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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에서 배운 이별의 풍경

by voyager 은애


Memorial Sevice, 그 따뜻한 작별 인사


오늘은 미국의 장례식, 그중에서도 '추모식(Memorial Sevice)'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곳 알래스카에 와서 해마다 꼭 한두 번씩은 참석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추모식이다. 올해도 벌써 1월에 한번, 그리고 2월에 한번, 두 번의 추모식에 다녀왔다.


1월에 참석한 추모식은 40대의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친한 원주민 할아버지가 입양한 딸이었는데, 알래스카 북쪽의 추운 지역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집에 불이 나 화재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지인의 말로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밖으로 나올 수 조차 없었다고 하니 얼마나 기가 막힌 죽음인지... 그 할아버지는 낳은 자녀가 네 명, 입양한 자녀가 두 명이 있었는데, 그중에 한 명이 바로 고인이다. 가슴 아픈 이별이었다.


2월에 참석했던 추모식은 80세 할아버지의 추모식이었다.

그 부부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vacation rental을 운영하고 있었고, 우리 가족이 이 섬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분들이 운영하는 숙소에서 두 달가량 머물렀다. 당시 여름이 가까워지는 시기였기에 숙소는 성수기 요금으로 받을 수 있었지만, 우리 가족에게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특히 할머니는 관대한 분이셨다. 그때 우리 딸이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자전거가 없던 아이에게 자전거를 선물해 주셨다. 이 섬에 도착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던 우리에게 그 섬김은 참 따뜻하게 다가왔고 우리 가족에게 큰 의미를 주었다.

할아버지는 과묵한 분이셨다. 한국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초대한 적이 있었는데 할머니는 기쁘게 비빔밥을 드시러 오셨지만 말수가 적으셨던 할아버지는 오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집 주변에서 공사를 하시며 바쁘게 일하시는 할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이 부부는 1975년, 두 자녀와 함께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로 이주해 왔다. 그로부터 50년간 이 섬에서 살아오셨고, 올해 결혼 60주년을 앞두고 계셨다. 20살에 결혼해서 60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라니...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의 죽음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안타까운 사고였다.

그분의 집은 바닷가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 경치가 정말 아름답다. 그날도 늘 하시던 것처럼, 집 짓는 공사를 마치고 굴삭기를 몰고 내려가던 중, 브레이크가 작동되지 않아 그대로 차와 함께 알래스카의 차가운 바다에 빠져버리셨다.

사고 직후 구조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가는 도중 끝내 숨을 거두셨다. 이 소식은 마을 전체에 큰 충격이었다.

한 순간의 사고, 예고 없는 이별.

가족들이 얼마나 놀라고 슬펐을까...

작별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 이별이었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올 때는 알고 오지만, 떠날 때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할아버지의 추모식이 교회에서 열렸다. 미국에서 참석했던 모든 추모식은 교회에서 진행되었고 형식은 대부분 비슷했다. 순서는 다음과 같다.


Memorial Service (추모식)의 순서

목회자의 오프닝과 기도

고인을 기억하는 이야기(Open Sharing)

찬송가와 말씀 낭독

설교: 복음의 메시지

음악 혹은 악기 연주

다과와 친교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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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Open Sharing'이다.

고인을 기억하며 추억을 나누는 시간으로, 누구든지 자유롭게 앞에 나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 시간이 가장 길다. 사실 한국에는 없는 문화라 처음에는 대개 어색했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을 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들리지도 않았다. 모두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데, 나는 도통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어색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문화가 참 귀하게 느껴진다. 고인의 삶을 가장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고,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번에도 할아버지를 향한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분이 얼마나 따뜻하고 베푸는 삶을 살았는지. 특히 그 자녀들이 하와이, 아이오와 등 미국 전역에서 단숨에 달려온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손자 손녀들도 앞에 나와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이야기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며 정말 사랑받고 사랑을 베푼 삶이었구나 느낄 수 있었다.


�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그 시간 동안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게 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나의 자녀들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성경 전도서 7장 2절의 말씀이 문득 떠오른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을 유심하리로다."


추모식에 갈 때마다 이 말씀을 떠올려본다.

슬픔의 자리에 서면, 오히려 삶의 본질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게 가족과 지인들의 나눔이 끝나고 나서 할아버지가 생전에 좋아했던 찬송가를 함께 불렀다.

그리고 따님이 나와 묵상한 말씀을 짧게 나누었는데, 그 진심이 참 따뜻하게 전해졌다.

목사님이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전하셨는데 "죽음인가, 영원한 생명인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메시지를 나누었다.


우리는 모두 다 언젠가 한 번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망인가 영원한 생명인가! 이 메시지는 기독교의 핵심과도 같다.


그 후 함께 부른 찬양은 "나를 지으신 주님"이었다.

그러고 나서 한 남자분이 백파이프를 연주했다. 가까이서 백파이프 연주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다.

연주는 웅장했고 마지막엔 연주자가 앞에서 교회당 문쪽으로 걸어가면서 연주를 했다.

그분은 연주를 하면서 예배당 뒷문을 열고 나가 다시 교회 입구 문까지 열고 사라지셨다.

마치 고인이 "이제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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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0211_100535089_01.jpg?type=w966 백파이프 연주


추모식은 한 시간 반 전도 진행되었고, 끝난 후에는 풍성한 다과(refreshments)가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다른 일정이 있어 함께 하진 못했지만, 정성껏 준비된 음식들이 고인을 향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순서지 젤 뒷장에는 할아버지의 이력이 담겨있었다. 그의 삶을 조금이나마 그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언젠가 나의 추도식에서도 사람들이 이렇게 나를 그리며 그리워할 날이 오겠지...


할아버지 가족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우리는 그를 다시 천국에서 만나게 될 거라고!!

그래서 그 추도식은 많이 슬프지 않은 따스하고 축복된 메모리얼 서비스였다.



돌아오는 길에 바라보는 알래스카 바다와 하늘은 참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처럼

나의 삶도 그렇게 아름답게 그려지고 남겨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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