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봄
습관처럼 확인하는 날씨 앱에 10도가 넘는 기온이 표시되는 때가 많아졌다. 창밖을 보면 새하얀 매화가 굵은소금을 뿌려 놓은 듯 앙상한 가지에 알알이 맺혀 있었다. 드디어 봄이 온 것일까. 하지만 막상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집 밖을 나서면 금세 싸늘한 찬바람이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역시 아직 두꺼운 롱패딩과 헤어지기엔 너무 이른 듯했다.
마트는 어느새 봄나물 잔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모를 초록색 뭉치의 향연이다. 봄나물을 대표하는 달래와 냉이부터 이따금 보이는 세발나물, 방풍나물, 부지깽이 그리고 조금은 생소한 눈개승마나 원추리까지. 매대 앞에 서면 신중한 눈빛으로 나물을 고르시는 어머님들 사이에 슬쩍 끼어서 봄의 싱그러움을 구경하느라 눈이 쉴 틈이 없었다. 그리고 초록 천지인 나물 더미 사이에서 아주 반가운 이름이 눈에 띄었다.
초벌 부추
부추면 부추지 초벌 부추는 대체 무엇일까.
초벌 부추를 처음 마주한 건 경남에 내려와서 몇 해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사실 처음 초벌 부추를 보았을 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간장을 베이스로 한 부추무침은 으레 밥상에 오르는 메뉴 중 하나였고, 이런저런 이름을 붙여 판매하는 채소를 처음 본 것도 아니었으니 특별히 눈여겨볼 이유도 없었다. 물론 뜨거운 국과 곁들이는 부추무침의 맛은 분명 별미였기에 부추를 자주 사 먹긴 했으나, 굳이 웃돈을 주고 비싼 것을 살 만큼 부추에 대한 애정이 크진 않았다. 오히려 부추는 생각보다 질깃한 것이 많아서 조금만 잘못 사도 연신 뱉어내야 했기에 평소 그리 선호하는 반찬은 아니었다.
한창 봄나물에 빠져 있던 재작년쯤이 돼서야 데면데면하게 봄마다 마주치던 초벌 부추의 정체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저건 무엇이길래 봄마다 얼굴을 들이미는 걸까.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어느 봄날, 첫 만남을 갖게 되었고, 이후로 나는 이 녀석을 지나쳤던 수많은 시간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되었다.
초벌 부추는 그해 처음 베어내는 부추를 말한다. 부추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처음 베어낸다는 게 와닿지 않을 수 있는데, 이 녀석은 첫 수확 후 뿌리를 뽑지 않고 자라나는 윗부분만 계속 베어낸다. 즉, 초벌 부추 이후부터는 다시 자란 잎만 수확해서 출하되는 식이다. 그러므로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천천히 자라난 첫 부추잎들은 더없이 야들야들한 식감을 자랑한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초벌 부추’라는 단어 자체를 못 들어 본 경우도 많을 텐데, 이는 워낙 연하고 수분이 가득해서 금세 시들거나 무르는 탓에 주로 산지 근처에서만 소비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엔 제대로 정돈된 느낌도 아니고 봉투에 얼기설기 담겨 있어 질기지 않을까 싶은데, 막상 입에 넣어보면 종이 다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차원이 다른 부드러움을 선사한다. 가끔 갓 자란 어린 상춧잎을 따서 바로 먹으면 너무 여리고 순해서 다른 상추를 못 먹게 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초벌 부추를 먹어 보면 그게 허풍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된다. 덕분에 아는 사람들은 이맘때 열심히 찾아 먹는 봄나물 중 하나가 바로 이 초벌 부추다.
올해도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낸 초벌 부추를 무쳐 먹으며 즐거운 봄나물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문득 크림치즈가 눈에 들어왔다. 쪽파나 대파가 아닌 유달리 부드럽고 향긋한 초벌 부추를 크림치즈와 섞으면 더없이 완벽한 마들렌 필링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준비할 건 마들렌 반죽뿐이다. 반죽에 무엇을 넣어야 할까 고민이 많았지만, 결국 흑임자를 중심으로 결정했다. 특유의 고소한 맛을 더하면서도 크림치즈 필링과 색감의 대비를 이루어 멋진 마들렌이 될 것 같았다. 킥으로 준비한 재료는 바로 간장. 평소에도 자주 즐기는 부추와 간장의 절묘한 조화를 떠올리며 간장을 소량 섞어 은은한 짠맛과 감칠맛을 가미했다. 레몬즙을 베이스로 부추를 잔뜩 다져 넣은 글라세를 발라 가벼운 산미와 선명한 부추의 존재감을 강조했고, 약간의 레몬 제스트를 올려 마무리했다.
초벌 부추는 워낙 부드러워서 이건 너무 과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잔뜩 사용해도 아무런 부담이 없다. 덕분에 아낌없이 부추를 다져 넣은 크림치즈에선 아주 진한 부추 향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전혀 과하지 않았다. 되레 크림의 농후함 속에서도 선명하고 기분 좋은 풍미를 자아냈다. 고소한 흑임자와 상큼한 레몬의 존재감도 더없이 적당했다. 이번 봄, 초벌 부추를 만날 기회가 있다면 다들 마들렌에 싱그러운 봄의 기운을 담아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