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비난할 수 없는 각자의 인생 ft. 오랜만의 업데이트
안녕하세요 여러분,
잘 지내셨나요?
굉장히 오랜만에 포스팅을 올려요.
계속 글 써야하는데, 써야하는데, 머리속으로 걱정만 하다 드디어 노트북 앞에 앉았어요.
선선해진 날씨에 맞춰 제 브런치에도 변화를 줘볼까해요.
기존에는 고전 속 인물 심리만 연재했다면,
앞으로는 그때그때 생각나는 글들을 가볍게 끄적일 생각이에요.
순간의 영감을 기록하는게 저에게도 쓰기에 부담이 없고, 여러분도 읽기 쉽지 않을까 싶어서요.
물론 고전 속 인물 심리도 계속해서 연재할 예정입니다.
좀만 기다려주세요 :)
그럼 오늘은 최근 읽고 있는 서머싯 몸의 '면도날'에 대해 쓸까해요.
아, 아니에요, 이젠 다 읽은 책이에요.
방금 약 일주일을 붙잡고 있었던 '면도날'을 작품해설까지 다 읽었거든요.
결말은 이미 스포당해서 알고 있었지만, (리뷰 검색해보다가 알게되었어요...)
그래도 끝내는 것이 아쉬워 아껴아껴 읽었어요.
특히 마지막에 래리가 인도에서 깨달은 점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집중해서 읽어야지 라는 생각에 독서 타이밍이 올때까지 미루어두었다가 마침내 오늘 책을 덮었네요.
(하루 일과를 마치고 비몽사몽일때 읽으면 글자는 눈에 들어와도 내용은 안들어와요... 멀쩡한 정신에 읽어야지 하고 아껴두었답니다.)
서머싯 몸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에요.
예전에 고전 속 인물 심리에도 그의 '달과 6펜스'를 리뷰한 적이 있죠.
(아래 링크에서 읽으실 수 있으세요. 달과 6펜스도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찰스 스트릭랜드가 나오죠)
https://brunch.co.kr/@vonajourney/13
쉬운 문장으로 시원시원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간달까요.
그의 글을 읽다보면 상황이 매우 직관적으로 머리속에 그려져요.
그러면서 등장인물들이 정말 생생하게 각인이되죠.
인물의 행동, 표정, 대사만으로도 그들의 감정이 다 느껴지거든요. 마치 화자처럼 제가 옆에서 그들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저로서는 흡사 대본 스타일의 문체 같아 익숙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요. 이렇게도 소설을 쓸 수 있다니 말이에요.
'면도날'은 아마 이미 많은 분들이 읽으셨을지도 몰라요.
특히 제 브런치를 읽으시는 분이라면 고전에 관심이 많으실테니, 작년에 역주행 한 소설이란 것도 알고 계실 것 같아요.
문가영 배우님의 추천도 있었고,
요즘 다들 고민이 많잖아요. 다들 물질적인 성공을 (예를 들면 억대연봉과 서울 부동산이랄까요.) 외치는데 그게 정말로 내가 원하는 삶일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만이 정답일까? 나답게 사는건 불가능한걸까? 아니 애초에 그러면 안되는 걸까?
이런 혼란의 시기에서 '면도날' 속 여러 인물 군상에 많이 공감하신 것 같아요.
사회적 굴레를 거부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래리도 있고,
명예와 사교계에 목을 메는, 소위 말해 있어보이고 싶어하는 엘리엇,
세속적인 (그리고 어쩌면 가장 보통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사벨,
슬픔에 스스로를 파괴하는 소피 등등
모두가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이거든요.
서머싯 몸은 어떤 삶이 옳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다 보여줄 뿐이죠.
딱히 나쁜 사람도 없어요. 그들의 상황이 되면 그럴 수도 있겠다 납득이 되죠.
그래서 이 소설이 술술 읽히는 것 같아요.
진짜 우리네 인생처럼 이런 저런 인물들의 인생이 한치 앞도 알 수 없이 전개가 되거든요.
그러면서 각자의 인생 철학에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한번더 고민하게 만드는게 '면도날'의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간략한 스토리를 말하자면,
래리와 이사벨은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고, 자연스래 연인으로 발전해 약혼한 사이입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활약한 래리는 귀국 후 취업도, 이사벨과의 결혼도 거부합니다.
전쟁의 참혹함에 충격을 받은 래리는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하죠. 책을 읽고 탄광에서 일하는 등 여러 나라를 떠돌며 깨달음을 얻고자 공부를 하고 싶어해요.
이사벨은 남들처럼 돈벌고 결혼 생각이 없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둘은 결국 헤어집니다. 그리고 이사벨은 둘의 친구이자, 부유한 증권회사의 아들인 그레이와 결혼을 하죠.
래리와 반대로 이사벨의 삼촌인 엘리엇은 평범한 미국인이지만 처세와 사업 수단이 좋아 파리의 상류사회에 진입한 인물이죠. 파리에 열리는 모든 파티에 초대를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에요. 혈통과 전통을 따지는 예전 세대를 대표하기도 하죠.
이 셋과 주변인물의 삶이 실타래처럼 엮여 소설이 진행됩니다.
과연 이들은 어떠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요?
이제 '면도날'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문장을 소개하려 해요.
저의 단상도 같이 남길게요.
(페이지는 믿음사 버전입니다.)
마치 세상 모든 일을 다 아는 사람들 같았다. 이사벨은 이야기에 푹 빠져 귀를 기울였다. 그녀로서는 휼륭한 교양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이런게 진짜 사는거야.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세련된 세계의 한가운데 있는 기분은 정말 황홀했다. (p.132)
래리가 묵고 있는 허름한 호텔방에서 그가 일년에 3,000달러로 살자고 하자 이사벨은 이를 거부하죠. (현재 원화 가치로 약 6,700만원이네요.) 그리고 삼촌 엘리엇의 세련되고 호화로운 집에서 상류층 사람들은 만난 이사벨은 이곳이 내가 있어야할 곳이라 느끼죠. 래리와 이사벨의 비교되는 삶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어요.
스스로 소유욕이 강한 여자라고 생각해 본 적 있나? 그레이가 깊은 시인의 감성을 갖고 있다고도 했고, 잠자리에서 아주 열정적인 연인이라고도 했어. 그렇다면 두가지를 합한 것보다 네게 훨씬 더 중요한 무엇, 그건 바로, 그리 작진 않지만 아름다운 너의 그 두손 오목한 곳에 그를 붙잡아 두고 있다는 느낌이지. 래리였다면 언제든 거기서 빠져나갔을 거야. (p275-276)
'면도날'에선 서머싯 몸, 작가 본인이 내래이터로 나옵니다. 그가 이사벨에게 건내는 말이죠. 래리에 대한 이사벨의 사랑은 어쩌면 소유하지 못해서 나온게 아닐지 묻는 장면입니다. 소유할 수 없어 더 애타게 원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죠. 이사벨도 그래서 래리를 원했을까요?
사랑이 열정이 아니라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다른 것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거야. 그리고 열정은 서로 만족할 때 커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장애가 있을 때 더욱 커지는 법이지. 키츠가 그 송가에서 그리스 항아리에 그려진 사람, 그러니까 사랑에 빠진 용감한 연인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한 건 무슨 의미였을까? '영원히 사랑하라. 그녀는 영원히 아름다우리.'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바로 그녀가 쟁취하기 어려운 상대이기 때분이지... 너희 둘 사이엔 열정이 개입되지 않았어... 열정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내 생각이 맞는다면 그건 열정이 가슴을 사로잡으면 가슴은 사랑을 위해 세상을 잃어도 좋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그럴듯한, 심지어는 결정적인 이유들을 만들어 낸다는 뜻이야. 그래서 명예를 희생시켜도 좋고 치욕도 그리 큰 대가가 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지. 열정은 파괴적인 거야... 그리고 열정을 무언가를 파괴하지 않으면 소멸해 버려. 그러고 나면 수년 동안 인생을 허비했다는 걸 깨닫고 비참한 기분이 들겠지... 껌 한 쪽만도 못한 상대에게 영혼을 전부 쏟아부엇음을 깨닫는 비참한 순간이 찾아오는 거지 (p.279-281)
서머싯은 이어서 이사벨에게 사랑과 열정에 대해 말합니다. 이사벨은 현실적으로 바로 그레이와 결혼함으로서 열정이 들어갈 틈을 막아버렸죠.
이사벨에게 너는 남편과 아이들을 충실하게 사랑하긴 하지만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건 아니라고 지적하고 싶었지만 적절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p.328)
열정을 계속해서 나오죠. 남편의 죽음 이후 본인을 놓아버린 소피를 이사벨이 강력하게 비난하자 서머싯이 속으로 생각하는 내용입니다. 이사벨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소피처럼 행동할 수 없다하죠. 소피가 천성적으로 불안정한 여자였다고요.
충실하게 사랑과 열정적으로 사랑... 완벽한 표현인 것 같아요.
이사벨은 삶의 모든 굴곡에서 충실하게 살아왔어요. 그래서 본인을 지킬 수 있었죠.
정말 인정머리들도 없습니다. 이젠 지긋지긋합니다. 전부들 지겹단 말입니다. 내가 파티를 열 때는 그렇게 야단스럽게 나를 치켜세우더니 이제 늙고 병이 드니까 필요 없다 이거지요... 그들을 위해 내 모든 걸 보여 줬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얻은 게 뭡니까?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단 말입니다... 그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죽음을 코앞에 둔 노인이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다고 아이처럼 우는 모습을 보고있지나 몹시 서글처졌다.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결딜 수 없을 만큼 그가 애처로웠다 (p.380)
사교계의 냉정함을 보여주는 걸까요?
엘리엇이 나이들어 쇠약해지자 아무도 그를 찾지 않습니다. 그렇게 엘리엇의 호의를 받았는데 말에요.
병에 걸려 누워있는 엘리엇이 우는 모습을 보니 저도 복합적인 감정이 드네요.
아니 파티가 뭐라고... 사람들도 참 매정하다...
우연히였죠. 적어도 그땐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몇 년 간의 유럽 생활 끝에 치러야만 했던 필연적인 결과엿던 것 같아요. 그동안 저한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었죠. 하지만 돌이켜 보면 결국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마치 내가 그들을 필요로 할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처럼 말이죠. (p. 409)
래리는 항상 예고없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죠. 이번에도 서머싯과 래리는 파리에서 우연히 다시 만납니다.
래리는 그간 깨달음을 찾는 여정에 만난 사람들이 운명같았다 하죠.
모든건 결국 필연일까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먼 훗날 사람들이 좀 더 커다란 통찰력을 얻게 되면, 결국 자신의 영혼에서 위안과 용기를 찾아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어떤 대상을 숭배하고자 하는 욕구가 잔인한 신들에 대한 기억의 잔재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래리는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사들과 생활하죠. 하지만 그는 종교를 더욱 불신하게 됩니다. 신은 왜 그렇다면 끔찍한 것들을 창조했을까요?
그는 대신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라 합니다.
요즘도 비슷한 것 같아요. 노이즈가 정말 많죠. 무조건, 절대 이런 식으로 겁주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노이즈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이 가장 필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우리에게 돈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성공의 상징에 불과하죠. 우리 미국인들은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더 이상주의적인 사람들입니다. 엉뚱한 것에 대해 이상을 세웟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요. 저는 인간이 세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이상이 자기 완성이라 생각하거든요...그렇다면 그것을 추구하려 노력하는 게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요?... 한 인간이 고결하고 완벽해지면 그런 성품의 영향력이 널리 퍼져서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그 사람에게 이끌리게 됩니다. (p.464)
래리는 인도 여행을 다녀온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겠다합니다. 본인이 자신을 완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합니다. 트럭 운전사를 하고 그 다음엔 택시 운전사를 하면서요. 속해있던 미국을 떠나 혼자서 다닌 모든 여정 끝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래리의 결정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져요. 결국은 사회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하는 걸까요?
이봐, 자넨 늘 돈이 있엇지만 난 그렇지 않았어. 돈은 나한테 내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줬거든. 그건 바로 자유지. 돈이 있으면 못마땅하게 구는 사람한테 언제든 꺼져 버리라고 말할 수 있잖아. 그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자넨 모를거야 (p.469)
가지고 있는 돈을 포기하겠다는 래리에서 서머싯은 돈은 중요하다 말입니다.
현실에서는 돈이 중요합니다. 래리도 여행을 다닐 수 있던 이유가 급할때 쓸 수 있는 돈이 은행에 있었거든요. 마냥 빈털터리로만 다닌게 아니라는거죠. 소비욕이 없었을뿐.
하지만 래리는 이렇게 응수합니다. - 저는 돈이 없어도 꺼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내 의도와는 달리, 이 글의 일종의 성공담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내가 등장시킨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 원하는 바를 얻지 않았는가? 엘리엇은 사교계에서 명성을, 이사벨은 막대한 재산을 확보하여 활동적이고 교양있는 지역사회에서 확실한 지위를 얻었으며, 그레이는 안정적이고 수익성 높은 직업과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하여 6시에 나설 수 있는 사무실을 얻었다. 수잔 루비에는 안정을, 소피는 죽음을, 래리는 행복을 얻었다. 물론 '자칭' 지식인들은 거드름 피우며 트집을 잡겠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대중은 모두 성공담을 좋아한다. 그러니 나의 결말도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고는 할 수없다. (p.515-516)
소설의 마지막 문단이에요.
결국 모두가 원하는 삶을 얻으며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우리네 인생도 결국 각자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을까요?
소설처럼 잘 풀렸으면 하는 마음이 드네요.
마지막으로 왜 제목이 '면도날'인지 같이 고민해보았으면 좋겠어요.
소설의 시작은 아래 인용으로 시작하거든요.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리,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 카타 우파니샤드
면도날의 칼날을 넘어서는 일... 래리 다른 인물들은 각자의 구원으로 간걸까요?
면도날의 칼날을 넘지 않은 인물들도 있는 것 같은데 말에요.
저는 평범한 사람이라 래리처럼 비범하게 행동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보통 사람처럼 현실과 나의 자아실현을 타협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 선을 어디까지로 할지... 그걸 정하는게 인생의 과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원하는 자아실현은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이걸 평생해야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드네요.
그리고 언젠가는 저도 면도날을 넘어서야할 때가 올거라 생각이 들어요.
래리만큼은 스케일은 아니겠지만, 제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하는 순간이 오겠죠.
여러 인생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결국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로지 선택만 있을 뿐이죠.
그리고 그 선택을 책임질 수 있는 용기.
우리에게 필요한건 이게 다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