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속도와 저작권의 시간차

by Vee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른 이의 영상을 소위 ‘불펌’해 수익을 창출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이야기였는데, 순간 내가 가볍게 보았던 동물 영상, 드라마 쇼츠, 밈 등이 떠올랐다. 여러 영상을 가져다 붙인 그 영상들은 당연히 원본이 별도로 있었을 텐데, 나는 출처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원작자가 사용을 허락했을 거란 생각은? 부끄럽지만 없었다. 저작권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가볍게 소비만 했을 뿐이다.

이는 영상뿐만이 아니다. 그림, 음악, 글, 사진 등 이제 모든 창작물은 원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쉽게 공유되고 재사용된다. 기술의 발전, 특히 AI의 등장으로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반면 동시에 누구나 ‘퍼가기’도 쉬워진 시대다. 창작물은 풍요롭다 못해 넘쳐흐르지만 역설적으로 저작권의 의미는 흐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새롭지 않다. 역사적으로 저작권은 창작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시간을 거슬러 고대 문명 시대로 가보자.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여전히 경이롭다. 다만 우리는 기자의 대피라미드에 벽화를 그린 이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그 당시 창작자는 국가 또는 신전에 소속된 전문 장인이었기 때문이다. 창작의 자유도, 작품의 소유권도 모두 국가에 귀속되었다.

중세시대에는 신을 위해 개인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시대 의외의 집단이 예술가로 떠오르는데, 바로 성직자들이다. 그들은 성경을 필사하며 정교한 삽화도 같이 그려 넣었다. 하지만 자신은 신의 도구일 뿐이라 생각해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신의 권위 앞에 스스로 저작권을 내려놓은 셈이다.

또한, 길드가 등장했지만, 조합 규칙과 후원자 요구가 우선시 돼 창작자의 권리는 고려되지 않았다. 표현 방식은 공공재였고 창작자의 권리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시기의 창작은 의무와 생존에 가까웠다. 표현의 자유도 주제를 선택할 권리도 없었고 오히려 정해진 규칙을 어기면 불경죄나 반역죄로 여겨지기도 했다.


르네상스에 이르러서야 예술가는 작가로서 존중받기 시작했다. 상업과 금융의 발달로 등장한 신흥 부유층이 예술을 후원하며 작가의 개성과 이름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예술가들은 경제적인 안정을 보장받고 작품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 가능해졌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후원 제도의 대표적인 사례다. 로렌초 데 메디치의 후원으로 밀라노로 파견된 그는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작에게 궁정 화가이자 공학자로 채용된다. 최후의 만찬이 이때 탄생하였고, 회화뿐 아니라 조각, 무대 디자인, 도시 설계 등 다방면에서 그는 창조의 꽃을 피웠다. 그 후 다 빈치는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에게 초청을 받아 왕실 제1화가이자 기술 고문으로 활약했다. 그는 국왕의 지원 아래 그의 걸작인 모나리자를 완성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저작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으로 명성을 얻을 수는 있었지만, 작품의 소유권은 후원자에게 있었으며 복제나 모방을 막을 법적 장치는 없었다.


그러던 중 1450년, 저작권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발명품이 등장했다. 바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기다. 필사에 의존했던 책은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지식은 왕족과 교회, 부유층 등 소수에서 대중에게로 확산됐다.

하지만 지식의 대중화는 새로운 문제를 불러왔다. 마르틴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신약성경은 여러 인쇄소에서 무단 복제되었고, 그는 분노했지만 법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여전히 작가는 저작권이 없었고, 출판권은 인쇄소에 있었다. 모두가 책을 누릴 수 있게 된 세상에서도 정작 창작자는 보호받지 못했다.

마침 17세기 영국에는 지식은 특권층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누려야 한다는 계몽주의가 확산되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710년 세계 최초의 저작권법인 앤 여왕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작가에게 14년간 복제권을 보장하고, 출판사가 작가의 동의 없이 책을 인쇄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이는 창작자 권리 보장이 더 많은 창작과 문화적 풍요로 이어진다는 인식을 처음 제도화한 사례였다. 앤 여왕법을 시작으로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각국에서도 저작권 관련 법적 장치가 마련되기 시작했고, 1886년에는 세계 최초의 국제 저작권 협약인 베른 협약이 체결되었다. 이 협약은 문학뿐 아니라 음악, 연극, 건축, 사진 등 다양한 창작물을 보호 대상으로 포함시켰고, 이제 작가는 다른 나라에서도 자신의 작품이 무단으로 도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창작은 몇천 년 전부터 이루어졌지만 저작권이 보장된 건 몇백 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 사이 기술은 발전하여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다. 심지어 프롬프트 한 줄이면 AI가 영상, 이미지, 텍스트까지 척척 만들어낸다.

하지만 AI 역시 저작권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AI는 원작자의 동의 없이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콘텐츠를 만든다. 법적으로 정의할 수 없지만 윤리적으론 '불펌'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월트디즈니컴퍼니는 AI 이미지 생성 기업 미드저니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미디어 그룹들은 빅테크 기업이 학습을 위해 수집한 창작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으며(연합뉴스, 2025.06.12), 빅테크 기업은 공익 목적의 공정 이용을 근거로 AI 학습이 가능하다고 맞서고 있다. 공정 이용은 공익적 목적이라면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미국 저작권법상의 조항이다. 그러나 해당 논리의 타당성엔 의문이 제기된다. 김명주 서울여대 교수는 “현재는 소수 기업의 이익 중심으로 AI 학습이 이뤄지고 있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디지털타임스, 2025.06.10).

이처럼 창작을 쉽게 하는 기술을 위해 저작물이 무단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기술의 발전이 창작자 권리 보호와 도용 문제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요구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개인 사용자도 예외는 아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내 경험처럼 우리가 접하는 콘텐츠 중 오리지널은 드물다. 대부분 기존 콘텐츠를 재가공한 형태다. 플랫폼들은 일정 범위의 2차 창작을 허용하지만, 원작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삭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많은 이들이 재편집 콘텐츠를 제작해 조회수를 노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창작이 쉬워진 지금, 기술의 발전은 오히려 불펌의 유혹을 키우는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국가나 종교를 위한 창작만 허용되던 시대에서 개인이 창작의 자유를 얻고 마침내 자신의 작품에 권리를 행사하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저작권이 보장될 때 더 다양한 예술과 지식이 세상에 등장하고 사회는 문화적으로 풍요로워진다. 지금 우리는 기술이 창작의 방식을 빠르게 변화시키는 전환점에 서 있다. 이제는 저작권 제도 역시 그 속도를 따라가야 할 때다. 이번엔 조금 더 빨리 창작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