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도망치던 아이가 아침을 차리기까지 / 책임은 늘 나중에 끓는다)
어제 너무 피곤한 나머지
오늘은 조금 늦잠 자고 싶고,
바로 일어나기 싫지만
일찍 새벽에
눈을 뜬다.
눈을 떠야만 했다.
세수고 뭐고 없다.
눈곱 뗄 시간도 없이
바로 주방으로 향한다.
손을 닦고,
아침 식사 준비를 한다.
내가 먹을 음식이 아닌
78세 되신 내 엄마를 위한 밥상.
공교롭게도 오늘은 엄마 생신이다.
미안하지만 엊그제 미리 미역국을 끓여 드렸기 때문에
오늘은 다른 반찬과 국으로 대체하기로 한다.
국민학교 시절, 나는 학교 가는 게 유난히 싫었다.
학교에 간다며 집을 나섰지만 발걸음은 늘 집 근처를 맴돌았다.
공사판, 골목, 이름 모를 공간들.
그곳에서 시간을 흘려보내며, 나는 하루를 건너뛰곤 했다.
엄마는 늘 나를 걱정했다.
그때를 회상해 보면
5명의 자식들의 아침을 챙겨야 했고,
이른 시간에 출근을 해야 하는 엄마셨는데 ,
그렇게 바쁜 시간에 나는 정말 애물단지 같은 아이였다.
그 바쁜 아침에도 엄마께서는 내가 정말 학교에 갔는지 확인해야 했고,
어느 날은 결국 나를 찾아내 끌고 학교로 데려갔다.
그땐 몰랐다.
그 손이 얼마나 조급했고, 또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시간이 흘러
나는 48세, 엄마는 78세가 되었다.
엄마는 한글 공부를 다니고, 청소 일을 나간다.
그리고 그 길을 이제는 내가 함께한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차린다.
졸린 눈으로 밥상을 준비하며 문득 생각한다.
엄마도 매일 이런 아침을 살았겠구나 하고.
내가 도망치던 그 시간들 속에서
엄마는 나를 책임지고 있었고,
지금 나는 그 책임을 이어받아 걷고 있다.
인과응보라는 말이
꼭 차갑게 들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인과는 벌이 아니라, 이어 짐이기도 하니까.
돌려받는 데에는 예고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돌아온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다.
[ 첫 번째 반찬] 양배추 삶은 것
엄마께서는 위가 좋지 않다.
위에 좋다는 걸 웬만한걸 다 사드리고
드시게 했지만, 결국은 내과 가셔서 역류성 식도염 약을 정말 장기복용한 탓인지 내성이 생기신 건지
그 어떤 것도 효과가 없었다.
간신히 지금은 병원약을 못 드시게 하고
매일 양배추를 삶아서 식사에 드시게 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도 든다.
나 몰래 혹시 병원에서 처방받아
약을 드시고 계신 건 아닐지... 말이다.
[ 두 번째 반찬] 참치 김치 볶음
몇 달 전부터 계속 만들어 놓으신 반찬이다.
동생과 언니가 엄마가 만들어준 참치 김치 볶음이
맛있다고 하니 계속 몇 달 동안 꾸준히
만들어놓으셨다가
너무 계속 만드시는 것 같아
그만 만들어 놓으라고 핀잔을 준 반찬이다.
이제는 거의 다 떨어져 간다..
[ 세 번째 반찬] 계란프라이
엄마께서는 근육이 다 빠진 상태라
콩, 두부, 달걀 이런 걸 많이 드셔야 해요.
라면서 매일 달걀 프라이나 달걀찜, 장조림으로 해서 드리고 있다.
오늘은 간단하게 계란 프라이로 준비해 드렸다.
그런데 솔직히 근육은 나도 없다.
나부터 먹어야 되는데 말이다...
[ 네 번째 반찬] 어묵탕
아침에는 거하게 차리지 않고
간소하게 간편하게 정말 소식이면서
속이 편안한 음식들로 준비를 해야 되는데
나는 그게 안된다.
그래도 엄마께서 좋아하시는 식감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고
오늘은 미역국 대신,
국물이 거의 없긴 하지만 어묵탕을 꺼내놨다.
[ 다섯 번째 반찬] 알탕
알탕인데 국물이 없다 ㅎㅎ
왜냐면 엄마께서 국물류를 너무 많이 드셔서
일부러 국물을 뺀
건더기만 있다.
알탕에 동태알과 푹 익은 무, 그리고 청경채이다.
마지막에 밥을 푸러 갔더니
밥이 거의 없다.
그래도 엄마 드실 밥 양은 있어서 다행이었다.
밥에 들어간 잡곡들은
호랑이콩, 서리태, 좁쌀, 옥수수, 병아리콩이다.
엄마께서는 혈압도 높게 나오셔서
병원 기계가 오류(에러)를 냈는데도 불구하고
본인은 혈압이 없는데
공복 아침이라 높게 나온 거다라고 계속 우기시기만 한다...
건강검진에서도 혈압 높다고
관리하라고 나왔음에도 결코 믿기 싫어하신다.
그 이유는.. 아빠가 혈압약을 드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아빠가 혈압약 먹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 하겠지만 뭐라고 설명해야 될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게 싫으신 거다.
다른 약은 다 드시면서 말이다..
아침밥상이 다 차려졌다.
생신인데 미역국이 없는
단출한 이상한 아침상.
점심에 다시 미역국을 끌어들여야 하나 고민도 된다.
그리고 물과 두유는 식사 후에 보조식품 드시고,
일 나가실 때 챙겨가실 눈에 좋은 결명자 물이다.
몇 달 전부터 눈이 너무 침침하다고 해서
안과를 다니고 있었다가
며칠 전에 백내장 후발성이라고 (왼쪽) 0.2/ 오른쪽 0.8이 나와서
시술을 했다.
그전부터도 엄청나게 눈물이 줄줄 흘러나와서
일상생활이 되지 못해
화장지를 끼고 살고 있다가
시술 후에 이틀정도는 깨끗하게 보인다고 했다가
다시 또 침침해하신다.
병원 검진 결과로는 시력 왼 0.9~1.0까지 나왔으나... 엄마는 예전과 동일하게 침침하시다고 하시고...
병원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시고 수치상 검사 결과상 시력회복은 되셨으니 문제없다고 하시나 엄마는 계속 침침하고 눈물 나고 답답함을 호소하시니 나도 답답할 수밖에 없다.
일단 집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_ 결명자, 구기자 물 달여서 먹고 있으며, 저녁때는 요플레에 블루베리를 계속 드시게 하고 있다.
또한, 1년 전부터는 눈 마사지기도 구매해서 엄마는 아침, 저녁으로 하고 계시나 마찬가지로 별 효과를 전혀 보고 계시지 않다..
그래도 희한한 게 0.8 /1.0까지 보인다는 건 정말 눈이 좋다는 소린데
우리 집에서 눈이 가장 좋으신 분이다 ㅋㅋ
5남매 중에 나는 안경을 안 쓰지만 나도 노안이 와서 현재는 1.0 정도 되고
나머지는 다들 안경쟁이들이다.
식사를 마치시고
엄마는 일터로 향했다.
어쩌면 분명, 엄마도 일 나가시기 싫었을 텐데...
그 생각이 든다.
[ 엄마 일할 때 사용하는 가방]
엄마 가방을 사 드렸다.
이전에 사용하던 가방이 줄줄 흘러내린다고 해서
위아래로 고정할 수 있는 가방으로 사 드렸다.
가방 하면, 고등학교 때 엄마가 사다 주신 가방이 떠오른다.
다음에 그 가방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엄마 - 일터로 항하시는... 출근길]
참 우습기도 하고 재밌기도 한 광경이다.
내 국민학교 때 학교 가기 싫어서
엄마가 날 찾아 헤매었을 때가 오버랩되면서
나는 이제 엄마가 일터로 가시나 안가시나를
확인하고 있다니
그것보다 엄마께서 길을 잘 모르시고,
헤매시거나 다치실까 봐서
내가 동행하는 것이다.
차로 이동하려고 했으나,
오늘은 일찍 준비가 된 상태라
걸어가기로 한다
[ 너무 이른 시간에 출근]
시간이 많이 소요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엄마께서 쉬지 않고
걸어서 그런가
빨리 도착했다.
아마도 내가 뒤에서 쫓아오니까
원래 엄마 속도보다
그리고 쉬지도 못하시고
허리나 다리가 불편하셨을 건데
바삐 걸음을 재촉해서 빨리 도착하신 것 같다
아마도 잘은 모르겠지만,
샤슐랭이 뒤에 따라오니까
아예 빨리 가서 앉아서 쉬어야지..
이렇게 생각하기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2026.2.5일 8:20분 나는 엄마를 일터에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귀가했다.
제목은 인생의 맛 - 미역국이었지만
실제 오늘 사진에는 미역국이 없다.
<생일엔 미역국> 이란 편견은 버리자 ㅎㅎ
어차피 나도 몇 년 동안 내 생일에 미역국을 먹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2026.2.5
#에세이 #엄마 #개떡같은인생 #미역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