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의 서러움은 정말 있는가?

서러운게 아니라 불편한 것

by Jimmy

우리에게는 외국어로 명확히 번역하기 힘든 고유의 감정 언어들이 있다. "서럽다, 한이 맺히다, 응어리가 진다"와 같은 표현들이다. 조부모 세대부터 부모님, 심지어 내 조카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러한 감정을 공유하고 표현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그 상황이 화자에게 남긴 깊은 감정적 자국에 집중한다. 특히 "서럽다"는 표현은 아래의 상황에서 많이 튀어나온다.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3개월 뒤 나가달라고 요청한다면 많은 세입자(나를 포함한)가 이를 '집 없어서 서러운 신세'로 규정한다.



어느샌가부터 나는 이 익숙한 감정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한국은 세입자 보호 법률이 매우 강력하게 제정되어 있으며, 집주인은 계약에 따른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것에 가깝다. 이는 내 존재가 무시당한 '서러운 사건'보다는 집을 알아봐야하는 '번거롭고 불편한 상황'인 것이다. 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한이 맺힐 것도, 서러울 것도 아니다. 차라리 짜증난다는 표현이 나은 것 같다.


우리는 늘 '집 없는 서러움'을 내집 마련의 동력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나는 모순이 보인다. 내가 사는 전셋집의 보증금은 안 오르길 바라면서, 내가 언젠가 보유하게 될 내 집의 가치는 급격하게 상승하길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난 이제 이러한 표현을 잘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서러움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내 집이 생기면 서러움이 없어질까? 더 넓은 집과 2채 가진 사람들 때문에 서러움을 느끼겠지.


서러운 감정이 들 때, 냉철하게 바라보자. 대부분 번거롭거나 불편한 것일 뿐이다. 당신의 스트레스 관리에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가장 신기한 것은 우리는 이런 감정으로 급격하게 성장을 이룬 나라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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