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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사람 Apr 27. 2021

주머니가 가진 것





딸기 미니쉘과 바닐라 미니쉘이 없었다면 이런 오후도 없었을 것이다. 바쁘게 바쁘게 부산과 마산과 함안을 돌고 돌고 정신없을 때 주머니에서 만져지던 것, 네가 준 것. 나, 초콜릿 같은 거 잘 안 먹는데. 넣어둬봐, 먹게 될 테니깐. 꽃가루가 너무 날려 벤치에는 앉지도 못하고 흐리고 뿌연 하늘을 쳐다보다 그냥 되돌아왔을 때, 넌 초콜릿을 꺼내놓고 어떤 초콜릿이 가장 초콜릿다운지를 설명하고 그게 무슨 인생철학인 양 우쭐대기까지 하는 꼴을 보았는데, 다른 때 같으면 웃음을 터트렸겠지만 무슨......난 이제 그런 거 따윈 웃지 않는다, 아니, 웃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언제부턴가 모든 것, 돌멩이를 포함해서 이 세상을 이루는 데 모양을 갖추고 있는 모든 것은 그만의 개별화된 철학성이 있다고 믿으니까. 아니 믿고 싶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런 순간 웃음보다 침묵이 더 자연스러운 자세가 되었다. 너와 너의 초콜릿에게도.

한 달 전에 준 것 같은데  초콜릿은 변함없이 초콜릿. 그러는 동안 주머니는 주머니답게 훌륭하게 숨어 있었다. 정작, 나는 그 모든 것을 잊고 있었고. 세상의 대부분이 이런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주 잠깐이지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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