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루는 것들 | 단어 에세이
너는 빈말이라도 좀 해주면 덧나냐.
이건 내가 엄마에게 가끔 듣던 말이다. 가벼운 말 한마디조차 꺼내기 어려웠던 나는, 빈말조차 하지 않는 어른으로 자라났다.
<'빈말'의 사전적 의미>
실속 없이 헛된 말.
그 당시, 나는 빈말을 겉만 번지르르한 선물과도 같다고 여겼다.사람들은 예정돼있지 않은 미래를 그럴싸한 말로 포장해서 타인에게 덥석 쥐어준다. 훗날 열어보면 그 속은 텅 비거나 포장지보다 못한 것들이 잔뜩 들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보통 언제 밥 한번 먹자던가, 다음에 또 봐요 같은 말을 흔히들 한다. 그들 중 정말 그러기를 원해서 말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의문을 가진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만약 그럴 상황이 안되어 못하게 된다면 어쩌지.'라는 불안이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그러니 나의 기준에서 그런 약속들은 지키지 못할 수도 있는 허황된 약속이었을 것이다. 또, 상대와 나를 기만하는 무책임한 말이기도 했다.
간혹 내가 밥 한번 먹자거나 다음에 또 봐요 같은 소리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면 정말로 그러기를 원하거나, 이미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이었다. 재밌는 건 그런 원칙은 항상 남보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가장 엄격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빈말하지 않는 나는 가족들을 섭섭하게 만드는 누나이자 딸로 서서히 자리매김했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커서 차 바꿔줘라.
커서 좋은 집 사줄 거지?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나중에 커서 부모님 차를 바꿔준다던지, 집을 사준다던지 그런 농담을 어른들은 종종 했다. 이상하게 나는 그런 농담들에 웃음이 전혀 안 났다. 내 키보다 높이 달린 눈동자들이 위에서 나를 우두커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의 대답만을 기다리는 그 상황은 나를 숨죽이게 만들었다. 흡사 거인과 숨바꼭질하던 난쟁이가 된 것도 같았다. 거인에게는 그저 재밌는 숨바꼭질 놀이겠지만, 난쟁이인 나는 거인에게 절대 들키면 안 되는 그런 숨 막히는 상황처럼 느껴졌다. 그때 내 작은 머릿속에서 무슨 결정을 내렸는진 몰라도 ‘내가 그 정도론 돈은 못 벌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그다음은 '덜컥 약속했다가 나중에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이 가장 컸던 것 같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억지웃음으로 대충 때우며 넘어갈 수밖에.
좀 더 커서는 어른들은 나에게 여행이라던지 값비싼 선물 같은 걸 농담으로 요구하는 날도 있었다. 분명 농담인걸 알면서도 저 말 중 진심의 비율은 과연 어느 정도 일까 생각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지곤 했다. 머리로는 농담인걸 알지만 이미 마음은 어딘지도 모를 반대방향으로 열심히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그냥 어차피 해주기 힘든 거면 말이라도 기분 좋게 해 주면 되지 뭐가 그렇게 어렵냐고 할 수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맞다. 그거보다 더한 것도 해드리겠다고 말 한마디정돈 텅텅 쳐줄 수 있다. 말 한마디에 돈 드는 게 아니란 걸 그때도 알고, 지금은 더욱 잘 아는 어른이 되었는데 나는 그것도 아까운 걸까. 아니 어쩌면 나는 내 마음을 떠보며 끊임없이 시험당하는 그 기분이 야속하고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감사할 일도 없는데 뭘 자꾸 감사하라는 것일까.
그럼에도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보통의 사람들처럼 빈말 비슷한 것을 얼추 흉내내기 시작했다. 빈말하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고 내 삶이 더 나아지거나 나빠지는 일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내가 좀 덜 팍팍해 보이고 부드러워진 어른이 된 기분정도였다. 꽤 융통성 있는 어른흉내를 내며 살고 있던 어느 날, 내 인생에서 빈말이랑 비슷한 걸 마주한 날이 있다. 누구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감사일기’라는 것이 유행하며 나를 제외한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 쓰기 시작했다. 감사일기를 쓰면 행복해진다는 것이었다. 그 감사의 내용은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부터 시작해서 오늘 하루일과에 대한 상투적인 감사였다. 내 눈에 어떤 것은 진짜 감사할만한 일이기도 해 보였고 어떤 건 정말 감사할 일이 없어서 꾸역꾸역 감사헌금이라도 내는 듯 해 보였다. 그런 감사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그럴 거면 차라리 소원노트 같은 걸 쓰는 게 낫지 않을까. 감사할 일도 없는데 뭘 자꾸 감사하라는 것일까 생각한 적도 있다. 그랬던 내가 요즘 감사일기를 쓰고 있다. 그것도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어제도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있음에 감사합니다.'라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써 내려갔다.
처음엔 독서모임의 루틴 중 감사일기가 있어서 시작했다. 썩 달갑지 않게 시작한 감사일기에 나도 남들과 대충 비슷한 내용의 감사들을 일단 나열했다. 그러다가 왜 시원한 물에게 감사한지, 책을 볼 수 있게 건강한 눈에 감사한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사실 그거라도 안 쓰면 감사할 일이 내 일상에 그리 많지 않았다. 특별한 기념일이나 이벤트라도 있어야 그나마 그게 나의 유일한 감사할 거리였다. 그런데 희한하게 하루하루 감사일기를 거듭할수록 큰 고민 없이 감사일기를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감사할 일을 억지로 만들어야 써지던 감사일기가 감사할 일을 내게 자꾸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었다. 원래 감사일기는 감사한 일에 감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감사할 일들에 미리 감사를 하는 것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글을 본 나는 목구멍을 막고 있던 두툼한 솜뭉치가 턱 하고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이거였구나! 그런 거면 안 할 이유가 없지. 말의 힘이 실감된 순간이었다.
나는 아마 간절하게 빌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쯤 남편은 <더 시크릿>이라는 끌어당김에 관한 자기 계발서를 오디오북으로 들으며 퇴근하고 있었다. 퇴근 시간엔 주차장에 자리가 없을 시간이지만, 이상하게도 남편은 주차를 곧잘 하고 들어오며 콧노래까지 부르곤 했다. 어느 날은 자기가 주차장 입구에 들어올 때마다 무슨 말을 하며 들어오는지 아느냐고 내게 물었다. 얘길 듣자 하니 ‘이 주차장에 내 자리 하나는 있다! 내 자리 하나는 반드시 있다!’ 장엄하게 외치면서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하며 주차장 몇 바퀴 돌다 보면, 정말 신기하게도 꽉 찬 주차장에 반드시 한자리 정도는 딱 생겨있다고 아주 흡족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귀엽고 신기하기도 하고 피곤한 퇴근길에 그런 걸 주문처럼 외우고 있었을 그 사람을 생각하니 덩달아 웃음이 났다.
그때부터였을까. 언젠가부터 나도 비슷한 주문을 마음속으로 되뇌며 주차장을 돌고 있다. 이제 이 비법을 알게 된 이들이 모두 같은 주문을 외운다면, 우리 자리 하나마저 없어지는 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가끔 하기도 한다. 요즘의 나는 감사일기를 쓰거나 빈말을 하는 게 이전처럼 꺼려지진 않는다. 어쩌면 빈말은 속이 텅 빈 말이 아니라 무언가 원하거나 감사할 일을 아주 간절하게도 '비는 말'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 것을 빈말이라고 규정짓고 나니 감사일기나 빈말에 대해 내내 불편했던 나의 마음도 조금 이해가 간다. 나는 아마 누구보다 더 간절히 빌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내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을, 자꾸 내가 빌기도 전에 나보고 뚝딱 이뤄내라고 하니 회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에게 빈말을 건넨 그들 역시 간절히 빈 말이었을지도 모르다고 생각하니 불편한 마음이 차츰 누그러졌다. 분명한 건 그 불편한 마음 하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니 그걸 뺀 나머지가 무한한 가능성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불확실한 미래는 아직 오직 않았고, 나는 그걸 미리 선택하기로 마음먹는다. 가능하면 가장 설레고 기다려지는 것들로 골라서 빈말이라는 상자에 담아본다. 더불어, 빈말이 내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들로 정성껏 다듬어졌을까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