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의 이름은 아마 차의 스펙 중 가장 중요한 제원일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는 차의 이름을 듣고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하고, 정보를 얻기도 하며, 차에게 회사가 거는 기대를 느끼기도 합니다.
차의 이름을 정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특정 단어를 쓰거나 그것을 축약, 변형해서 활용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알파뉴메릭’, 즉 숫자와 알파벳 등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요소를 조합하는 방식이죠. 현재 볼보는 후자의 방법으로 차량을 명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형태로도 다양한 이유로 차량의 이름을 정하곤 하죠. 한 번 살펴볼까요?
1927년, 스톡홀름의 볼보자동차 공장에서 최초로 굴러 나온 차의 이름은 바로 ÖV 4입니다. 스웨덴 어로 "Öppen Vagn 4 cylindrar", 즉 4기통의 오픈형 차량이라는 뜻이었죠. 정직한 이름대로 이 차량은 뚜껑이 없는 차량이었습니다. 하지만 추운 스웨덴 날씨에 오픈형 차량은 너무 가혹했고, 볼보자동차는 곧 프로토타입 중 한 대의 세단형 차량을 발전시켜 PV 4를 만들어 냅니다. PV 4라는 이름에서 PV는 승용차를 뜻하는 스웨덴어 Personvagn의 머리글자입니다. 승용 자동차, 그리고 4기통. 우리도 이름 짓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그 뒤로 계속 볼보자동차는 ‘알파뉴메릭’ 방식, 즉 앞에서 말씀드렸듯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으로 이름을 만듭니다 볼보자동차는 PV 시리즈를 아주 오랫동안 차의 이름으로 사용합니다. 1920년 후반부터 쓰이기 시작한 PV 시리즈(PV4)는 숫자를 바꿔가면서 무려 60년대 중반까지(PV544) 쓰이게 되죠. 승용차로 쓰이는 차량에 PV를 붙였다면, 스포츠형 지향 모델에는 P를 붙입니다. 바로 P1900과 P1800이 그것입니다. 보통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P1900이 먼저 1955년에 출시되었고, P1800이 1961년에 나중에 출시되었는데요. P1800은 이후 이름이 1800S, 1800E 등으로 바뀌며 엔진과 사양을 지속적으로 개선합니다. 이 차량은 1973년까지 약 12년간 동일한 형태로 판매되었습니다.
PV 외에도 세단에는 택시용 라인업도 있었습니다. 바로 TR670 시리즈입니다. TR은 스웨덴어로 'Trafikvagn', 즉 택시 차량이라는 뜻인데요. TR670은 택시캡 모델로 6기통, 7개의 시트를 가졌다는 뜻입니다. 670 시리즈는 제일 마지막 숫자가 9까지 바뀐 다음 TR700 시리즈로 업데이트되었습니다. 700 시리즈라고 해서 7개의 실린더와 0개의 좌석을 가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TR 시리즈는 704까지 나온 다음, PV800 시리즈로 모델이 바뀌게 됩니다. 당시 나오던 PV 시리즈의 뒷부분에 800이라는 숫자를 붙여 라인업을 세분화했습니다.
사실 볼보자동차는 많은 차종이 숫자로만 이름을 표기했습니다. 1로 시작하는 숫자들이 많았죠. 60년부터 70년대까지는 1로 시작하는 세 자리 숫자로 모든 세단과 럭셔리, 에스테이트를 표기했습니다. 120,140,164,145가 그것이었고, 나열한 순대로 고급차량이었죠. 순서가 살짝 헷갈릴 정도로 알쏭달쏭한 이름이었습니다.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더욱 헷갈렸습니다. 소형 패밀리 카를 300 계열이나 400 계열로 출시하고, 소형 고급 차량과 중형 고급 차량을 묶어서 200 시리즈로 생산하다가 다시 700 시리즈의 이름을 붙여 줍니다. 90년에는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 소형 패밀리 카 : 340,360,440,460,480
- 컴팩트 고급 차량 : 240
- 고급 차량 : 740,760
- 쿠페 : 780
약간 정신이 없죠? 그래서 90년 대 초, 볼보자동차는 소형을 400 시리즈로, 컴팩트 고급 차량을 800으로, 고급 차량을 900 시리즈로 재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량 이름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던 볼보자동차는 지금까지 쓰이기 시작한 네이밍 정책을 만들어 냅니다.
지금 판매되고 있는 볼보자동차의 차량들은 모두 90년대 말에 정립된 네이밍 규칙을 따릅니다.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이며, 알파벳은 차량의 성격을, 그리고 숫자는 등급을 나타냅니다.
알파벳은 S, V, XC, C의 네 종류가 있습니다. 각각 S는 세단(Sedan), V는 왜건(Versatile), XC는 크로스컨트리(Xross Country), C는 쿠페형의 라인업을 의미하죠. 숫자는 이 뒤에 각각 40, 60, 90을 붙입니다. 콤팩트-미드사이즈-플래그십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이렇게 재정비 함으로써 볼보는 차종명만 표기해도 그 차량의 성격과 위치를 잘 나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S90이 볼보자동차의 플래그십 세단이라는 것을, XC60이 미드사이즈 SUV라는 점을 말이죠.
이외에도 볼보자동차의 매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Cross Country라는 라인업을 별도로 운영합니다. 왜건 모델인 V90과 V60을 기반으로 최저지상고를 SUV 수준으로 높인 두 종류의 크로스컨트리 모델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SUV의 실용성과 세단의 안락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볼보자동차만의 특별한 세그먼트입니다.
차 이름을 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명명에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차량이 개발되는 단계부터 차량 제작사는 다양한 이름을 만지작거리게 됩니다. 특히 새로운 단어를 명명하는 형태의 차종은 매번 동일한 고민을 하게 합니다. 새로운 단어로 명명하는 방식은 신차의 느낌을 더욱 강하게 준다는 면에서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알파뉴메릭’ 형태로 만들어 낸 차명을 지속해서 사용하는 것은, 특히 오랜 기간 헤리티지를 쌓아가는 프리미엄 브랜드에게는 더욱 적합한 형태라 여겨집니다. 이와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차종인 S60은 벌써 세 번째 세대를 맞았습니다. 세계 어디서나 동일한 단일 차 이름에 대한 좋은 기억이 쌓여 가는 것, 그리고 그것이 받아들이는 고객들에게 신뢰의 상징이 되는 것. 볼보자동차의 자동차 명명법이 가지는 지향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