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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밥은 누가 사는 거야? 문화충격 세 가지

by voyager 은애


2021년 5월 우리 가족은 알래스카 캐치캔(Ketchikan)에 도착했다.


2017년 처음 이곳을 10일간 방문한 후 두 번째 방문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짧은 방문이었고 지금은 우리가 여기에 살러 온 것이다.

우리는 대한항공을 타고 시애틀까지 13시간을 날아간 뒤, 알래스카 항공을 갈아타고 2시간을 더 날아와 이 섬에 도착했다.


그 당시 나는 '미국에 간다'는 생각보다 '알래스카 섬에서 원주민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기에 미국 문화를 많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행자 숙소에서 두 달을 보낸 후 겨우 우리가 살 수 있는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들고 온 짐은 대한항공 수하물이 1인당 2개를 부칠 수 있었고 기내용 캐리어와 가방을 들고 들어갈 수 있었기에 총 8개의 수하물짐과 작은 캐리어 4개였다.

어떤 짐을 들고 와야 할지 선별하는 과정 또한 고민이 되었지만 과감하게 버릴 것은 다 버리고 입을 옷, 아이들 한국 책, 한국 식재료 조금 등을 들고 왔다.

생각보다 짐이 간단했기에 이사는 무리 없이 했다.


두루마리 휴지 사건, 작지만 큰 문화충격


이사 첫날, 집을 구하는데 도움을 주셨던 미국인 부부, 나의 부모님과 연배가 거의 비슷한 분들과 햄버거를 주문해 와서 같이 먹었다.

집에 사놓은 것이 없었기에 식탁을 닦을 마땅한 것이 없었다. 햄버거를 주문한 백 안에 냅킨이 조금 있긴 했지만 그것으로 식탁을 닦고 나면 부족할 것 같았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두루마리 휴지를 뜯어서 둘둘 말아서 들고 나와 식탁을 닦았다.

그 모습을 본 미국인 할머니가 깜짝 놀라면서 두루마리 휴지로 식탁을 닦으면 안 되다는 것이었다.

나도 놀라서 왜 안되냐고 했더니 용도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앗! 한국에서는 두루마리 휴지가 만만했기 때문에 방에 뭔가 떨어졌을 때, 식탁 위에 음식물을 닦을 때 종종 사용했었다.

그렇지... 용도에 안 맞는 것은 맞지... 왜냐하면 화장실에서 쓰는 두루마리 휴지니까. 그럼 식탁에서는 냅킨을 써야 하는 건데... 지금은 냅킨이 조금밖에 없는데... 이렇게 잠깐 쓰는 것도 안되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곳에 온 이상 이들의 문화를 따라주어야 하지 않은가...

그날 이후로 두루마리 휴지는 꼭 화장실에서만 사용하는 걸로! 휴지는 용도에 맞게 사용!

처음으로 경험했던 작은 문화충격이었다.


생일 밥은 누가 사나요?

이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생일이 다가왔다.

그 당시 가장 가까운 사이였던 미국인 부부와 함께 근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생일 축하를 했다.

한국에서는 보통 생일 맞은 사람이 생일턱을 내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었기에 당연히 내가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가 초대를 한 것이 아닌가... 그랬더니 두 분이 드시는 것은 따로 내겠다고 하셨다. 그 당시 미국 문화를 잘 몰랐던 나는 그것이 너무 생소했다. 내가 초대를 했는데 우리 가족이 먹는 것은 우리가 내고, 두 분이 먹는 것은 두 분이 돈을 낸다? 쉽게 말하면 더치페이 형식인데... 한국인의 감성으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니라고, 우리가 다 내겠다고 말을 하고선 지불을 했다.

두 분도 한국인들을 많이 만나봐서 한국인의 문화를 알긴 하지만 약간 이 분위기가 어색하셨나 보다. 그 후에도 같이 식사할 일이 있을 때 나는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내가 돈을 내야 된다라는 생각이 강했다. 이 생각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나중에 친하게 된 미국인 젊은 친구와 이야기하다 보니 여기서는 생일을 맞이한 사람이 밥을 사는 것이 아니라, 보통 친구가 생일 축하한다고 밥을 사준다고 한다. 그리고 선물은 밥을 사주었기 때문에 굳이 챙기지 않아도 된다고... 선물까지 하고 싶으면 해도 되는데 밥을 사주는 게 축하의 개념인 것 같다.


올리버 선생님 유튜브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미국 시어머니가 신기? 하게 생각하는 한국 며느리의 3가지 행동>이라는 제목이었다. 얼마나 공감이 되는지... 거기에서도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 에피소드가 나왔다. 시어머니의 대답은 화장실 휴지는 화장실에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용도에 맞게 사용해야 하고 화장실에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일 같은 날엔 가족이라도 밥을 사주지만, 그냥 같이 밥을 먹으러 레스토랑에 가는 것은 시어머니는 시어머니 것을 따로 계산한다는 것이다. 한국 며느리의 감성으로 도저히 용납되지 않아 시어머니 것까지 다 계산을 하니 그것이 시어머니에겐 너무 불편한 것이었다.

이분만의 케이스인지 아니면 이것이 문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은 이들의 문화에 많이 맞추려고 노력한다.



개인 공간이 반드시 필요한 문화


한 여름, 미국 다른 지역에서 온 젊은이들과 함께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프린스어브 웨일스 섬(Prince of Wales Island)에 갔다. 그 섬에 있는 하이다버그(Hydaburg)라는 빌리지에 가서 VBS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고 아는 사람도 없었기에 우리 섬에 있는 현지 백인 부부의 도움을 받았다.

그 빌리지에는 에어 비앤비도 없었고 외부인이 머물만한 숙소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빌리지에 유일한 학교에서 머물게 되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한 곳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머물 수 있는 곳을 확보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여자들끼리 사용하는 교실에 들어가서 에어 매트리스를 하나씩 깔았다. 창문은 없었고 교실 문만 있었다. 총 6명이 방을 같이 써야 하기에 공간 배치가 중요했다.

우리 섬에서 함께 온 백인 여자분을 빼놓고는 모두 다 한인 2세들이었다. 문 바로 앞에 자는 것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공간이니까 불편하겠다는 생각에 최대한 벽 세면에 자리를 잡아보려고 했다.

그래서 에어매트리스를 하나를 놓고 두 번째 것을 놓는 순간, 함께 온 백인 여자분이 말했다.

이렇게 가까이서 잘 수는 없다고, 개인 공간 확보가 안된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놀랐다. 매트리스가 딱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 공간이 있는데??

이런 환경에서는 이 정도는 감수해야 되지 않은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 공간확보가 필요하기 때문에 자리를 더 띄워서 깔아야 하고 하나는 문 앞에 깔면 된다는 말에 참 생각이 다르구나...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마트에 가도 다른 사람이 물건을 보고 있으면 뒤에서 기다리는 것이 이곳 분위기이다. 한국처럼 바로 옆에 가서 물건을 같이 보고 짚어오는 것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처음에는 대개 어색했는데 지금은 독립적이고 개인 공간이 반드시 필요한 문화에 맞추어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다.


"다름"을 배우는 시간


내가 경험하고 해석한 것이 모두 맞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다른 문화를 경험한다는 것은 사고와 생각을 넓혀주는 또 다른 기회가 되는 것 같다.

무엇이 옳고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기 때문에, 그 다름을 이해한다면 훨씬 더 마음이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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