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몰랐다
어린 시절, 우리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3동짜리 5층 건물.
그리고 우리는 3층이었다.
어른들은 그걸 로얄층이라고 불렀다.
앞이 훤히 트여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망’이 좋았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대전 시내 절반쯤 거의 다 내려다보였고,
맞은편에는 큰 교회가 있었다.
그 아파트도, 그 교회도 아직 그 자리에 있다.
집에서 조금 내려가면 큰 도로가 있었고
그 옆에는 기찻길이 함께 있었다.
그 시절 우리 집에는
병아리가 5마리나 있었다.
둘째 언니는 동물을 유난히 좋아했다.
어디선가 데려온 노란 병아리 다섯 마리.
아파트에서 병아리를 키운다는 게
그때는 이상하지 않았다.
그냥 우리 집의 방식이었다.
겨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언니는 병아리가 춥다며 한마리를 이불 안으로 데려갔다.
다음 날 아침, 병아리는 언니 배아래서
깔려 사망하셨다 ㅋ
웃낀데 너무 슬픈...
사랑은 선의로 시작하지만
때로는 무게를 모른다
그 후에도 병아리는 또 생겼고
나는 병아리가 닭이 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다.
기차 소리가 들리면
닭들은 쪼로로록 베란다로 달려갔다.
정확히는 베란다 방범창 앞으로.
깃털이 덜 정리된 몸으로 줄을 서서
철창 사이로 목을 길게 내밀고
지나가는 기차를 바라봤다.
그 모습이 우스웠다.
작은 존재들이 세상을 구경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뒤에 서서
그 장면을 구경했다.
시간이 흐르자
노란 털은 사라지고 깃털이 자랐다.
머리 위에는 붉은 벼슬이 올라왔다.
아마 대부분 수컷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새벽이 조용하지 않았다.
“꼬끼오—”
아파트 공기를 가르는 소리.
그 울음은 생명의 증명이었지만
동시에 경고였다.
이곳은 더 이상 닭이 살 공간이 아니라는 것.
결정은 결국 내려졌다.
어느 새벽이었다.
기차 소리가 나기 전
나는 먼저 베란다로 나갔다.
다섯 마리 중 한 마리가 없었다.
순간 이상했다.
구석을 들여다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부엌으로 갔다.
가스레인지 위에
오래 쓰던 큰 알루미늄 냄비가 올려져 있었다.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
사라진 닭 한 마리가 있었다.
삼계탕이 되어.....
어제까지 방범창에 머리를 내밀고
기차를 바라보던 존재가
하얀 국물 안에 잠겨 있었다.
그때의 그 충격은 아직도 선명하다.
나는 그때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살아 있는 존재에서 음식으로,
그 사이의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 시절 닭은
닭가게에 가져가 털을 뽑아와야 했다.
국민학교 앞 육교를 건너면
닭털을 뽑는 가게가 있었다.
엄마는
그 새벽에 거길 다녀오신 것이다.
솔직히 그 어린나이에는 그 생각도 했었다.
혹시 엄마가 잠도 안자고
새벽 내내 닭털을 뽑았나?ㅎ
우리가 키운 닭을 안고.
엄마에게는
보양식이었을 것이다.
정성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우리에게 삼계탕은
음식이 아니라 대박 큰 사건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제일 먼저 알았다.
그 뒤의 장면은 또렷하지 않다.
다만 기억나는 건
집안 공기가 하루종일 무너졌다는 것.
냄비는 식어갔고,
그 삼계탕은
결국 아무도 먹지 못했다.
지금은 안다.
엄마는 현실을 선택했고
우리는 정서를 붙잡고 있었다는 것을.
같은 닭을 두고
해석은 달랐다.
누군가에게는 단백질이고
누군가에게는 생명이었다.
삼계탕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그 새벽을 떠올린다.
뚜껑을 열던 순간.
그리고 아직 따뜻했던 국물 위에
겹쳐 있던 시간.
그날 우리는
닭을 잃은 게 아니라
어린 마음의 한 조각을 건너왔다.
그 이후로
삼계탕은
그냥 음식이 아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