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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쏘 Apr 28. 2023

당신의 익숙함으로 저를
대해주세요

불편함이 가르쳐준 따뜻함에 대하여



Heim kommt man nie; aber wo befreundete Wege zusammenlaufen, da sieht sie die ganze Welt für eine Stunde wie Heimat aus. 


사람들은 평생 고향을 찾지 못해. 하지만 친한 길들이 서로 만나는 곳, 그곳에서는 온 세계가 잠시 고향처럼 보이지. 


                                                                                                         - 「데미안」 , 헤르만 헤세 



헌 책방에서 100여년의 손길이 닿은 책을 구입하고, 비 오는 날 창가에 앉아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모두가 꺼리는 곳에서 모두가 찾는 자유와 사랑의 공간으로 변화한 소호의 북적이는 거리를 걸었다. 


런던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던 나는 어떤 날은 심지어 도심의 잔디에 앉아 드물게 맑은 하늘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소소하지만 잊지 못할 런던인 (Londoner)으로서의 나날들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역시 나의 Wanderlust(떠돌고자 하는 본능을 뜻하는 독일어 단어)는 잊을 만하면 떠나자고, 새로운 곳을 찾아가자고 외쳤다. 농담이지만 친구들에게 영국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경험을 물어보면, “값싼 비행기를 끊어서 최대한 빨리 영국을 떠나는거야!” 라고 대답하곤 할 정도로, 그 어느 도시보다 다른 도시로의 이동이 쉬운 런던은 여행자 본능이 투철한 나에게 최고의 허브였다. 


수많은 도시들을 여행하면서도 꽤 늦게까지 가지 않았던 나라가 바로 독일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누구보다 큰 애정을 갖고 독일어를 공부해왔기에 독일로의 여행을 꿈꿔왔기에 최대한 마지막까지 남겨둔 것이다. 그렇 기에 처음 독일 여행을 앞두고는 어느 도시에 갈 때보다도 즐거운 마음으로, 어느 때보다 이른 아침이었던 새벽 4시부터 아침 비행기를 타러 기대감을 안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동안 여행하는 도시마다 간판과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기에, 드디어 익숙하면 서도 새로운 곳에서 내가 사랑하는 독일어로 가득한 며칠을 보낼 것이라는 기대로 베를린에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근처의 카페로 들어가서, 설레는 마음으로 주문대로 다가갔다. 


“Hallo!” 나의 첫 독일어였다. 그런 나에게 직원이 건 넨 말이 여전히 충격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Hello, do you need an English menu?” 가 아닌가. 이렇듯 베를린은 너무나도 국제화된 도시였고, 여행 내내 독일어를 쓰기보다는 베를린 사람들의 친절한 ‘배려’로 영어를 사용하며 여행을 하게 되었다. 영어가 모두의 공용어(lingua franca)인 것은 알았지만 독일어를 사랑해 열심히 배우고, 활용해보고자 했던 나는 조금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배려가 오히려 나에게는 구별당하고 있다는 거리감으로 다가온 것이다. 


역사에 대한 성찰과 다양성에 대한 존중, 그리고 특유의 거친 매력이 가득한 베를린과 사랑에 빠졌지만, 한편으로는 진짜 ‘독일’을 경험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여름, 런던 기숙사 계약이 종료되어 짐을 빼고 진정한 떠돌이 여행자가 된 채로 내가 선택한 목적지는 또 다시 독일이었다. 독일의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뮌헨에 있는 친구 집에서 한 달간 지냈지만, 이번에 는 국제적인 독일이 아닌 ‘독일스러운’ 독일을 경험하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하이델베르크, 슈투트가르트 등 오래된 도시들을 다녀보기로 했다. 베를린과 비교해 확실히 영어가 통용되는 정도가 적었고, 지역마다 차이가 있는 억양에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지만, 간혹 친구들을 만날 때에도 독일에서만큼은 독일어로 대화하자고 제안했다. ‘독일스러움’을 쫓았지만 현지인의 언어로 소통하는 것은 불편했고, 낯설었다. 현지의 언어가 우세하다는 인상을 받았던 지역들에서는 “No English!” 를 외치는 택시 기사님과 소통하기 위해 진땀을 흘리며 베를린의 영어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나 자연스레 이방인으로 보이는 나에게 그들의 언어로 먼저 말을 걸어주는 사람들과 마주하며, 다른 지역에서 왔지만 세계시민으로서 난 이곳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묘한 편안함, 친밀함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가 8개월 동안 경험했던 것처럼, 런던과 베를린 등 ‘국제적인’ 매력을 자랑하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모두는 도시의 주인인 동시에 이방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세 개의 계절, 스무 개의 도시, 셀 수 없는 새로운 인연으로 가득 찬 8개월 간의 소중한 경험을 돌아보면 서두에 언급한 글귀와 같이 ‘고향은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것’임을 체감하게 된다.


독일 문학가 괴테는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이라고 말했다. 세계인과 소통하고자 영어와 독일어를 비롯한 다섯 가지의 서로 다른 언어를 익히고 있지만, 조만간 나의 고향인 한국을 방문하는 이방인을 만나게 된다면 먼저 우리의 언어로 그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리라 다짐해 본다. 모두가 세계시민임을 느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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