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건네는 향긋한 인사
오랜만에 제습기를 돌렸다. 제습기가 웅웅대며 낮은 울음소리를 내뱉더니 금세 방이 뽀송해지기 시작했다.
겨울엔 의외로 곰팡이가 잘 피지 않는다. 보일러를 쉴 새 없이 돌려 따뜻한 내부와 매서운 겨울바람에 한없이 차가운 외부의 온도 차 탓에 어느 때보다 결로가 발생하기 쉽지만, 날씨가 워낙 건조하기 때문에 곰팡이가 자라긴 쉽지 않다. 반면, 봄이 다가올수록 기온이 점차 높아지고 습도도 조금씩 올라가기 때문에 되레 곰팡이가 피기 좋은 환경이 된다. 겨우내 얼어있던 습기가 녹아내리고, 멀리서 불어오는 미세먼지나 꽃가루 등이 먹이가 되어 조금만 방심하면 금세 집안 곳곳에서 곰팡이가 기승을 부릴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점차 따뜻해지면서 한겨울 추위에 바짝 얼어있던 몸이 한결 가벼워질 것 같은데, 현실은 정반대다. 요즘처럼 따뜻한 봄바람이 코끝을 간질일 때면, 물에 젖은 솜처럼 한없이 무거워지는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 때가 많다. 겨우내 추위에 잔뜩 움츠러들어 있다가 갑작스레 활기를 되찾으면서 계절의 변화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몸이 무언의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이런 시기일수록 컨디션 관리에 힘을 써야 할 텐데, 점점 늘어져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싫으니 자꾸만 내려앉는 무거운 눈꺼풀이 그저 야속할 뿐이다.
다행인 건 올해도 어김없이 봄나물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벌 부추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봄나물 밥상이 이어지고 있다. 매해 주로 구매하는 봄나물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다양한 봄나물이 있어 이 시기를 좀 더 향긋하게 버텨낼 수 있다는 점은 변함없다. 솔직히 극심한 춘곤증을 이겨낼 만한 효능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은근히 사라져 가는 입맛을 조금이나마 되살려주니, 그걸로 봄나물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다하고 있는 셈이다.
냉이는 달래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봄나물의 하나이다. 겨울 끝자락부터 본격적으로 자라기 시작해 이른 봄이 왔음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같은 이 나물은 얼마 전까지 즐겨 먹었던 초벌 부추에 비하면, 질깃하고 먹기도 불편하지만, 독보적인 향 때문에 매년 꼭 한 번은 잊지 않고 찾게 되는 매력적인 녀석이다. 특히나 된장국이나 찌개에 넣어 먹으면, 구수한 된장과 어우러지는 그 향미가 아주 일품이다. 특유의 풍미로 입맛을 돋워주니, 나물 반찬 일색인 밥상에 빠지면 서운한 감초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초벌 부추와 함께 구매한 냉이로 된장찌개도 끓여 먹고 기름에 살짝 볶아 오일 파스타로도 맛을 보며 봄의 기운을 만끽하고 있던 차에, 이 풍성한 봄의 향취를 마들렌에도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이는 그 향이 워낙 출중하여 초벌 부추처럼 크림치즈와 섞어 향긋한 필링을 만들어도 분명 훌륭한 결과가 나오겠지만, 아무래도 질긴 식감이 장애물이다. 게다가 좀 더 다양한 형태로 활용해 보고 싶기도 해서 오늘은 필링을 만드는 대신 곱게 가루 내어 반죽에 섞어 주기로 했다. 다만, 바짝 말린다 해도 굵은 뿌리 부분은 질깃한 느낌이 남아 분쇄하기 힘들 수 있다. 그렇다고 뿌리를 모두 골라내면 냉이 특유의 향이 약해질 수 있으므로 아직 어리고 부드러운 부분만 따로 모아 말렸다. 반죽에는 소량의 된장도 섞어 주었는데, 문득 냉이 된장찌개에서 느꼈던 그 독특한 감칠맛과 풍미도 함께 담아보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된장을 그대로 사용하면 다소 날카로운 맛이 거슬릴 수 있으므로 냉이와 마찬가지로 낮은 불에서 바짝 말려 가루 내어 사용하기로 했다.
반죽 위에는 구운 냉이를 올렸다. 원래는 냉이를 살짝 튀겨서 바삭함을 살리려 했는데, 며칠 전 냉이로 파스타를 만들어 먹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오일에 가볍게 익혀냈을 때의 그 향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마들렌에 활용해 봐도 좋겠다 싶었다. 냉이를 너무 오래 구우면 식감이 질깃해질 수 있으므로 수분만 살짝 날리는 느낌으로 간간하게 소금을 쳐 가며 살며시 볶아냈다. 또한 혹시나 입안에 걸리는 것이 없도록 송송 썰어서 준비했다.
마치 직접 냉이를 캐러 들판에 나간 듯 푸릇푸릇한 기운이 마들렌 위에 내려앉았다. 하지만 거기서 풍겨오는 향은 영락없는 냉이 된장찌개의 핏줄이었다. 냉이 된장과 달콤함의 조화는 아무런 위화감 없이 디저트의 세계에 오롯이 녹아들었다. 마들렌을 한입 베어 물 때마다 구수한 된장의 감칠맛과 선명한 냉이의 향취가 코안 가득 퍼져 나갔다. 어느새 다가온 봄이 이렇게나 기분 좋은 향긋함으로 다정한 인사를 건네니, 나도 조금 더 힘을 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