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상품등록 처음 받던 날
“재미나이 님, 어서 오세요~”
FM 라디오 DJ 같은 목소리의 매니저가, 이를 활짝 드러내며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고객 상담 필수템인 서류 파일, 그리고 차가운 계산기. 오늘 나의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저 차가운 액정 위 숫자에 의해 냉정히 산정될 터였다.
“네, 안녕하세요…”
떨리는 목소리마저 무시한 채, 매니저는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을 시작했다.
마치 바코드라도 찍듯 정밀하게. “음~ 실물이 훨씬 예쁘시네요!
그런데 이런 인재가 왜 아직 솔로일까?”
“직업도 나쁘지 않고, 나이도 뭐… 아직 가능성은 있고, 학벌도 이 정도면 준수하고… 혹시, 부모님께 **‘리스크’**는 없으시죠?”
'리스크'라니. 나는 보험 상품인가? 사회생활에서 이런 면접을 봤다면 당장 고용노동부에 신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사랑'을 사고파는 신성한 곳이었으니까.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여기서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건, 이 게임에서 패배를 의미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경쾌하게 계산기 버튼을 눌러댔다.
내 스펙은 착착 점수로 매겨지고, 나는 투명한 쇼케이스 안의 전시품이 되었다.
'낭만적인 만남'을 꿈꿨던 과거의 나는, 그녀의 계산기 액정 위에서 처참하게 소멸했다.
아, 깨달음. '결혼을 결심했다'는 건, 내 마음의 준비가 아니라, 세상의 냉정한 잣대 앞에서 '스펙 검증'을 받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었구나.
"저희가 학력, 혼인 기록, 소득 수준까지 팩트 체크 들어갈 거고요.”
매니저는 잠시 감상에 젖은 듯 나를 바라보더니, 충격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근데 연봉이… 음… 좀 **‘아쉽’**네요. 혼자 살기 버거우시겠어요.”
...야, 너나 잘하세요. 꾹 눌러 참았던 분노가 팝콘처럼 튀어나오려 했다.
각오는 했지만, 이 정도 '영혼 없는' 평가에는 내 멘탈도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Applicants will be categorized accordingly."
그 문장은 마치 시스템의 냉정한 선언 같았다.
나는 결혼할 준비가 아니라, 애초에 평가받을 준비 자체가 안 되어 있었던 거다.
아니, 어쩌면 평가받을 준비를 할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할 테다.
“얼마짜리 원하세요?” 그 한마디에 내 모든 가치가 결정된다는 듯, 그녀의 손에서 계산기가 마치 무대 위 주인공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나이가 있으시니까, 400부터인 건 아시죠?” 탁. 탁. 탁. 플라스틱 부딪히는 소리가 내 머릿속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숫자가 매겨지는 소리. 내 존재가 기호화되는 소리.
“제가 재미나이씨는 예쁘시니까, 서비스로 두 번 더 얹어드릴게요.
대신 이걸로 하시면 환불은 안 되고요. 그리고…” 말은 허공을 맴도는데, 나는 마치 빙의라도 된 듯 홀린 듯 카드를 내밀고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600이라는 숫자가 찍힌 영수증만이 손에 들려 있었다.
600만원. 나의 사랑을 찾기 위한, 아니 나의 '상품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값이 이토록 비쌌던가.
붐비는 엘리베이터 안. 점심의 나른함을 즐기는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벽에 부딪혔다.
“그랬다니까? 완전 그린라이트 아니야?”
“그런가? 야, 그나저나 저번에 그 원피스…”
나와는 상관없는 '낭만적 대화'의 세계. 나도 저들처럼 웃고 떠들던 때가 있었는데.
아주 오래된 필름도, 바로 어제 찍은 영상도 아닌, 어정쩡한 시간의 기록 속에서 나는 나를 잃어버린 듯했다.
'시간, 참 훅 간다.'
엄마가 무심코 뱉었던 그 말이, 오늘따라 납덩이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것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을 넘어, 내가 놓쳐버린 것들, 그리고 뒤늦게 마주한 현실의 무게였다.
어쩌면 결혼 시장만의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취업 시장에서, SNS 피드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평가받아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요. 세상의 모든 '재미나이'들이 다른 사람의 계산기 앞에서 너무 많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자신의 가치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가치는 액정 속 숫자나 타인의 시선으로 규정될 수 없는, 우리 각자의 내면에 고유하게 존재하는 무형의 빛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