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왜건만이 할 수 있는 것들
마침내, 가을이다. 갑자기 싸늘해진 날씨에 놀라 얼른 충주 그란 폰도에 다녀왔다. 폭염과 폭우 탓에 세워두기만 한 자전거가 눈에 밟힌 지 오래인 터였다. 자전거 대회하면 주차장이 온통 SUV나 픽업트럭으로 가득할 것 같지만 모르는 말씀.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자전거를 실은 왜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히 볼보의 크로스컨트리 모델은 종류별로, 심지어 구형 모델까지 흔하다.
대회장에서 소소한 즐거움은 차마다 싣고 온 자전거를 보는 재미다. 지붕 위 캐리어에 올리거나 견인 고리용 리어캐리어에 싣거나, 아니면 아예 안에 집어넣은 차들까지. 사실 자전거가 두 대 이상이라면 별 수가 없다. 차 외부에 추가장치를 달아 고정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안전한 건 실내수납이다. 주행 중에 뒤로 날아갈 염려도 없고 흔히 말하는 ‘돌빵’에 손상 받을 걱정도 없다.
나도 그래서 V60 크로스컨트리(이하 V60 CC)에 자전거를 싣고 갔다. 뭐라고? 차 안에 싣는다고? 그렇다. 자전거 한 대를 너끈히 담아내는 적재성은 왜건을 선택했을 때 가질 수 있는 큰 만족감 중 한 가지다.
많은 소비자가 V60 크로스컨트리(이하 V60 CC)를 구입할 때 함께 고민하는 차가 XC60이라고 한다. 두 대가 비교될까 싶지만 의외로 선택하기가 어렵다. 첫 번째 비교항목은 공간이다. V60 CC의 최대 적재용량은 1,431리터로 상당히 여유로운 적재공간을 선사한다.
나아가 공간의 활용도를 놓고 보면 고민이 더욱 깊어진다. V60 CC의 2열 시트를 접는 순간 고래등같은 공간이 나올 뿐만 아니라 루프캐리어나 리어캐리어를 활용해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다. 또 SUV보다 전고가 낮아 신장이 작거나 근력이 약한 사람도 루프 위에 짐을 편히 싣고 내릴 수 있다. 여기에 트렁크 플로어 파티션과 하부 여분공간은 V60 CC가 선사할 수 있는 특권이다.
거주공간도 마찬가지. V60 CC의 왜건 형태에서 오는 적재공간의 장점은 탑승객에게는 거주성의 상승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헤드룸과 숄더룸이 쾌적한 까닭에 높게 내려앉아 내다보는 것 빼고는 SUV의 그것과 거의 같다. 거주성을 높이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채광성이다. 넓게 뚫린 파노라마 썬루프와 정직하게 사다리꼴로 크게 뺀 2열 윈도와 리어 쿼터글라스 덕에 2열 탑승자는 통창으로 내다보듯 바깥을 바라볼 수 있다.
편의장비 측면은 무승부다. V60 CC가 가진 호화로운 편의장비는 XC60과 완벽히 같다.
서울에서 충주로 가는 길은 쭉 뻗은 고속도로가 대부분이지만 충주호에 다다를 때면 꽤 구불구불한 길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왜건만의 장점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바로 운전의 재미다. V60 CC의 승차감은 좌우로 기우뚱거리는 상황에서도 몸놀림이 크게 허둥대지 않는다. 또 세단보다 늘어난 후미 중량은 차의 앞뒤 무게배분을 안정적으로 바꿔준다.
V60 CC가 마냥 ‘전천후 짐차’가 아니라는 게 드러나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실내로 가득 차는 2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의 배기음이다. 볼보 차 중에 가장 듣기 좋은 배기음을 가진 차가 V60 CC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쩌다보니 크로스컨트리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글을 채웠다. 내친김에 한 가지 더하고 마무리 짓는다. 내가 참가한 그래블 폰도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레이스 대부분이 비포장도로에서 펼쳐진다. 천 길 낭떠러지를 옆에 두고 달리는 코스도 상당한만큼 경기의 안전한 운영을 위해 안전요원과 세이프티카가 곳곳에 자리했다.
흥미로운 점은 오프로드에 특화된 SUV가 선수를 지켜줄 줄 알았는데 왠걸. V90 크로스컨트리가 루프에 떡하니 자전거 캐리어를 싣고 세이프티카 엠블럼을 붙이고 진두지휘한다. 경기 운영요원에게 물어보니 “위급상황 시 선수의 자전거까지 싣고 달려야 하는 자전거대회 특성 때문에 대안이 없어요. 운전하는 저도 이 차를 믿을 수 있고요.”
그랬다. SUV가 할 수 있는 건 다 할 수 있는 차가 크로스컨트리였다. 그런데 크로스컨트리가 할 수 있는 걸 SUV가 다 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 아 참, 그러고보니 디자인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굳이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디자인은 그야말로 ‘개취’의 영역이니까. 만약 이 글을 끝까지 읽었는데도 여전히 고민이 되신다면 어쩔 수 없다. 취향껏 고르시라고 할 수밖에.
이재림(스튜디오 카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