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모음:여성일터 안전키트> 콜센터 상담사 주연씨의 일과 몸 ①
프로젝트 <조각모음: 여성일터 안전키트>는 여성 노동자들의 일과 몸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미지-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산업재해 의제에서 소외되기 쉬운 여성의 노동을 드러내고, 흩어져 있던 목소리들의 조각모음을 통해 이야기의 확장을 시도하고자 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재)숲과나눔의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각종 민원처리, 개인정보 변경, 보험료 납부, 청약과 대출 상담 및 신청... 우리가 콜센터를 통해 처리하고 있는 일들 중 일부다. 콜센터는 대표적인 비대면 서비스 업무다. 비대면 사회에 접어든 지금 콜센터는 단순한 정보 안내를 넘어 기업·기관의 대고객 서비스의 상당 부문을 처리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의 경우 공단이 직접 수행해야 하는 업무를 1063개나 수행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그럼에도 콜센터 노동의 '몸'은 좀처럼 조명되지 않는다. 콜센터 종사자가 얼마나 되는지, 정부의 공식 통계조차 미비하다. 감정노동 문제는 많이 언급되었으나, 그 뒤에 '콜센터 업무는 보조적 업무', '단순노무 여성 일자리'라는 저평가, '비정규직-저임금-고강도 노동구조'로 고착된 노동조건, 기업의 강도 높은 관리·통제시스템이 있다는 것은 말해지지 않는다.
'직장갑질 119'의 실태조사(21.10)에 따르면, 상담사 10명 중 4명이 상담 중 이석금지(39%)를 당했고, 점심시간 외의 휴게시간을 갖지 못했다(39.4%). 점심시간을 제한당하거나(34.2%) 화장실 사용을 제한당하기도 했다(17.2%). 한편 10명 중 8명(74.8%)이 '권한을 갖지 못해서' 상담 시 정확한 정보 제공을 못하거나 혹은 책임지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오직 더 많은 전화를 처리하게끔 하고자 노동자들의 신체, 심리, 업무상의 자율권을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비대면 서비스산업의 확산 뒤에서, 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성들의 몸들은 어떻게 통제당하고 왜 지워지는가. 그리고 이것이 이들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어떻게 위협하는가. 6년 차 콜센터 노동자인 주연(가명)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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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공단 콜센터에서 일해요. 공단이 콜센터 업무를 직영이 아니라 위탁을 주고 있어요. 난 위탁업체 소속이에요. 아침 9시부터 바로 컴퓨터를 켜죠. 로그인을 하자마자 전화가 막 들어와요.
우리 사무실엔 140명쯤 있어요. 의자 좀 뒤로 빼면 바로 부딪힐 정도로 밀집해 있는데 컴퓨터가 또 수백 대가 돌아가요. 그러다 보니 사무실이 좀 더운데, 에어컨을 진짜 진짜 더워야 겨우 틀어줘요. 센터 별로 다르긴 한데, 우리는 평균 나이대가 40~50대예요. 갱년기 여성들은 더위를 많이 타는데 좀 힘들죠.
우리 일이 감정노동이 제일 심하긴 한데, 사실 몸 아픈 것도 많죠. 계속 책상에 앉아 마우스를 잡고 일하잖아요. 어깨랑 손목이 많이 아파요. 터널증후군 같은 거. 헤드셋도 종일 끼고 있으니까 귀 쪽도 문제가 생기죠, 난 왼쪽 귀가 좀 안 좋아서 오른쪽으로 주로 듣거든요. 가금 삐-하는 이명이 들려요. 나 말고도 근골격계 질환, 어깨 아프고 팔이 안 올라가고 그런 거랑, 이명, 이석증 때문에 고생하는 친구들 되게 많아요. 스트레스받으면 그런 게 더 심해져요.
그리고 종일 앉아서 일하니까 좀 일어나고 싶어요. 의자는 좀 좋은 거로 바꿔주긴 했는데 그래도 계속 앉은 자세니까 하체에 피도 잘 안 통하고 관절도 안 좋아지고 그러거든요. 일어나서 콜을 받으면 좋겠는데 그걸 팀장들이 안 좋아하죠.
그리고 보면요, 자궁 쪽 질환 있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자궁근종 수술도 많이 하고. 일하는 자세랑 화장실 잘 못 가는 거랑 연관이 있지 않을까 의심이 들어요. 조사를 한 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인과관계는 불분명하지만, 조사 자체를 해본 적이 없잖아요. 공론화 자체가 된 적이 없죠.
보면 직장여성 건강지원으로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은 있는데 자궁질환 같은 건 지원이 없어요. 여성한테는 되게 치명적인 건데. 그런 질환에 대한 지원이나 병가, 산재 인정 같은 게 됐으면 좋겠어요. 보면 정부가 아기를 낳는 거만 챙기지 여성들 몸 자체는 안 보는 거 같아요.
어쨌든 고객센터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건 콜 수죠. 모든 게 실적 위주예요. 콜을 많이 받아야 (위탁)업체가 나중에 공단이랑 재계약을 할 때 유리하거든요. 업체들 간 경쟁이 붙고, 업체는 상담원들을 경쟁 붙이죠.
요즘은 좀 덜한데, 많이 받으면 1시간당 20~30콜, 일단 140콜이 기본이고, 좀 더 하면 160콜, 많이 받으면 180콜까지 받았어요. 공단에서는 우리가 1일 평균 90콜~100콜 받는다고 했다는데, 그건 휴직자를 넣어 계산한 거예요. 우리가 엄청 경쟁하면서 살고 있다는 걸 숨기고 싶었나 봐요.
전화를 받아야 하니까 우리를 하루 종일 꼼짝을 못 하게 하는 거예요. 화장실이 급해도, 팀장이 자리를 슥 둘러보면서 "화장실 간 사람 없을 때 가주시기 바랍니다"이래요. 내 방광에 염증이 생기든 말든 오로지 실적... 어떤 센터는 화장실용 인형을 뒀대요. 화장실 갈 때 그걸 들고 가야 하고, 다른 사람은 인형이 자리로 돌아올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
화장실에 오래 있으면 팀장이 데리러 오고, 자리 비운 게 10분 넘어가면 관리자들이 단체 메시지로 다 상황 공유를 해요. 그럼 상담사들은 심적으로 압박을 어마어마하게 받죠. 콜 받느라고 생리대도 못 갈아서 피 흘리면서 일했다는 데도 있었어요.
점심시간 1시간을 다 써본 적이 없었어요. 콜 더 받으려고 20분, 30분씩만... 전에는 전화 연결이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됐거든요. 대통령 바뀌고는 이 시간이 줄긴 했는데, 그 연결 시간 내내 콜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급여가 기본급+인센티브 구조인데, 실적별로 등급을 나누고, 등급별로 인센티브를 다르게 줬으니까요. 우리 센터에선 최고가 40만 원, 40-20-10-5만 원 이렇게 나눠졌어요.
또 경쟁을 시키는 게, 가점, 프로모션. 특히 콜센터가 바쁜 날이 있거든요. 공과금 납부 마감일이나 월말은 전화가 많아요. 그때 하루에 140콜 이상 받으면 2점, 이런 식으로 가산점을 주는 거죠. 프로모션은요, 팀별로 하루에 실적 몇 콜 받는지 경쟁 붙이고 잘한 팀한테는 오후 몇 시에 아이스크림 쏩니다, 이런 거. 그럼 그거 받으려고 화장실도 못 가고 난리가 나요. 나는 하기 싫어도 팀별 실적이니까 같이 할 수밖에 없고. 고작 아이스크림 하나, 과자 하나 걸고.
만약 납부 마감일이 10일인데 애들이 그날 졸업식이야, 그럼 연차 신청을 할 거 아녜요. 근데 연차 안 주고 그냥 실적에서 까는 거예요. 정상 근무한 것처럼 계산해서 그날 실적을 0으로 처리하죠. 그럼 등급이 내려가요. 1등급 내려가면 월급이 10만 원 까이거든요.
전에 우리 아들 군대를 보내는데, 그날이 12월 26일이었어요. 같이 가야 하니까 연차를 쓰는데 그때가 연말에 월말이니까 바쁜 날이었죠. 거기에 가점 프로모션을 건 거예요. 그러니까 난 등급이 확 내려갔죠. 월급도 줄고.
더 심한 건 미진행. 점심시간 안 주는 거. 9시-6시 근무를 점심시간 빼고 일하면 9시-5시로 줄여준다는 거예요. 미진행 하는 동안은 하루에 10분 이상 자리를 못 뜨게 했어요. 화장실, 식사, 물 마시는 시간 다 10분 안에 해야 하는 거죠. 내 동료 한 명은 미진행을 많이 했는데, 대장암 진단을 받았어요. 일찍 가서 아이 봐야 하니까 5시 퇴근하려고. 거기에 애 키워야 하니까 등급은 유지해야 하고. 종일 전화 받는 거죠.
이 전화 받고 저 전화 받는 그 사이에 김밥 한 개 훅 삼키는 거, 그게 점심이었어요. 근데 그렇게 일했는데도 나중엔 실적이 까였었어요. 참다 참다 너무 아파서 병원 간 거로요. 지금도 투병 중이에요. 그래도 다시 여기 오고 싶다고는 해요. 아이 엄마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고, 공기업이고 휴일 보장해주는 게 되게 큰 장점이긴 하거든요. 홈쇼핑 콜센터 같은 데는 주말도 없잖아요.
그래도 그렇게 일하는데 어디가 멀쩡하겠어요. 제대로 쉬기라도 하면 모를까. 우리한텐 공식적인 휴식시간이 없어요. 노조 만들고 그냥 우리가 자발적으로 법을 준수하자 해서 휴식시간 45분 쓰고 있는 거예요. 화장실 가는 시간도. 회사에서 얼마씩 쓰라고 공식적으로 나온 게 한 번도 없어요.
아, 프로모션으로는 있었다. 실적 채웠으니까 5시부터 30분간 쉬라고. 근데 그것도 실적 따라 주는 거니까 누구는 1시간, 누구는 30분 이랬죠. 나중엔 비조합원들도 조합원들 따라서 알아서 쉬더라고요. 그러면서 노조 가입도 하면 좋은데...
공단에서 원하는 건, 그냥 업체들, 너희들끼리 일거리 지사로 넘기지 말고 문제 안 생기게 해결하는 거, 그거 같아요. 결국 업체는 우리를 쪼죠. 호전환이라고 있어요. 지사로 전화 연결하는 거. 그걸 100콜 당 3개까지만 할 수 있게 했었어요. 4개 이상 하면 점수를 까는 거죠. 녹취 내역을 평가해서 고객센터에서 처리할 수 있는 걸 지사로 넘겼다 하면 또 까고. 그렇게 까이면 등급이 2등급씩 차이가 나요. 지사가 무슨 국정원이에요. 전화번호 막 알려줘도 안 된다 하고.
우리가 하청업체 있으면 경쟁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럼 휴식시간도 없고 내 몸은 계속 망가지겠죠. 회사는 늘 실적이 잘 돼야 입찰에서 선정될 수 있다는 논리예요. 그러니까 무조건 실적,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직고용을 원하는 건, 공단 직원이 되면 법을 지키면서 일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거죠.
* 민주노총 이슈페이퍼 '민주노총 콜센터 노조 실태조사를 통해서 본 노동조합의 과제'(2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