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이곳 알래스카의 섬과 빌리지를 방문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4월에 블로그를 시작했고, 5월에는 브런치에 합격해 본격적으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내가 알래스카에 오기 전, 이곳은 나에게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였다.
게다가 내가 사는 시골섬은 한국인도 거의 없어 더욱 생소한 곳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의 버킷 리스트인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의 첫 도착지가 바로 내가 사는 곳, 캐치캔이기에, 크루즈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조금이나마 이곳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언젠가는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선 시간이 지나갔다.
알래스카에는 2만 개가 넘는 섬이 있고, 내가 사는 남동부 알래스카만 해도 배나 경비행기로만 갈 수 있는 섬이 많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모든 섬을 다 다녀본 후 책을 쓰려면 평생이 걸릴 것 같았다. 그건 마치 저 멀리 떠가는 구름을 붙잡으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먼저, 내가 알래스카에서 살아온 삶을 책으로 써보자고 결심했다.
일단 책을 쓰기 위해서는 A4용지 1.5매~2매의 분량의 글을 40 꼭지 정도 써야 했다.
제목과 목차도 정해야 했다.
밀리의 서재에서 <책 한번 써봅시다>를 읽었다.
저자는 산문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 주제로 원고지 600매 쓰기"라는 목표를 제안했다.
작가가 아닌 저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글을 쓰기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오해한다.
그것은 다른 훈련 없이 슈팅 연습만 계속했더니 축구 선수가 됐다거나, 부품을 하나하나 이어 붙였더니 어느새 비행기가 조립돼 있더라는 애기나 다름없다고 했다.
작가의 일은 단순히 문장을 쓰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바라보고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으며 부족한 점을 점검하고, 때론 부끄러워지고, '나 글 정말 못 쓰는구나' 자책하게 되는 것. 그 모든 과정이 작가의 일이다.
수치심을 무릅쓰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 것 또한 포함된다.
나는 2월 24일, 첫 글을 완성했다.
'내가 어떻게 알래스카로 오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떻게 보면 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이 내게 "어떻게 알래스카 까지 가게 됐어요?"라고 물어보았기에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삼았다. 이 스토리를 쓰지 않으면 다음 이야기 전개가 힘들 것 같았다.
그렇게 1-1부터 쓰기 시작해서 어떤 날은 하루에 몇 꼭지나 쓸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글 쓰는 게 재미있었다. 그래도 매일 한 꼭지씩 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한 편의 글을 쓰고 나면 마음이 정말 뿌듯했다.
내가 글을 완성했다는 것도 기뻤고 내 삶을 이야기로 써 내려간다는 게 즐거웠다.
그러면서도 어떤 글은 써놓고도 마음에 들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하지?' 혼자 고민했던 적도 있다.
힘들고 열받았던 경험을 쓰다 보면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 밤에 잘 때 혼자서 씩씩 거리기도 했다. 반대로 웃기고 재밌었던 에피소드를 쓴 날이면 혼자 웃으며 행복해지기도 했다.
총 5장 중에 3장의 마지막 글을 쓰던 즈음, 정말 글을 쓸 수 없을 만큼 감정이 복잡하고 힘든 날도 있었다. 어떤 일 때문에 도저히 글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글 쓰기 강의에서 들었던 "그런 날일지라도 빨리 돌이켜야 한다"는 작가님의 말이 생각났다. 다음 날, 다시 힘을 내어 꾸역꾸역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글이 완성되어 갔다.
2월 말에 시작된 책 쓰기 여정은 4월 말에 마침표를 찍었다.
거의 두 달 동안 열심히 달려 글을 쓴 것이다.
4월에는 한국에 계신 엄마가 아프시다는 소식을 듣고 몇 주 동안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한국에 들어갈 수 없는 비자 상황과 옆에서 엄마를 돌봐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 그리고 지금까지 엄마에게 잘해드리지 못했던 죄송함과 그리움이 밀려왔다.
엄마는 이유 모를 통증에 힘들어하시다가 류머티즘 루푸스 희귀성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진단을 받으셨다.
사실 그전까지 나는 루푸스라는 병을 들어보긴 했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루푸스는 라틴어로 '늑대'라는 의미로 몸 전체의 장기, 조직, 세포를 공격하는 전신 자가 면역 질환이라고 한다.
루푸스를 앓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온몸이 아프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더 마음이 아팠다.
마음이 너무 힘들고 괴로울 때면 주로 일기를 쓰면서 감정을 쏟아냈는데
이번에는 셀프코칭일지를 혼자 썼다.
역시 글쓰기엔 힘이 있었다. 하루, 이틀 셀프 코칭을 하면서 고도로 슬펐던 감정들이 조금씩 생각으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 상황 가운데서 슬픔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 감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꾸역꾸역 글을 써 내려갔다.
그러다가 마음이 너무 힘든 날은 글쓰기도 쉬었다.
때론 글을 쓰다가도 '내가 책을 낸다면 누가 관심을 가지고 읽을까? '
'내 글이 과연 독자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하면서 조금은 다운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삶의 이야기를 책으로 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하루 1시간 책 쓰기의 힘>의 이혁백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작가는 글솜씨가 좋아서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책 쓰기를 통해 글솜씨를 키우고 필력도 자연스럽게 향상됩니다. 담백한 문장력, 문법 등의 실력을 갖추기 위해 들이는 시간에 누군가는 벌써 책을 몇 권 써서 운명을 바꾸고 있을 테니까요."
처음 책을 쓰겠다고 결심했을 때, 마음만 먹으면 빠르게 40 꼭지라도 완성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막히는 부분에서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그래서 중간에 '책은 천천히, 여유 있게 써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황준연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책 쓰기는 마라톤이군요. 하루 1시간씩 꾸준히 쓰면 되는군요."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책 쓰기와 마라톤이 비슷할 수 있지만 책 쓰기는 단거리 경주다.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쏟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간에 포기할 확률이 높다.
토익을 공부할 때 크게 2가지 방법론이 있다. 1년을 두고 천천히, 꾸준히 공부하는 방법과 2~3개월 안에 최대한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하는 방법이 있다.
나는 한 전문가가 두 번째 방법이 훨씬 낫다고 추천해 줘서 그렇게 하기로 했고, 3개월 만에 고득점으로 토익을 졸업했다.
만약 1년을 잡고 토익 공부를 했다면 우선 1년 안에 내 일정이 계속 유지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개인적인 사정이 생길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꾸준히 공부하는 패턴이 깨진다.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목표는 점점 멀어진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이렇게 목표를 길게 두기 때문에 실패한다.
1년에 비해 2~3개월은 통제하기가 쉽고 집중하기가 쉽다.
책 쓰기를 마라톤으로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해야 할 일로 생각하는 순간 책 쓰기는 힘들어진다.
하지만 단기간에 끝낼 일로 정하면 2~3달 안에도 끝낼 수 있고, 많은 경우에 그것이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았다.
이 글을 읽으며 어쩌면 나의 급한 성격 때문에 지난 두 달간의 책 쓰기 초고 여정이 마무리되었던 것 같다.
앞으로 퇴고와 교정, 그 이후로도 여러 가지 과정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일단 초고를 완성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하다.
그것은 내 글이 어땠느냐에 상관없이 1차적인 목표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일 것이다.
이 길은 아직 처음이다.
아직 가보지 않은 초보 작가의 여정이지만,
하나씩 부딪쳐보며 배우게 될 거라고 믿는다.
결국 어떤 길이든 어떤 과정이든, 그 속에서 얻어지는 보석과 같은 것들이 숨어 있으니까.
마음 한편에 그런 기대를 품고, 초고집필을 마무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