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퍼붓는다.
이런 날은 비가 온몸을 누르는 것처럼, 머릿속까지 무거워질 때가 있다.
내가 사는 이곳, 알래스카 시골 섬 캐치캔(Ketchikan)은 미국 내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도시 중 하나다. 연평균 강수량이 약 160인치, 그러니까 4,000mm가 넘는다.
"1년에 300일 이상 비가 온다"라고 말할 정도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비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유튜브에서 <북극에서 살아가는 아이>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햇빛보다 어둠이 익숙한 땅, 체감온도 영향 40도에 가까운 혹한의 날씨 속에서도 그 아이는 꿋꿋이, 웃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아이의 삶은 내게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계속 비오는 날들, 잿빛 하늘과 어둠 속에서 "지금이 아침인지, 점심인지 밤인지 모르겠어요." 라는 아들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곳은 내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또 다른 세상이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세계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도시들은 어디일까?
인도 북동부의 마우신람(Mawsynram)은 연간 강수량이 11.872mm에 달한다.
콜롬비아 로페스 데 미카이(Lopez de Micay)는 무려 12,892mm, 카메룬의 데분차(Debundscha)도 10,299mm나 된다. 적도 기니의 산 안토니오 데 우레카(San Antonio de Ureca)는 연평균 강수량이 약 10,450mm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하와이 마우이 섬의 빅보그(Big Bog)는 연평균 강수량이 약 10,272mm로 미국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지역 중 하나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의 사람들은 그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사실은 <미국 영어 문화수업>이라는 책에서 읽은 흥미로운 일화를 떠올리게 했다.
제목은 "같은 것을 보는 서로 다른 시선"이었는데,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강의하는 저자, 김아영은 CIES 초급반 듣기 수업 시간에 B.J. 토마스의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비가 내 머리 위로 계속 떨어져요> 노래를 소개했다고 한다.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but that dosen't mean my eyes will soon be turning red. Crying's not for me' cause I'm never gonna stop the rain by complaining..."
빗방울이 계속 내 머리로 떨어지고 있지만, 그게 내 눈시울을 붉게 하지는 못할 거야.
난 울지 않을 거니까. 왜냐하면 내가 아무리 불평을 한다고 해도 그게 결코 이 비를 멈추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이 노래 가사에 나타나 있듯이 미국 문화에서 비는 주로 우울함이나 삶에서 극복해야 할 힘든 일 등을 상징한다. 흥미롭게도 한국에서도 비는 비슷한 정서를 담는다.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떠올려보자.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
난 오늘도 이 비를 맞으며 하루를 그냥 보내요.
(중략)
우리의 사랑의 이야기들은 흐르는 비처럼 너무 아프기 때문이죠.
이렇게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노래나 시에서도 비는 우울함, 이별, 아픔, 상처 등을 상징할 때가 많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학생 마타르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미국에서는 비가 나쁜 건가요? 도대체 왜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에 그녀는 "대부분의 노래에서 비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고 태양은 긍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진단다."라고 말한 뒤에 그런 예를 보여주는 또 다른 미국 노래를 소개했다.
마타르는 "우리나라(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비가 오는 게 아주 좋은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비는 삶에서 행운이나 복과 같은 것들을 상징하죠. 제 이름 '마타르'도 비를 뜻하는 아랍어예요."
끝없이 사막이 펼쳐지는 매우 건조한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비가 오는 게 경사스러운 일이면서 동시에 행운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인들은 사랑을 고백할 때. "당신은 비와 같아요!"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고 한다. 그래서 마타르는 비를 우울이나 눈물로 표현한 미국 팝송 가사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같은 것이라도 문화에 따라서 보는 시선이 달랐다. 비는 누군가에겐 우울함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기쁨이다.
실제로 흐린 날씨와 우울감은 꽤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기후 우울증(Seasonal Affective Disorder, SAD)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현상은, 햇빛이 부족한 계절이나 지역에서 종종 나타난다.
사람의 뇌는 햇빛을 받아 세로토닌(기분 조절에 도움을 주는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일조량이 적으면 이 호르몬이 줄어들게 된다. 그러면 기운이 가라앉고, 쉽게 피로해지며, 우울한 감정이 이어진다. 북유럽이나 알래스카처럼 겨울에 해가 거의 뜨지 않는 지역에서 이런 증상이 흔하다.
영국에 1년간 파견근무를 간 딸네집을 방문하러 갔던 할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영국에서 돌아와서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비가 추적추적 와서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기 힘든 날이 많았어요.
그럴 때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면 그렇게 정서가 풀리더라고요."
당시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그런 곳에서 살 거라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때였다.
이곳에 살면서 비가 추적추적 오기 시작하는 날만 되면 나는 믹스커피를 두봉 씩 타서 마셨다.
향긋하고 달달한 커피 향은 어둡고 비가 오는 이곳 날씨에 조금이나마 환기가 되는 느낌이었다.
이 땅의 주인이었던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rain forest라고 불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오랜 시간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알래스카 원주민들, 특히 이누이트, 유픽, 알류트, 클링깃 같은 부족들은 연중 절반 이상이 흐리고 비가 내리는 날씨 속에서 수천 년을 살아왔다. 그들에게 이런 날씨는 결코 낯선 적이 없었고, 단순히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삶의 리듬을 만들어 내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생존 방식은 단지 기술이 아니라, 문화와 영성, 공동체성에 뿌리내린 삶의 지혜였다.
그들이 비와 우울 속에서도 살아낼 수 있었던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려고 한다.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햇빛이 부족한 계절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어둠은 그저 계절의 일부일 뿐, 비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들은 이 시기를 내면의 계절, 영혼을 쉬게 하는 시간으로 여겼다.
겨울에는 사냥이나 고기잡이를 멈추고, 공동체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장비를 수선하며 다음을 준비했다.
비가 오는 날엔 쉬어야 할 날, 속도를 늦춰야 할 날로 여겼던 것이다.
기후적으로 고립되기 쉬운 알래스카에서, 혼자 있는 것은 생존을 포기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부르고, 손을 움직이는 작업을 함께 했다.
비가 내리는 날, 천둥이 치는 밤이면 아이들은 할머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 신화와 전설, 조상의 지혜 -를 들으며 상상의 세계를 여행했다. 이야기 자체가 정서적인 햇빛이 되었던 것이다.
추운 날씨와 흐린 날엔 불이 곧 삶이었다.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집 안의 난로 주변에 둘러앉아 따뜻한 음식과 따뜻한 대화로 온기를 나눴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누구와 나누느냐, 어떻게 나누느냐가 더 중요했다.
기후가 감정을 쉽게 가라앉힐 수 있는 환경일수록, 그들은 관계 안에서 정서적인 안정을 찾았다.
긴 겨울 동안 원주민 여성들은 옷, 장갑, 신발을 바느질하며 시간을 보낸다. 고요한 집중의 시간은 단순히 노동이 아니라, 명상처럼 마음을 가라앉히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들은 손을 움직이면서 슬픔을 다스리고, 기억을 잇고, 이야기를 엮었다.
오늘날 우리가 뜨개질이나 도예, 그림 같은 활동에서 치유를 얻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비가 오는 날, 구름 낀 하늘, 바람 부는 순간조차도 모든 자연 현상은 '메시지'이며 '대화'의 일부라고 여겼다. 자연은 그들에게 영적인 존재였고, 그런 자연 속에서 자신도 그 일부로 존재했다. 그래서 날씨가 어떻든 그 안에 의미와 순환, 그리고 나 자신이 연결된 감각을 놓치지 않았다. 그 인식은 절망과 무기력으로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심리적 뿌리가 되어 주었다.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흐린 날을 '우울한 날'이라 여기고 피하려 하지만,
그들은 흐린 날을 '속도를 늦추고 나를 돌아보는 날'로 삼았다.
그들은 자연에 맞서기보다 자연에 귀 기울이며 내면을 단련하는 길을 택했다.
비 오는 날,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창밖을 보며
나도 그들처럼 조금은 느리게, 조금은 깊이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