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맛 ② 당근

(부제 : 당근 같은 날)

by 샤슐랭
인생의 맛 당근같은 날.png




아침에 눈을 뜨고

오늘 식사는 뭘로 하지?

냉장고에서 맨 처음 꺼낸 건 "당근"이다.

매일 눈이 침침하다 하여 앞이 안 보인다는

엄마를 위해

당근을 썰었다.


두 번째 준비한 것은 양배추

위가 안 좋으신 우리 엄마를 위해

양배추를 삶는다.


근육이 다 빠진 엄마를 위해

계란으로 할 수 있는 요리가 뭐가 있을까?

3초간 고민하고

오늘은 스크럼불을 만든다..

같은 계란이지만 항상 다른 음식이 나오는 신기한 재료다.

밥통이 워낙 작은 관계로

이틀에 한 번씩 밥을 지어야 한다.

그나마 군것질을 좋아하는 나는 쌀밥을 잘 먹지 않기 때문에 작은 밥통이지만

매 끼니 삼시 세끼를 다 챙겨야 되는 나로서는


모양을 잡기 위해서 예쁜 작은 종지 그릇에

밥을 담아 모양을 만들었다.


이 밥통도 너무 감사하다.

원래는 불려 놓은 쌀로

죽을 끓이려고 했었으나 밥으로 지었다.

다행히도 엄마가 오늘 아침 점심 드실 수 있는 양이 남아있어. 천만다행이다.


만들어 놓은 스크램블로 위에 올렸는데 좀 더 예쁜 모양으로 만들 걸 아쉽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내가 만들고 싶은 모양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는 것처럼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던 방향으로 가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원치 않던 모양으로 만들어질 때가 있다..

그런데 웃긴 건 내가 원했던 대로 만들었다고 해서 맛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지 않았던 대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맛이 없던 것도 아니다..

참 재미있는 인생이다.


냉장고에 있던 남은 몇 개의 고구마와와 눈에 좋은 당근 위에 좋은 양배추를 삶았다.

솔직히 모르겠다. 눈에 좋다고 해서 당근도 꾸준히 먹고 있고 위에 좋다고 양배추도 꾸준히 삶아서 먹고 있지만 그냥 플라세보 효과인 걸로.

좋은 거니까 좋아지겠지. 이 정도 유지되면 괜찮은 거겠지라면서. 위안을 삼으면서 먹는다.

어쩌면 매일 보고 매일 똑같은 걸 먹기 때문에 질렸을 수도 있지만 우리 엄마는 아니 내 엄마는 투정 부리지 않는다..


그리고 생각이 났다.

어렸을 때 엄마는 새벽 4시 나 5시에 일어나서 밥을 지었고 한 놈 두식이 석삼 너구리 오징어 자식들 밥을 챙겨주고 도시락을 싸야만 했던 그 바쁜 시간..

정작 엄마는 아무것도 못 드시고 바로 출근을 해야 했던 그 엄청난 전쟁 같은 시간.

진짜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었을

나도 엄마 1명 그것도 대충 밥 차리는 건데도 이렇게 바쁘고 정신없는데. 엄마는 어떻게 그걸 다 하셨을까라는 그리고 첫째부터 막내까지. 모든 투정과 요청과 불만 사항들을 한꺼번에 쏟아져 내었을진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이 본인의 숙명인 것을 생각했겠지만

생각해 보면 다른 이들의 불평불만은 모르겠고. 나는 항상 아침마다 엄마한테 용돈을 달라고 했다.

아니 거의 삥 뜯다시피 매일매일 돈을 달라고 했다..

신기하게도 언니들과 동생이 돈 달라고 할 때는 돈이 없는데 내가 돈 달라고 할 때는 없던 돈도 만들어서 주었던 엄마다.


아침에는 간단하게 먹으라 해서 정말 많이 줄어든 반찬 가짓수다.


원래 드시던 보조식품이 줄었다. 현재는 관절 루테인 칼슘 3가지만 드시고 계시고 먹던 보조식품을

싹 다 먹으면 다시 리뉴얼하기 위해서 먹고 있던 걸 드시게 했다. 이렇게 챙겨주지 않으면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아무거나 막 드신다. 생각해 보니 엄마가 약을 항상 입에 달고 사셨는데. 그것도 습관인 것 같다.. 약을 먹는 습관보다는 보조식품이 나을 것 같아서 이렇게 매일 챙겨 드리고 있다.. 그런데 실제 나도 보조식품을 챙겨 먹어야 할 나이다.


내일 힘이 없다면서 종합 비타민을 약국에서 사 드셨었다..

요즘은 가끔 하루에 2개씩도 드시는 것 같아서 날짜를 아예 써놨다.

이렇게 써놔도 잘 보지 않고 그냥 드시는 경우가 있어서 내가 따로 챙겨드리고 있다.


물도 많이 드셔야 되지만 근육이 너무 많이 빠진 상태라 매일매일 하나씩 투유를 드시게 하고 있다.


어제 퇴근하고 들어오실 때 나보고 오늘은 9시 반 출근에 11시까지 근무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래서 어제도 여러 차례 말씀드렸으나

오늘 아침 식사를 하시고 오늘 몇 시까지 나가는 거지? 나에게 다시 반문한다.

다른 때 같으면 짜증 내고 화낼 텐데. 이제는 나도 지쳤다.

엄마 기억해 봐. 오늘 몇 시까지 오라고 했어?

목록 부담이다. 눈만 멀뚱멀뚱 뜨면서 날 다시 쳐다본다..


치매검사를 위해서 몇 달 동안 고민했고. 엄마를 끌고 가라도 가서 검사를 받으려고 했으나 아직 내 마음 자체가 진짜 치매 진단이 나올까 봐 겁나서. 못 데리고 갔다.


걱정이다. 진짜 치매인가.

이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 때면

지금이라도 당장 가봐야 될 것 같지만 정말 친해진단 나올까 봐서 겁이 나서 못 가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엄마는 8시 10분경 가방을 메고 출근 준비를 완료하셨다

그냥 모른 척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일찍 나가시는 건지

늦을까 봐 본인이 걸음이 늦어서 늦을까 봐 그러시는 건 알겠지만 너무 이른 시간에 나간다. 분명 또 이 시간에 나가면 한 시간 동안 밖에서 덜덜 떨고 있을 텐데. 말이다.


어제처럼 내가 또 쫓아가는 것도 엄마에겐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나는 오늘 동행하지 않기로 한다.


2026.2.6


#엄마 #에세이 #인생의맛 #개떡같은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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