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맛 ⑥ 오징어채

엄마의 편식

by 샤슐랭
오징어채.png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나는 늘 도시락을 싸 들고 다녔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한 일은
세수도 아니고, 교복 정리도 아니었다.
도시락 뚜껑을 슬쩍 열어보는 일이었다.

“오늘은 반찬은 뭐지?”

그 어린 마음엔
엄마의 정성이 아니라
반찬의 종류가 더 중요했다.


반찬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이면
도시락을 안 들고 나간 날도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도시락 하나에
엄마의 새벽이 들어 있었던 걸.


오늘 반찬을 하다가
오징어채를 무쳤다.

별거 없다.
고추장에 오징어채 넣고

조물조물 무치면 끝이다.

너무 간단해서
미안해질 만큼 단순한 반찬.

밥상에 올려놓고
엄마랑 마주 앉아 밥을 먹는데
문득 보니
오징어채가 싹 다 사라졌다.


김치는 그대로인데
오징어채만 접시가 텅 비어 있었다.

“엄마 오징어채 좋아했어?”


엄마는 그냥 웃으셨다.
“이게 은근 맛있네.”

그 말이 왜 그렇게
가슴을 치는지 모르겠다.


어릴 적,
도시락 속 반찬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날들
왜 또 이거야, 하며
투덜거렸던 내 표정이 떠올랐다.


그때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아니라
집에 있는 재료로
가장 최선을 다해 싸주셨을 텐데.


나는 반찬을 골랐고
엄마는 나를 골랐다.


그 차이를
이제야 안다.

고추장에 묻은 오징어채는
질기지만
계속 씹다 보면 단맛이 난다.


엄마의 세월도 그랬겠지.
버티고 또 버티며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시간.


오늘 빈 접시를 보며
알게 됐다.

엄마는
오징어채를 좋아한 게 아니라
내가 차려준 밥상을
좋아하셨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도시락을 보고
학교에 갈지 말지를 정했지만
엄마는 내 하루가
잘 흘러가길 바라며
도시락을 싸셨다.


그 마음을
이제야 씹어본다.

오징어채 한 젓가락이
이렇게 오래 남을 줄은
몰랐다.


2026.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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