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이름을 못 지어서 못 해요

기록의 연습 : 1인 출판 에세이

by 최소소
출판사 이름을 못 지어서 못 하고 있어요.

출판사 해보는 건 어떠냐는 말을 종종 들었던 작년 한 해 동안 내가 해왔던 대답이다. 처음 출판사 창업에 대한 마음먹은 건 약 2년 전이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오래도록 출판 편집에 대한 꿈이 어렴풋이 있었다. 그때마다 이런 건 관련학과를 나와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런 생각만 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때 나는 세상의 모든 직업군을 배움이 선행되어야만 할 수 있는 존재라 신성히 여기곤 했다. 그 이상한 장벽이 깨지기 시작한 건 아이를 양육하면서부터이다. 사실 임신, 출산, 육아는 아무 배움이 선행되지 않아도 그럭저럭 잘 해내지 않는가. 살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실전에서 부딪히고 깨져봐야 나름의 노하우가 생기는 것이라는 걸 그때야 깨달았다.


공저자로서 내 글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나름의 성장을 했음에도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여전히 어색했다. 우연히 공저한 책들을 알게 된 지인이라도 생기면 나는 내 글이 자꾸 볼품없게 느껴져 구매를 만류하기에만 급급했다. 내가 쓰는 글의 특성상 공모를 위해 아껴둬야 했고 대외적으로 나와있는 글들은 소모되어도 아깝지 않을 습작에 가까운 글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뭐 어차피 나한테 큰 수익도 없으니 홍보 같은 걸 할 리도 만무했다. 그랬던 내가 서서히 장벽을 무너뜨리고 글 쓰는 나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인 나로 산 지 8년 만이었다.


글 쓰는 사람으로 산 지 여러 해가 쌓이자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머물렀다. 일단 글 쓸 작가가 없어서 책을 못 낼 일은 없다는 얘기다. 어쩐지 나만 빼고 출판사를 할 준비가 된 느낌이었다. 나는 출판사의 첫 시작으로 내가 쓴 글을 엮어서 소설집 같은 걸 내고 싶었다. 꽤 거창한 꿈이었다. 내 계획과는 달리 내 출판사의 첫 작업은 공저가 되었고, 나의 단독저서로는 소설집이 아닌 그림책이 나오게 되었다. 그것도 내가 직접 그리고 쓴 그림책말이다. 참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이다.


출판사 이름을 짓지 못해 창업을 미뤄왔던 시간은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히 작명 센스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도망이었다. 이름을 짓는다는 건 이 공간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선언하는 일이었고 그 선언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압박이 나를 멈추게 했다. 내가 정말 타인의 기록을 엮을 자격이 있는지 내가 만든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들긴 할지 어느 것 하나 확신 없던 마음이 이름 없어서 못 한다는 핑계를 만들어 뒤에 숨었다.

​긴 고민 끝에 붙잡은 이름은 아티움(Artium)이었다. 줄리아 캐머런의 <아티스트 웨이>에서 빌려온 아티(Arti)와 빛이 들어오는 광장을 뜻하는 아트리움(Atrium) 그리고 무언가 새로 돋아나는 싹을 의미하는 우리말 '움'을 합쳤다.

'아티스트가 피어나는 공간'

​나 같은 사람들이 이곳에서만큼은 자기 안의 씨앗을 발견하고 기어이 싹을 틔워내길 바라는 마음. 그제야 내가 만들고 싶은 출판사의 정체성이 선명해졌다. ​그렇게 방향을 정하고 나니, 내 인생은 또 한 번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를 떠밀었다. 소설집을 내겠다던 야무진 계획 대신 내 손에는 난생처음 그려낸 그림책 원고가 들려 있었다. 기록은 자신 없고 엮는 일은 잘한다던 내가, 결국 내 안의 가장 날것의 이야기를 그림과 글로 직접 녹여낸 셈이다. ​준비가 되어야만 시작할 수 있다고 믿었던 2년 전의 나였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하지만 육아가 그랬듯 일단 부딪히며 만들어낸 이 그림책이 아티움의 첫 번째 '움'이 되었다. 이름을 짓지 못해 태어나지 못할 뻔했던 출판사가, 이제는 제 이름을 걸고 첫 번째 생명력을 시험받고 있는 중이다.


도서출판 아티움의 첫 번째 움이 궁금하시다면

Click 텀블벅 펀딩 중 <꿈꾸는 식빵>

이전 01화기록은 못 하지만, 출판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