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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yager 은애 Jun 12. 2024

앵커리지로 날아가다

미국 이민국 직원과의 통화 후...


이곳에 온 지 1년이 되어가던 어느 날, 이민국(USCIS)에서 서류가 왔다.

2주 뒤에 앵커리지 미 대사관에 가서 지문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황당했다.


이곳에 남편은 R 비자로 왔기에 나와 아이들은 R2 다.

한국에서 비자를 신청하고 난 후에 코로나가 터졌고

미국 이민국이 셧다운 되었다. 그러고 나서 한국 미대사관에도 인터뷰가 막혀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는 한국에서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원래는 현지에 와서 2년 반 후에 비자 연장을 하면 되지만 그런 이유로 우리는 1년이 지나는 시점에서 비자를 연장해야 했다.

하지만 비자 연장할 때 지문을 찍어야 한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다른 주에 사는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물어보았더니 처음 듣는 것이라고 한다.

이미 미국에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었기에 그 사이에 법이 바뀐 것 같다.  


어쨌든 하라는 대로 해야 하지 않는가;;;

그래도 2주 후에 비행기로 5시간이나 떨어진 앵커리지로 와서 지문을 찍으라는 것은 너무 황당한 통보였다.

물론 미리 몰랐던 것은 실수일 수 있으나, 이렇게 촉박하게 비행기 예약을 하는 것은 비용이 엄청 비싸다.


혹시 더 가까운 곳으로 장소를 바꿀 수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 이민국에 전화를 걸었다.

지문은 나와 아이들만 찍으면 되는 것이었기에 당사자인 내가 전화를 해야만 했다.

너무 긴장했다. 혹시나 실수할까 봐... 이민국 직원과 통화가 되었고 요구사항을 말했다. 의외로 남자직원은 아주 친절했다. 다른 직원이 연락을 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전화는 언제 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 전화가 오기 전날 문자가 올 것이고 전화는 현지 시간 아침 7시 즈음에 갈 것이다라는 것이 내게 주어진 정보였다.


바로 이민국 웹사이트에 가입을 했다. 그리고 수시로 업데이트된 것이 있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다.





하루하루 이민국 직원의 전화를 기다리는 것은 다른 일들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

처음 해 보는 것이었고 혹시나 통화할 때 실수할까 봐 항상 긴장상태였다.

한 달 후에 문자가 왔다.



이민국 문자




그다음 날, 오전 7시 전부터 대기하고 기다렸다. 전화는 오지 않았다.

하루가 더 지난 그다음 날, 아침 7시에 이민국에서 전화가 왔다. 요청사항을 말했고 직원도 알겠다고 했다.


하지만 우편으로 온 서류는 그 직원의 실수로 인해 다시 전화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너무나 큰 스트레스였다.

그 과정을 다시 반복했다. 또 한 달이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지문을 찍는 날짜가 적힌 세 통의 서류를 받았다. 그렇게 우리는 이민국에서 처음 서류를 받은 날로부터 3개월 뒤에 앵커리지에 지문을 찍으러 가게 되었다.


알래스카 최남단에 있는 섬에 살기에 앵커리지에 갈 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이제 겨우 이곳에 적응하기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기에

알래스카의 다른 지역을 가본다는 것은 모든 면에서 나와는 동떨어진 일이었다.


어쨌든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앵커리지였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선물이 숨겨져 있었다. 




캐치캔에서 앵커리지 까지 한 번에 가는 비행기는 없다.

대신 캐치캔-싯카-주노-앵커리지 노선이다. 쉽게 생각하면 한국의 무궁화 같은 느낌이다.

한 시간 반쯤 가다가 섬에 착륙해서 사람들이 내리고 다시 타고 이륙한다.

이 과정을 세 번 반복하고 나면 목적지인 앵커리지에 도착한다.

마지막 주노에서는 비행기 안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사람들이 내리고 30분 정도 비행기 안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갑자기 파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청소기를 돌리면서 비행기 안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처음 겪는 것이라 황당하기도 하고 웃음이 났다.

그렇게 승객들이 앉아있는 상태에서 청소기를 돌리고 그들은 바람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난 후 드디어 마지막 목적지인 앵커리지로 날아올랐다.



캐치캔-싯카-주노-앵커리지 노선




앵커리지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 30분, 백야로 인해 대낮처럼 환했다.

캐치캔에서 늘 비 오고 어두운 곳에서 지내다가 이렇게 환한 대낮 같은 밤을 맞으니 어색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신났다.

픽업 나오신 분이 우리를 태우고 먼저 앵커리지 북쪽에 있는 와실라라는 곳으로 갔다.

차 안에서 우리는 계속 "와~~ 진~~ 짜 크다" "와~~~"

정말 시골에서 갓 상경한 사람들처럼 딱 시골쥐가 서울에 간 느낌이었다.

사실 앵커리지는 미국 다른 도시에 비하면 큰 도시는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단지 1년, 알래스카 시골섬에 살았던 우리는 얼마나 적응이 빨랐던지, 도시의 느낌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쭉쭉 뻗은 도로, 가로등, 많은 건물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기분.

이렇게 내가 살던 곳을 잠시 떠나 다른 곳에 가보는 것만으로도 환기가 된다.

그래서 우리 섬에 사는 사람들이 심심하면 다른 도시로 피신을 가는 것일까^^

우리는 비자 연장으로 어쩔 수 없이 왔지만 이런 일이 없었다면 아예 올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출발이 참 좋다.

내일부터는 우리를 위해 투어를 시켜준다고 하니 기대기대^^

그렇게 환한 백야속에서 우리는 잠이 들었다.


알래스카 공항에 늘 상주해 있는 동물들과 사진 한컷



앵커리지 공항 도착, 밤 10시 35분, 밖이 대낮처럼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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