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전에 열 가지 재앙이 꼭 필요했을까?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것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왜냐하면 노예로 살아가고 있던 그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만 들어왔던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실재를 보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열 가지 재앙은 그 당시 이집트가 섬기고 있었던 신들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시작의 출발점은 백성이 고통 중에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들을 기억하셨다.
하지만 모세에게 미리 말씀하신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다.
바로는 너희의 말을 듣지 않을 거시고,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혀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것이다. (출애굽기 7:3,4)
첫 번째 재앙인 물이 피가 되는 것에서부터 개구리, 티끌이 이가 되는 것, 파리, 가축의 죽음, 악성종기, 우박, 메뚜기, 흑암, 마지막 장자의 죽음까지 모든 재앙이 내려지고 난 후에, 약속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거주한 지 430년이 끝나는 날에 애굽땅에서 나온다. (출애굽기 12:40,41)
이스라엘 백성은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 이적들을 경험하면서 그리고 출애굽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다.
2017년 9월,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알래스카 캐치캔을 10일 동안 방문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 기도하면서 다시 이곳으로 오기로 결정했다.
그 사이에 많은 흥미진진한 과정들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에 글로 써 보려고 한다.
2018년 3월 말에 미국비자를 받고 알래스카로 들어오기로 결정을 하고, 2019년 1월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여 미국에 있는 변호사에게 제출했다. 그해 4월에 변호사는 모든 서류를 접수하겠다고 말했고 바로 다음 달인 5월에 추가 서류가 필요하다고 연락이 왔다. 추가 서류에 관해서 변호사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중간에 몇 달간 변호사와 연락이 안 되는 답답한 상황이 있었다.
그 후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미대사관이 문을 닫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2020년 9월, 드디어 미국에서 비자가 통과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이제 남은 것은 한국에 미 대사관에서 인터뷰를 보고 비자를 받는 것이다. 문제는 코로나! 한국 미대사관의 인터뷰가 중단되었다. 그리고 난 후 2021년 3월에 드디어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미국 비자 서류를 준비하고 나서 총 2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이다.
그 이 년 동안의 기다림의 시간은 많은 인내와 성장?;;을 가져다주었다.
미국 비자를 준비하는 과정은 마치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그만큼 힘들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적인 기적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2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도, 그 준비 기간 동안 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실한 근거도 없이 오직 말씀하신 것과 믿음으로 기다리며 준비해야 했다. 주변에서 우리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도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과 반신반의의 눈빛이었다.
2021년 3월 11일 목요일, 드디어 미대사관에서 인터뷰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 근처에 차를 대고 남편과 커피를 한잔 마신 후에 대사관으로 들어갔다.
그날로부터 14년 전, 싱글로 비자를 받으러 미대사관에 갔던 때가 기억이 난다.
그때 나의 상황은 미국 비자를 받기에 악조건이었다. 나이가 좀 있는 싱글에 수입이 많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에는 이스타 비자가 없었고 10년 관광비자를 받든지 아니면 거절 또는 한번 미국을 방문할 수 있는 비자를 받는 것으로 기억된다.
미국 남자분과 인터뷰를 했는데, 백인이 아니고 동양인처럼 보이는 분이었다. 놀라웠던 건 한국말을 할 줄 알았다. 그래서 한국말로 인터뷰를 봤는데, 몇 가지 질문 중에 나의 대답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 있었다. 순간 불안했다. 대답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왜 그런 거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정답을 얘기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인터뷰 시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필요한 말만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도장을 꽝 하고 찍었다.
순간 거절인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여권을 받아보니 다행히 통과!! 그런데 6개월 안에 한 번만 미국을 방문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악조건이었지만 거절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데, 비슷한 조건의 조금 나이가 어렸던 지인은 10년 관광비자를 받았다. 그런데 그에 비해 나는 한 번만 다녀올 수 있다니 마음이 좀 씁쓸했다.
여행사 사장님이 인터뷰의 모든 대화를 들어보시더니 딱 거절되는 케이스인데, 내가 인상이 좋아서 비자를 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비자를 받으면서, 다시는 미국에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미국 비자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미 대사관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1층에서 모든 소지품과 핸드폰을 맡겨야 한다.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인터뷰 시간은 길지 않다. 앉아서 순서를 기다렸다. 그리고 앞쪽에 네 군데 창구에서 인터뷰를 보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인터뷰 보고 돌아서는 표정에서 이미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어떤 분에게 인터뷰를 하면 좋을까?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혼자 머리를 굴려보았다. 인터뷰 차례가 다가올 즈음, 한 분이 창구 문을 닫고 더 이상 인터뷰를 보지 않았다. 남은 건 세 사람 중에 한 명에게 가서 인터뷰를 하는 것이다.
우리 차례가 되어 남편과 함께 떨리는 마음으로 창구 앞으로 갔다. 은행 간 것도 아닌데 약간 옛날 은행 창구 같은 느낌이다. 미국에 왜 가느냐라는 기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해서 몇 가지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준비해 온 대로 열심히 영어로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 가지 질문에 답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준비해 간 서류를 보여주며 설명을 했는데 그래도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가만히 있다가 적극적으로 다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모르겠다고 한다. 결국엔 통역관을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통역관을 통해서 설명을 했음에도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넘게 지나갔다.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인터뷰를 보려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저 사람들은 도대체 뭐가 문제라서 저렇게 오랫동안 인터뷰를 하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곳은 커다란 홀이었는데, 불이 하나씩 꺼지기 시작했고 결국 인터뷰 보는 분과 남편과 나, 이렇게 세명만 남았다. 한 시간 이상 서 있었기 때문에 다리가 아팠지만 그런 걸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결국은 "일단 여권을 주고 가라. 그리고 지문을 찍어라. 내가 더 알아보고 비자를 줄지 안 줄지 결정할 것이다"
그렇게 인터뷰는 마무리되었고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1층으로 내려왔다. 가방과 핸드폰을 맡겨놓는 데스크에서 일하시는 여자분이 이런 경우는 처음 보셨는지 우리를 보고 측은한 눈빛으로 너무 수고 많았다고 말해주었다.
건물 밖으로 나왔다. 햇살이 눈부시게 비취고 있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비자를 준비하고, 코로나 때문에 양쪽 대사관이 문을 닫았던 그 기다림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오늘 드디어 결론이 나는가 했는데 아직도 미정인 것이다.
하지만 인터뷰 내용을 들은 분이 얘기하셨다. 여권을 들고 갔다는 것, 지문을 찍었다는 것은 좋은 징조라고 했다.
그로부터 4일 후, 대사관 사이트로 들어가 확인해 보니 비자가 발급되었다고 나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비자 도장이 찍혀 있는 여권이 집에 도착했다. 그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렇게 우리는 비자를 받은 후, 한 달 반 만에 모든 물건과 집을 정리하고, 가방 12개를 가지고 알래스카로 날아왔다.
처음에 알래스카 시골섬, 한국인이 거의 없는 곳에서 혹독한 날씨와 다른 문화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오자마다 몇 달 후에 코로나에 걸려 남편은 혼자 응급실에 갔다. 우리 가족은 집에서 코로나를 치르면서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먹을 것을 준비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 한국 식자재를 구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메뉴는 한국에서 들고 간 미역으로 만든 미역국, 현지에서 산 계란과 두부를 이용한 반찬이 다였다.
그 후로도 힘든 시간들을 지나갈 때마다 비자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받았던 2년의 시간들을 떠올렸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 가지 재앙을 지나고 출애굽 했던 것처럼 내게도 그런 기다림의 과정들,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면 결코 통과할 수 없었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곳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인도하셨다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나는 부인할 수도, 돌아갈 수도, 감사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비자로 하나님의 뜻이 확증된다고...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받았던 비자는 만료될 것이다. 그다음은? 또 다른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2년이라는 기다림의 경험이 있기에... 그 시간 동안 단련되었기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도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다시 한번 더 출애굽의 기적이 필요하다. 그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마무리될지 언젠가 글을 쓸 날이 올 것이다.
우리에게 결코 필요하지 않은 경험은 없다.
다만 그 시간 속에서 얼마만큼 인내하고 견뎌내고 배우느냐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오늘도 나는, 주님보다 앞서지 않고,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인도하시는 대로 허락하시는 만큼만 가면 되는 것이다.
이런 삶이 힘드냐고? 답답하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이전에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단련이 되었기에 여전히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있고 걱정은 있지만, 내 마음의 기본 베이스는 평안이다.
하나님이 내가 어디에 살지 그 경계와 한계를 정해놓으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선택한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