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옳았고, 온도는 틀렸다

No thank you와 Thanks but no thanks.

by 재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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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계 미국인 친구의 집에 초대받은 날이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코끝을 간지르는 향.

은은한 라임향과 고수향, 그리고 매혹적인 향신료 내음이 섞여 있었다.
반짝이는 타일 바닥 위엔 전통 문양이 수놓인 러그가 깔려 있었고, 볏짚 행잉 라이트와 다채로운 수공예 바구니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거실을 지나 주방으로 이어지는 긴 복도 끝,
따뜻한 나무색 테이블 위엔 라탄 식기 세트와 손뜨개 레이스 식탁보가 정성스레 펼쳐져 있었다.

테이블 중앙엔 민트와 바질, 고수가 어우러진 허브 번들이 유리병 속에 싱그럽게 꽂혀 있었다.

친구의 엄마는 볕이 잘 드는 부엌 창가에서
부드러운 미소로 나를 맞았다.

“Would you like some more cilantro?”

나는 고수를 잘 못 먹는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No thank you.”

그 말이 떨어지자, 집 안의 따스한 공기가 아주 잠깐, 조용히 얼어붙었다.친구 엄마의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고,창밖의 잔잔하던 풍경마저 멈춘 듯 느껴졌다.무언가 조심스레 건네졌다가,허공에서 미끄러진 느낌이었다.

식사가 끝난 후,소파에 나란히 앉은 친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Hey… just so you know, when you said ‘No thank you,’ my mom kinda felt… rejected.”

(있잖아, 니가 "no thank you" 라고 말했을 때 우리 엄마가...약간 거부당했다고 느꼈대")

“Rejected? I didn’t mean that at all. I loved the food!”

(거부? 나 그런 말 아니었어! 음식 너무 맛있었어!")

“신경 써 줘서 고마워.
하지만 우리 문화권에서는 ‘No thank you’가 조금 차갑게 들릴 수 있어.
‘Thanks, but no thanks.’라고 하면 더 부드럽고, 감사한 마음이 전해지는 느낌이랄까.”

그제야 깨달았다.내 말은 정중했지만,그들이 느낀 건 ‘거절’이었다.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I really enjoyed everything. I just can’t handle cilantro well… But your mom’s cooking? It was wonderful.”

(모든게 너무 좋아요. 고수를 잘못먹어요. 그런데 너네 엄마의 요리? 진짜 멋졌어!")

하지만 그 말은,그 순간엔 닿지 못했다.

그날 밤.창틀에 걸린 작은 등불 아래에서 지우개 자국처럼 흐릿하게 남은 내 어설픈 대답을 떠올렸다.

‘난 정말 음식도 맛있었고,그 집의 따뜻한 분위기가 더 좋았는데…’

그리고 조용히 나 자신에게 되물었다.


‘내가 전한 말이 정중했는가’보다,‘내가 전한 마음이 따뜻했는가’가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언어는 뜻을 전하지만,말투와 타이밍, 그리고 문화는 그 뜻을 실어 나르는 ‘온도’를 결정한다는 걸
그날에서야 알게 되었다.한마디에 담긴 온도를 읽어내는 것.그것은 문법을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때로는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기술이 된다.그리고 말의 온도를 이해하는 순간,비로소 관계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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