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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n 04. 2024

밝은데 어딘가 쓸쓸한 F - Fm

너드커넥션 <좋은 밤, 좋은 꿈> 코드 인문학


영업을 다 마친 작은 가게 안에서 블라인드를 치고, 우리만을 위한 자리에만 살짝 불을 켜둔 것 같은 자리에서 통기타 하나 들고 친구들과 노래하는 모습. 통기타를 조금 알게 되고 F코드를 배우고 나서 제일 먼저 연습한 곡이 바로 좋은 밤, 좋은 꿈이다.


모눈종이에 있는 원들이 마치 별들을 그려 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좋은 밤, 좋은 꿈 안녕
좋은 밤, 좋은 꾸움 안녕

계속 나오는 이 예쁜 노랫말을 듣다 보면 잔잔한 마음을 떠올리며 연주하기 좋은 곡이다.

좋은 밤이 되길, 좋은 꿈을 꾸길 바라는 그 상대방은 보통 사랑하는 사람이겠지.

생각해 보면 "잘 자"라는 말을 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나한테 특별한 사람들이다. 아무래도.


잠이 잘오게하는 조명과 창가, 기타들
저 많은 별을 다 세어 보아도
그대 마음은 헤아릴 수 없어요
그대의 부서진 마음 조각들이
차갑게 흩어져 있는 탓에

그댄 나의 어떤 모습들을
그리도 깊게 사랑했나요
이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좋은 밤 좋은 꿈 안녕
좋은 밤 좋은 꿈 안녕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차갑게 흩어져 나에게 향하고 있지 않을 때,

도저히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을 겪을 때는 뭘 어떻게 할 수 없지.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건 좋은 밤 좋은 꿈을 꾸길 바라며 안녕, 인사말을 건네는 거니까.


와중에 시월이라는 말이 참 예쁘다고 했던 글이 생각나는 가사다.

부드럽고, 황금빛 색감이 잘 어울리는 계절 같아서.


시월의 서늘한 공기 속에도 장미향을 난 느낄 수가 있죠.
오월 어느 날에 피었던 빨갛던 밤을 기억하거든요.


상대가 좋은 꿈을 꾸길 바라며 아름다운 시월에, 오월의 빨갛던 향기를 기억하며 툭 건네는 안녕이라는 말이

잔나비의 가사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뒷걸음질 치며 이별하는 모습 같았다.

제주도에서 썼던 일기 - 잔나비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中



(파-라-도) 세 개 음이 이루어진 씩씩한 F코드에서 라b을 연주하게 되면 분위기는 무거워지고

겨우 이 작은 변화에서 음이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내는 것이 재밌다.


명량하고 고조되는 느낌의 F를 연주하다가 뒤이어 나오는 적적하고 우울한 Fm가,

상대방이 잘 자길 바라는 예쁜 마음임과 동시에 뒷걸음질 치며 이별하는 모습 같아서

노래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노래가 밝은데 쓸쓸하다.


상대방이 나의 어떤 모습을 그렇게 사랑했는지, 나는 상대의 어떤 모습을 그리도 사랑했는지

시월이 되어 슬슬 사라져 가지만 이름 모를 어떤 꽃말처럼 곁에 남아있겠다는 말을 전하며

좋은 밤, 좋은 꿈과 안녕을 조용하게 건네는 이 가사가 참 예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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