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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드롱 Dec 22. 2024

아줌마의 안방 작업실

숙면을 포기하고 얻은 놀이터


“더이상 못살겠으니까 헤어지든 방을 주든 선택을 해.”


우리집은 한국에서 가장 흔하다는 방3개짜리 옛날 아파트다. 몇 년 후 리모델링으로 뼈대만 남기고 부순 다음 다시 지을 예정이라 아마 이 집의 마지막 주인은 우리일 것이다. 어차피 허물어질 집으로 이사오면서 그동안 참았던 소원을 다소 격하게 말했다. 나만의 작업실을 달라고.


세월에 손마디는 굵어지고 뒤꿈치가 두꺼워졌지만, 그 동안 뭔가에 닳아 터질 듯 얇아진 마음은 아무도 모르게 조마조마했다. 어쩌면 좋을까. 자궁같은 장소가 필요했다. 다행히도 남편은 내 선언의 순간을 예상한 듯 선선히 그러라고 했다. 아이가 아직 어리고, 온 가족이 셋 뿐이라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잠은 난민촌 무드로 다같이 작은 방에서 뒹굴며 자기로 했다. 여유로운 부부침실을 포기한 댓가로 나는 우리집서 젤 큰 공간을 얻었다. 혼자 방에서 뭘 하냐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는다. 아이가 학교 간 사이 낮잠도 자고 영화도 보고 멍도 때린다. 명분은 작업실이었지만 사실 작업보다 중요한  것이 격리기능이다. 시시때때로 달라붙어 각자의 필요를 요청하는 가족들로부터의 분리이자, 끊임없이 할 일을 생각나게 하는 집 자체. 곧 먼지와 기름때와 설거짓감으로부터의 도망이다. 일상의 요구로부터 재빨리 피신 할 곳을 확보해놓은 덕에 나는 미치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샛노랑도 아니고 주황이거나 황토색도 아니고 핑크색도 아닌 그 중간의 어떤 색깔이 있다. 그것은 팔레트의 물감들로 만들 수가 없다. 오아시스처럼 공기와 햇빛과 기억들이 필름처럼 겹쳐진 색이다.  가진 게 없어도 괜찮은 곳, 광야의 신기루처럼 황홀한 곳, 시간이 흐르기를 깜박 놓친 장소의 색이다. 들이키는 숨이 내쉬는 숨보다 뜨거워 괜히 마음을 옹송그릴 필요가 없는 곳, 나는 뭐든 할 수 있는 용기를 내도 되는 곳을 늘 꿈꾸었다.


식탁으로 쓰던 흰 테이블을 떼어버린 창문 앞에 놓았다. 의자에 앉으면 맞은 편 아파트 3동이 보인다. 얼룩덜룩한 짙은 회색 벽에 따개비처럼 촘촘하게 들어찬 아파트 창문들이 지구에 붙어 연명하는 고단함을 잊지 말라고 했다. 매일 보는 풍경에 초록이 있기를, 계절의 공기가 늘 드나들기를, 늦은 밤에도 항상 불 켜진 집처럼 안온하기를 꿈꾸었지만 서울에서 그런 비싼 풍경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아쉬운대로 그걸 만들어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노을색 페인트를 주문했다. 설명에는 저녁 햇빛을 머금은 오렌지색이라고 적혀있었는데 열어보니 그냥 유치원 노란색이었다. 색깔을 설명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의 차이는 이렇게나 크다. 반품하기가 귀찮아서 그냥 쓰기로 했다. 전등을 달 수 없는 콘크리트 베란다 벽과 천장을 밝히기 위해 노란 페인트를 롤러로 밀었다. 여러 번 겹쳐 칠해야 색이 나오기 때문에 팔에 힘이 자꾸 빠졌다. 물감 방울들이 손가락과 머리칼과 티셔츠에 튀고 흘렀지만 나는 샛노란색 광기에 휩쓸려 밤까지 쉬지 않고 회색 그림자를 지웠다.


초록색 산 대신에 오렌지 자스민, 제라늄, 가짜 스투키필름, 야자수, 몬스테라를 가져다 놓았다. 녹색이 필요하면 그들을 보면 된다. 창의 반쪽에 숨쉬는 식물들을 보고 또 반쪽 하늘로는 가끔 비행기가 지나가며 그곳이 어딘가로 이어지는 길임을 알려주니 족하다. 드나 들 바람을 위해서는 창문이 필요했는데, 원래 이 방에는 바닥서 50센티쯤 높이에 베란다와 방을 나누는 큰 창문이 있었다. 유행이 지난 옥색 나무 틀로 만들어진 뿌연 겉창유리엔 옛날식 격자무늬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궁상맞아보여 싫었다. 창문을 바꿀까 생각했지만 몇 년 안쓰고 버려질 게 못내 아까웠다.


남편은 나와 체질이 달라 찬 기운을 싫어한다. 사시사철 언제나 문을 꽁꽁 닫고 있다. 반면 나는 집안 공기가 순환이 안되면 숨이 막힌다. 내가 창문을 열고 돌아서면 남편이 닫고 나는 다시 열고 하는 식으로 10년 간 실랑이를 하다보니 좀 극단적인 상태까지 왔다는 건 인정한다. 어쨌든 내 방만큼은 바람이 드나들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방 저 방 수시로 불을 끄고 문단속을 하는 남편을 떠올리자 아예 닫을 창문이 없게끔 하자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어느 여름, 남편이 출근한 사이에 창문을 모두 내다 버렸다.


생각보다 그것들은 대단히 무거웠다. 그리고 지난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키보다 높은 창문을 들고 낑낑대며 옮기고 있는 꼴을 경비아저씨가 보고 기막혀했다. 여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바깥양반 들어오면 옮기지 왜 지금 이러냐고.

‘아저씨는 모르실거예요. 지금 버리지 않으면 못버린단 말이예요.’ 나는 속으로 외쳤다. 그렇게 총 6짝의 목재 창문을 재활용 쓰레기장에 옮겨놓고 수거딱지까지 붙여놓고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나의 승리다. 가을 쯤 돼서 창문 어디갔냐고 한들 이미 없다 이거야.

그렇게해서 내 방은 틈이 숭숭 난 얇은 알루미늄 샷시로 된 베란다와 합쳐졌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겠지만 뭐 어떤가, 얼어죽어도 쪄 죽어도 내 방이다.


아이를 낳고서야 나는 나에 대해 더 알게 됐다. 나는 생각보다 못말리게 개인적인 성격이었다. 내 시간과 공간이 없으면 불행해졌다. 물론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소중하지만 일정분량은 나를 위해 써야 하는 것이다. 내가 소녀였을 때, 늘 엄마의 시선이 책이나 허공에 향해 있는 것이 외로웠다. 그러나 신문을 펼쳐놓고 사과를 깎아먹거나 쥬시후레쉬 껌을 씹으며 책을 읽는 엄마의 시간은 감히 방해할 수 없었다. 그때가 엄마가 제일 행복해 보였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자식의 얼굴을 보는 것보다 더 만족해하는 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서늘한 그 허방을 내 아이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엄마가 되어서야 엄마를 닮았다는 것을 알았다.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어서 자꾸 들켰다. 그보다 어려운 것은 내 방의 정당성을 나로부터 얻는 일이었다. 그 질문은 수시로 들이닥쳐 나를 꼬집는다. 넌 도대체 뭘 할건데? 남편 서재를 거실로 쫒아낼 만큼의 가치가 있는거야?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이 벽과 방들은 곧 없어질거잖아. 그때까지만, 내가 좀 숨을게. 라고 나는 대답한다. 그리고 이 집에 눈이 있고 입이 있다면 내게 말할 거라고 믿는다. 그러라고. 마음껏 어지르고 마음껏 숨어 아무거라도 쓰고 그리고, 잠을 자고, 깨어나면 좀 울어도 된다고. 그게 내 마지막 시간으로 좋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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