 나가셨던 어머니께서 벚꽃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셨다. 매년 벚꽃이 만개하는 하천 변에는 어느새 새하얀 벚꽃이 한가득 피어 있었다. 분명 그 전날에도 외출했었는데, 피곤해서 연신 조느라 창밖에 저리 화사하게 꽃이 피었다는 것도 까맣게 몰랐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쫓고 있었던 걸까.


맥이 풀려 버렸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보니 왠지 새콤한 게 먹고 싶어졌다. 봄나물의 쌉쌀한 맛도 좋지만, 입맛이 살짝 돌 만한 은은한 산미가 갑자기 입에서 당겼다. 그러고 보니 요즘 금귤 철인데, 이번 주엔 봄나물 말고 금귤을 사용하면 어떨까. 힘들이지 말고 가볍게 구워낸 금귤 마들렌을 만들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실 겨울은 시트러스 과일의 시간이다. 귤을 필두로 한라봉, 황금향, 레드향, 천혜향 등 각종 시트러스류 과일이 정신없이 쏟아져 나온다. 생긴 것도 비슷하고 이름도 비슷한데, 매년 새로운 품종이 등장하니 요새는 그놈이 그놈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한창 새콤함을 자랑하고 슬슬 봄나물이 그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하면, 차가운 겨울과 작별하고 따뜻한 봄바람을 환영하는 금귤이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금귤은 방울토마토만 한 크기에 귤을 꼭 닮은 외형을 가진 과일이다. 어릴 땐 일본어인 ‘킨칸’에서 유래한 ‘낑깡’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요즘은 ‘금귤’이 정식 명칭이라고 한다. 보통 껍질을 벗겨 먹는 다른 시트러스류 과일과 달리 껍질째 먹는 게 특징인데, 귤에 비해 산미가 강하고 유자를 연상시킬 만큼 진한 향과 쌉쌀한 맛을 함께 가지고 있어서 가볍게 집어 먹기에 더없이 매력적이다.


올해 햇 금귤을 따로 사둔 건 아니라, 금귤을 사러 나가야 하나 고민이 되었는데, 불현듯 작년에 담가둔 금귤 절임이 아직 남았다는 게 생각났다. 역시 오늘은 금귤 마들렌을 만들 운명이었나 보다.


작년에는 워낙 정과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자연스레 금귤로도 정과를 만들었는데, 혹시 몰라 절임도 한 통 남겨뒀었다. 절임은 사실상 금귤 정과 중간 단계와 다름없어서, 절임 시럽에서 금귤을 건져 말리면 정과가 되고, 시럽만 따라먹으면 일종의 청이 된다. 다 함께 갈면 페이스트가 되고 거기에 설탕을 더해 끓이면 잼이 되니, 이래저래 활용도가 많을 것 같았다.


어떤 식으로 마들렌을 만들지가 가장 고민이었다. 금귤의 풍미를 살리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너무 진한 맛은 싫었다. 그야말로 약간의 산미. 너무 달지도 너무 시지도 않고, 그리 복잡하지도 않은 맛. 마치 레몬 마들렌처럼 향긋한 향과 은은한 상큼함을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고민 끝에 결정한 건 금귤 크럼블이다.


금귤 페이스트를 반죽에 섞고 크럼블을 올려 구운 뒤에 금귤 절임을 잘게 잘라 올리면 적당히 과하지 않은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금귤로 크럼블을 만드는 게 보편적이진 않지만, 크럼블은 보통 새콤한 과일을 활용하니 분명 괜찮을 터였다. 이번 주는 딱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평소랑 달리 밀가루와 설탕, 버터만 넣고 가볍게 구워낸 크럼블을 잔뜩 올렸다. 그 옆에는 새끼손톱만 하게 자른 금귤 절임이 드문드문 자리 잡았다. 복잡하지 않고 선명한 바삭함과 함께 버터 향이 퍼졌다. 뒤이어 쫀득하고 새콤 달달한 금귤이 느껴졌다. 단순하지만 그냥 맛있는 맛. 굳이 어렵게 만드는 복잡한 맛이 아니라도 이 정도면 봄의 노곤함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피곤한 봄에게는 제격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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