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점심, 학교 식당에서 치킨 샐러드를 대충 먹고 수업을 마쳤다.
복도에서 마주친 친구 Lisa는 당시만 해도 꿈 많고 왈가닥이던 독일계 혼혈 백인 친구였다. (지금은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지만.)
나는 늘 그렇듯 영어를 마구 섞어 대화를 걸었다.
“Hey Lisa, I have a chicken for lunch.”
순간, Lisa의 두 눈이 동그래지더니 폭소가 터졌다.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며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웃다가, 나를 보며 말했다.
“Wait, what?! Did you just eat a whole chicken for lunch?!”
(잠깐, 뭐라고? 너 점심에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먹었다고 했어??)
얼굴이 순식간에 화끈 달아올랐다.
내가 먹은 건 겨우 치킨 샐러드 한 접시였는데, 영어 문장 하나 때문에 ‘점심에 닭 한 마리를 해치운 괴력녀’로 둔갑해버린 것이다.
나중에야 알았다.
영어에서 a chicken이라고 하면 ‘닭 한 마리’를 뜻한다는 걸.
고기를 말할 때는 관사 없이 그냥 chicken이라고 해야 한다.
즉,
I had chicken for lunch. → 점심에 닭고기를 먹었다.
I had a chicken for lunch. → 점심에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먹었다.
고작 관사 하나가 의미를 완전히 뒤집어버린다.
‘닭고기 한 점 → 닭 한 마리 통째로.’
책에서는 몇 줄로 끝나는 문법 항목일지 몰라도, 실제 대화에서는 치명적인 오해를 낳는다.
집에 돌아와 나는 거울 앞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I ate chicken.”
“I ate a chicken.”
첫 번째 문장은 평범한 일상이고, 두 번째 문장은 만화 같은 괴담이다.
만약 한국에서 누군가 “오늘 점심에 돼지를 먹었어”라고 말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다들 기겁하며 웃지 않았을까. Lisa의 폭소가 바로 그런 반응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영어로 말할 때, 꼭 한 번 더 머릿속에서 문장을 굴려본다.
“이게 ‘닭고기’인지, ‘닭 한 마리’인지.”
관사 하나가 나를 괴력녀로 만들 수도 있고, 그냥 평범한 유학생으로 남겨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경험을 나만의 영어 공부 약관 1조로 정했다.
〈영어 약관 제1조〉: 관사 하나가 당신의 점심을 닭 한 마리로 바꿀 수 있다. 동의하시겠습니까?
작가의 생각
'a chicken'이 '닭 한 마리'를 의미하듯, 세상에는 작은 차이 하나가 엄청난 오해를 불러오는 순간들이 있다. 언어는 물론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심지어 나 자신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도 그렇다. 무심코 던진 관사 하나가 나를 '괴력녀'로 만들었듯,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작은 습관이나 생각이 타인에게는 거대한 '나'로 비쳐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문장을 곱씹듯, 나라는 존재의 '관사'를 조심스럽게 점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