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못 하지만, 출판사 대표

기록의 연습 : 1인 출판 에세이

by 최소소

2026년 다이어리가 두 권이나 생겼다. 포장도 채 벗기지 못한 다이어리를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2025라고 또렷이 각인된 검은색 양장 다이어리가 무심코 눈에 들어온다. 일부러 본체만체하면서도 저걸 어쩌지 싶은 마음이 목에 걸려 쉽게 삼켜지지 않는다. 2024년의 나는 매주 수요일 아침마다 독서모임에 착실히 참여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책 추천하는 자리에서 벤저민 하디의 《퓨처셀프》를 회원들에게 추천하기도 했다. 이 책을 함께 읽고 쓰기까지 한다면 다이어리라는 것을 나도 꾸준히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내심 있었다. 함께라는 무적의 힘을 빌려 나는 호기롭게 다이어리를 구매했다. 35000원이라는 나름 큰 투자였다. 참고로 다이어리를 내 돈 주고 사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그런 내가 거금을 들여 다가올 2025년을 아주 거창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그 다이어리는 1년이 지난 지금도 백지상태이다. 다행히 그런 상태인 다이어리와 대비해 나의 1년은 까맣게 꽉꽉 채워졌다. 내가 미처 펼치지도 못한 다이어리를 제외하곤 말이다. 나의 2025년은 누구보다 바쁘게 흘렀고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가 일었던 해이다. 그런 엄청난 순간들을 휴대폰 저장소와 내 머릿속에 의지해야만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걸 기록으로 남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순간들이 이따금씩 내게 찾아온다.


이렇듯 기록과는 거리가 먼 내가 출판사를 차렸다. 내 기록도 귀찮아서 못 하고, 까먹어서 못 하는 내가 덜컥 출판사 대표가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책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쓰시겠네요 라는 생각을 당연히 할 것이다. 물론 내게 아직 그런 말을 건넨 이는 없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글이라는 것에 다이어리 기록까지 포함이 된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나에 대한 기록을 제외하면 다른 글들은 꾸준히 잘 써 내려가고 있으니까. 그 어정쩡한 기로에 서서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서 너는 아마 그럴 거야 하는 무언의 의미심장한 반짝임을 발견한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답하고 싶다.

기록은 못 하지만, 출판사 대표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못하는 기록이 모든 기록은 아니다. 그저 다이어리를 참 꾸준히도 못 쓴다. 기록을 잘해야 출판사를 하는 건 분명 아니다. 아마 나 같은 부류의 출판인도 분명 한 명쯤은 있으리라. 다이어리 첫 장만 쓰기, 혹은 몇 달만 적고 그 이후로는 아주 깨끗한, 그런 사람이어도 책을 만드는 데에 문제는 없을 것이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만 운동용품을 팔고, 빨래를 잘해야만 세탁기를 팔 수 있는 게 아니듯이 말이다. 원래 남 소개는 쉬워도 셀프로 내 소개는 어려운 법이다. 내겐 다이어리가 그런 종류의 기록이다. 학창 시절의 취미나 특기 적기와도 같은 낯간지러움이 묻어있고 확실하지 않으면 선뜻 쓰지 못하는 내 성향도 한몫하고 있다. 그러다 센티한 어떤 날엔 내가 측은해지기도 한다. 어쩌면 나는 기록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록을 너무 소중히 여겨 함부로 적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자기 위안 같은 망상에 빠기기도 한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꾸준히 기록하는 것에 서툰 사람이다. 그러나 기록을 모으는 일, 필요한 기록을 발견해 내는 일엔 능숙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하나 둘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기록을 엮어 책으로 만들어 가는, 나를 응원하고 있다.

기록은 좀 못해도 괜찮아. 너는 잘 엮어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