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스데이
오늘은 5월 11일 마더스 데이다.
미국의 마더스 데이는 1907년 안나 자르비스(Anna Jarvis)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하며 처음 기념했고, 이후 어머니에게 사랑과 존경을 표하는 날로 확산되면서 1914년에 국가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한국처럼 정해진 날짜는 없고, 매년 5월 두 번째 주 일요일이 마더스 데이다. 매년 날짜는 바뀌지만 미국에서는 누구도 잊을 수 없는 '빅 데이'다.
보통 이날 아침, 자녀들은 어머니에게 근사한 아침 식사를 차려주고 꽃을 선물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주변에 물어봐도 다들 그런 풍경이 익숙하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집은 조금 다르다.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교회를 가기에, 여유로운 아침식사는 솔직히 힘들다.
올해도 어김없이 아침은 거르고, 점심에 중학생 딸이 직접 만들어준 양념치킨과 쿠키로 맛있는 식사를 했다. 딸이 정성껏 만든 하트 리스는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 줬다.
초등학생 아들은 '10일 동안 아침저녁에 안아주기 쿠폰'으로 대신했다.
남편은 전날부터 계속 마더스 데이에 뭐 먹고 싶냐, 하고 싶은 건 뭐냐고 물어본다.
특별히 떠오르는 건 없지만,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안 되기에 아이들 도시락을 일주일간 싸달라고 했다. 이제 나는 '일주일간 자유 엄마'가 되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비가 오지 않는 화창한 날이었다.
마더스 데이에 이렇게 환한 햇살이라니... 그 사실만으로도 축복처럼 느껴졌다.
점심을 먹고 아이들 축구 경기를 보러 갔다.
이 섬에 하나뿐인 축구장.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산으로 둘러싸여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매번 비를 맞으며 축구를 하던 아이들이 오늘은 햇살 아래서 즐겁게 운동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행복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 아쉬워 해변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맑은 날씨에 사람들도 밖으로 나와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다.
역시 해만 뜨면 이곳은 천국이다.
하지만 해가 환하게 뜨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게 아쉽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자이언제이' 작가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그녀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와 다양한 아트 콜라보로 주목받고 있는 아티스트이자, 첫 개인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한 작가이다.
그녀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어머니가 저에게 가장 큰 고난이었어요.
그런데 결국 가장 큰 영광이 되어 주셨어요."
그녀는 삶이 자신에게 고난을 주었을지라도, 그게 그냥 나의 삶이고 나의 특별함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게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중학교 때 아버지를 폐암으로 떠나보냈고, 어머니와 함께 절벽 끝에서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서로를 붙잡고 살아갔다.
그녀가 쓴 <속지 마세요 Don't be Fooled!>라는 동화책에는 그 장면이 그려져 있다.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업을 이어나갔고,
입시 미술을 하면서도 방학 때 특강 같은 걸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걸 받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애들보다 못할 거라는 생각보다는
주어진 시간에 더 많은 집중을 하기 때문에 더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주어진 삶을 수용해서 나의 특별함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다.
대학교에 가서는 소뇌위축증에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여러 알바를 병행하다 루푸스 판정을 받았다. 스물두 살, 삶의 절망 앞에 선 순간이었다.
그녀는 말한다.
부모님이 내게 부모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원망이 있었다고.
그런데 어느 날 비틀비틀거리면서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이제 정말 연약해졌구나. 비록 내게 완벽한 부모는 아니었지만, 나까지 나쁜 자녀가 되어서는 안 되겠구나."
그 순간, 엄마를 타인처럼 보며 친절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머니의 삶을 다시 보게 되었고,
어린 시절 치유받지 못했던 한 여인의 인생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이후, 그녀의 작품 세계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엄마의 삶에 보상이 너무 없었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내가 그 보상이 되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과감한 붓 터치로 작업을 시작한다.
거친 붓 터치는 삶이 주는 현실이자 고난이라는 바람을 담는다.
그녀는 말한다.
"주어진 삶을 나의 특별함으로 입고 살아갈 때, 나만의 아름다움이 탄생해요."
그녀의 작품 <삶의 순환과 하모니>는
아이의 시작과 노인의 마지막이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이가 4개월째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는데, 노인도 돌아가시지 4개월 정도 남기 시작하면 이유식 같은 형식 외에는 잘 못 삼키게 된다. 몸을 뒤집지도 못하는 시간.
울면 누군가가 곁에 와 주는 아이와 울어도 아무도 오지 않는 노인의 현실이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래서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그렸다.
첫 개인전에서는 91명의 딸들에게서 받은 '엄마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사진을 그림으로 그려
<엄마의 리즈 시절>을 선보였다.
그녀는 누군가의 어머니가 된 여인의 지나온 삶을 조금 더 조명하고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고 했다.
살아온 삶을 완주했다는 것, 그 자체로 우리 어머니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삶을 이해하는 지경이 넓고 깊이가 깊을수록 더 좋은 예술가가 된다는 그녀는 말처럼
고난조차도 깊은 영감이 되어 작품 속에 피어났다.
자인언 제이 작가님의 이야기 속에서,
"내게 주어진 삶이 가장 좋은 삶이라는 걸 이제 믿어요.
그리고 그 삶을 특별함으로 살아갈 때 나만의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어요. "
라는 고백이 마음에 울림이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엄마가 떠올랐다.
몇 달 동안 아프시다가 얼마 전, 희귀성 자가면역질환 다발성 루푸스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계신 엄마.
알래스카에 온 후 벌써 4년째 엄마를 보지 못하고 있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건,
엄마가 한평생 묵묵히 자신의 삶을 완주하셨기 때문이다.
오늘 이 밤,
엄마가 몹시 그립다.
살아오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던 엄마의 삶을,
비록 곁에 있지는 못하지만,
그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기도한다.
한평생 온 맘을 다해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고 계신 엄마의 삶을 축복해 주시기를...
당신의 삶이,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빛났다고.
**그녀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다면, 아래 인터뷰를 클릭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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