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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희 Dec 30. 2021

'돌봄노동' 에 나를 맞춘다, 내 몸이 틀어졌다

<조각모음: 여성노동 안전키트> 요양보호사 영은씨의 일과 몸



프로젝트 <조각모음: 여성일터 안전키트>는 여성 노동자들의 일과 몸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미지-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산업재해 의제에서 소외되기 쉬운 여성의 노동을 드러내고, 흩어져 있던 목소리들의 조각모음을 통해 이야기의 확장을 시도하고자 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재)숲과나눔의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초고령화와 사회구조의 변화, 코로나 팬데믹 등을 겪으면서, ‘돌봄’이란 이제 사회 유지를 위한 ‘필수노동’이 되었다. 사회적 논의도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수행하는 돌봄노동자들의 몸은 여전히 이 흐름에서 소외된 모양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 따라 노인에게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들의 일은 ‘수발 들기’ 정도로 단순히 표현되곤 한다. 그러나 실제는 전혀 단순하지 않다. 이들의 돌봄노동은 일반 서비스직보다도 특수한 감정노동을 수반한다. 서비스 이용자와의 지속적인 관계 맺기와 정서적 유대감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반복작업이 많고 사람의 몸을 직접 떠받치거나 이동시키는 등 상당한 강도의 신체노동을 동반한다. 직무스트레스와 근골격계 질환, 폭언과 폭행, 성희롱 등 대인적 재해의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현행 법제도에서 이들의 건강권은 종종 ‘논외’가 된다. 관련 연구들은 요양보호사들이 다양한 건강상 위험을 경험하고 있으나, 현행 산재안전망에서는 예방과 보상 모두 부정합(不整合)성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업무환경이 일정치 않은 일대일 대면 서비스라는 업무특성과 취약한 고용, 노동환경 등을 고려하지 않음으로서 예방 뿐 아니라 당사자의 산재 신청과 보상도 매우 제한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요양보호사의 근골격계질환을 법원과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분석도 있었다. ** 종사자가 거의 중고령층 여성이기에 이를 통상적인 퇴행성 질환으로 판단하는 탓이다.   

이런 환경에서 돌봄노동자는 자신의 일과 몸을 어떻게 돌보고 있을까. 당사자가 생각하는 건강하고 안전한 노동은 어떤 것일까. 12년차 재가요양보호사 오영은(가명)씨의 일과 몸 이야기를 들었다.  



돌봄, 그런데 이제 중노동을 곁들인...  


요양보호사를 한 지는 12년이 됐어요. 일하는 날은 (서비스 대상자와) 매칭되는 거에 따라서 다른데, 지금은 1주일에 5일 일해요. 오전에는 어르신 혼자 계신 집에, 오후에는 반신마비 환자분이 있는 집에 가요. 첫 번째 집에는 아침 8시 반쯤 출근해서 12시까지 일하고 바로 두 번째 집에 가서 12시30분부터 저녁 5시30분~6시까지 일해요. 다행히 두 집이 가깝긴 한데 시간에 맞추려면 따로 점심 먹을 시간이 없어요. 그냐 걸어가면서 길거리 핫도그나 김밥 사서 먹으면서 가거나 그냥 안 먹거나. 안 먹는 게 습관이 됐어요. 

가서 하는 일은 집 청소, 식사랑 약 챙겨드리고, 목욕 보조랑 병원 동행도 해요. 체력이 많이 필요해요. 계속 몸을 부축하고 지탱해주면서 도와야 하니까 힘을 많이 쓰고요. 오후 환자 분은 식사 먹여드리는 데만 1시간이 걸려요. 양치, 세안해준 다음에 운동도 같이 해줘야 되고요. 혼자는 잘 못 걸으니까 아기들 걸음마 시키는 것처럼 내 발에 발을 올리게 해서 한 걸음씩 같이 걷거나, 운동기구도 같이 굴려주는 거예요. 그걸 매일 하죠. 가족이 제대로 못해주는 케어, 대소변 처리 같은 걸 도와줘야 할 때도 있고요. 집안일도 은근히 중노동이에요. 장 보는 것만 해도, 기름이나 6개 들이 생수를 들고 5층까지 계단으로 올라오려면 힘 많이 들죠.  


우리가 하는 일은 서비스 대상자의 일상생활을 돕는 거거든요. 처음에 가면 우리가 할 일은 이거고 이런 일은 안한다, 이렇게 딱 정하긴 하는데 가서 하다 보면 그게 안 되긴 해요. 방 두 칸 있는 집인데 한 칸만 청소해주기도 그렇잖아요. 웬만하면 청소하는 김에 다 해주자 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곤란할 때가 있죠. 한 번은 집이 5층인데 바깥 창틀까지 닦으라는 거예요. 그 창틀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서 청소를 했죠. 창 가드레일 먼지까지 다 닦으라면서 검사까지 해서 이쑤시개로 정말 싹싹 긁어냈었어요. 청소기는 안 깨끗하다고 생각하시고 굳이 손걸레질을 시키던 분도 있고, 내가 청소하고 돌아서면 바로 자기가 닦아보면서 확인하는 분도 있었어요. 또 힘든 거는 너무 무거운 거 옮기라고 할 때. 된장 담갔다고 된장 항아리 옮겨달라고 하거나 3층 베란다에 있는 커다란 화분을 집 앞으로 옮기라고 했을 때. 벽에 못 박는 일이랑 겨울 커튼 빨래도 힘들죠. 커튼도 무거운데 그걸 다 떼서 빨아다가 다시 달아야 하니까. 그렇다고 안 하자니 어르신이 직접 하다 다치기라도 하면 그것도 곤란하고 내 수입에도 영향이 있으니까 결국은 힘들어도 내가 하는 거예요.  



어르신 돌보러 갔다가 김치 50포기 담근 사연


 그런데 아직도 대상자나 가족이 시키는 일은 우리가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어떤 분은 김치를 50포기씩 담그고 갈비를 10근씩 재게 했다고 하더라고요. 어르신 두 분 사는 집인데! 또 어르신이 30분 단위로 시간표를 짜놓고 청소부터 온갖 일을 시켜서 세 시간 내내 엉덩이 한 번 못 붙이고 나오게 한다는 집도 있었어요. 원래 청소도 이용자 방과 이동경로만 하게 되어 있는 건데 온 집안 대청소를 주기적으로 시키고. 그건 사실 하인 취급하는 거잖아요. 저한테도 한겨울에 솜바지랑 파카를 손빨래로, 1주일에 한 번씩 시킨 분이 있었어요. “어머니 저기 세탁기 있는데...”하니까 “그건 쓰는 거 아니야”이러시더라고요. 추운 것도 추운 건데 빨래를 너는 것도 고역이었죠. 솜이 물 먹으면 진짜 무겁거든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는데 예전에는 정말 하인 취급을 많이 받았어요. “넌 내가 일 시켜줘서 돈 받는 거잖아. 그러니까 너는 내가 사서 부리는 사람이야” 이런 식으로 말하는 분도 있었고. 도둑 소리 듣고 쫓겨난 적도 있었어요. 인수인계 내용이 ‘절대로 혼자 있을 때 냉장고 문을 열지 마세요.’ 였어요. 할머니가 요양보호사가 음식을 훔쳐 먹는다고 의심한다고. 하루는 할아버지가 넘어져서 다치셨어요. 옷에 피 묻어서 빨고 있는데 5만원이 없어졌다고 하시더라고요. 같이 찾다가 못 찾고 퇴근했는데 할머니가 전화해서 이러시더라고요. “그렇게 안 봤는데 도둑질을 할 줄 몰랐네.” 그날로 잘렸죠. 


일하는 환경이 계속 바뀌니까 그냥 내가 알아서 거기에 잘 맞출 수밖에 없어요. 장비도, 장갑이나 빨랫비누 같은 거도 원래 그 집에 있는 거 쓰는 건데 준비를 안 해놓으면 그냥 제가 사서 써요. 아쉬운 건 나니까. 사무실에서 사준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봐서 모르겠네요.

사람도 그렇죠. 사실 어르신이나 저나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서 맞춰간다는 게 쉽지 않아요. 처음에는 다들 조심하세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좀 편해지면 무시를 한다거나 스트레스를 막 표출하는 게 있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네가 한 음식 너무 맛없어서 버렸어”, “나 오늘 상태 안 좋으니까 너 가만히 좀 있어.” 이러시면 나도 사람인데 어르신이 짜증까지 내면 힘들죠. 그래도 제가 거기 맞춰야 하는 거고 저는 기분을 표현할 수는 없으니까 최대한 좋게 좋게... 저는 스트레스를 많이 담아 두진 않는 편이긴 해서 그나마 잘 버티는 거 같아요.    


내 몸을 돌보기엔 병원도 보험도 너무 멀어요 


그래도 온몸이 종합병원이에요. 일 끝나고 집에 가면 찜질하고 시트 붙이고 등 마사지 하고 그래요. 집에 안마기가 종류별로 있어요. 어깨, 팔, 손목, 관절 다 아프죠. 그리고 밥을 저녁에 몰아 먹어서 그런가, 위염이 많이 심해요. 병원에서도 위험 소견을 받았어요. 손끝도 계속 찌릿찌릿 저리고 아픈데, 그건 검사를 했는데도 원인을 못 찾았어요.  

몸을 많이 쓰는 일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누적된 통증 같은 거에 대한 보상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특별하게 입증하지 않아도. 4대보험은 가입돼 있지만 그런 건 산재로 처리할 수가 없거든요. 

일하다가 발을 접지를 때가 많아요. 전에도 어르신 넘어지는 걸 받치다가 발을 삐었어요. 그런데 그걸 산재로 처리하려면 사무실에서는 나한테 그게 왜 산재인지를 증명하라고 해요. 그럴 방법이 없죠. 허리디스크나 목 디스크 온 것도 병원에서 진단을 받긴 했지만 그게 일하다 생긴 거라는 건 제가 혼자 어떻게 증명을 하겠어요. 차라리 아예 일하다 그 자리에서 사고라도 당한 거라면 모를까, 몸이 점점 나빠지는 건 입증할 방법이 없죠. 


그리고 병원을 좀 편하게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건강보험공단에서 일하는 시간에는 다른 데 가면 안 된다고, 병원도 갈 거면 태그 찍고(퇴근하고) 가래요. 그럼 우리가 시급제니까 결국은 그날 일 빼야 한다는 얘기거든요. 그러니까 평일에는 병원을 갈 시간이 없는 거죠. 그렇다고 그거 때문에 정말 하루 빠지기도 어려운 게, 오후 집 경우는 저 없으면 환자분이 아무 것도 못 하잖아요, 거기 간 지 다섯 달쯤 돼서 이제야 서로 적응했는데 다른 사람이 가면 밸런스가 깨지는 것도 있고요. 그래서 대상자분들이 대체로 대타 보내는 걸 좋아하지 않으세요. 수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타를 보내고 1주일쯤 쉰 적은 있었어요. 위 검사하다 자궁 이상 소견이 나와서 재검사를 했더니 암일 가능성이 높은 혹이 발견됐다고 해서 급하게 수술을 해야 했거든요. 

건강보험공단도 그런 걸 좀 이해해서 진짜 아파서 급하게 30분쯤 병원 다녀오는 거 정도는 인정해줬으면 좋겠어요. 공단 직원들도 출근했다가 잠깐 병원 들른다고 결근처리 하고 가나요? 그러진 않을 거잖아요. 


급여도 호칭도 제대로 해 주길 


안 아프고 건강하게 꾸준히 일할 수 있으려면... 그냥, 너무 무리하지 않고 일을 하는 거겠죠. 기본적으로 해야 할 건 하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나 너무 무리한 일을 요구받지 않는 거. 그리고 지금 임금이 너무 적어요. 임금을 올리고 월급제로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처럼 한 집에 고정적으로 죽 갈 수 있으면 그나마 괜찮은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집에서 오지 말라고 하거나 거기서 계속 일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기거나 하면 갑자기 수입이 끊기는 거예요.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게 아니라 급여가 고정돼서 나오면 일거리 걱정 안 하고 내 몸도 좀 돌볼 여지가 생길 거 같아요. 그래야 꾸준히 건강하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요. 돌봄서비스란 게 집에서 하던 일인데 굳이 우리한테 비싼 비용을 줄 필요 있느냐고도 하는데, 집안일이라 해도 힘든 건 힘든 거거든요. 남자분들 중에 애 낳는 게 뭐가 힘드냐고 하는 분도 있지만,그런 분들도 직접 낳아보면 그런 소리 못 할걸요. 경험해보지 않고서 속단할 일은 아니에요.  


그리고, 너무 우리를 깔보지 않았으면 해요. 이것도 하나의 직업이고, 나라가 공인한 자격증 갖고 전문성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이게 ‘선생님’ 소리 들을 정도의 자격증은 아니라고 해도 공식 호칭은 ‘선생님’이 맞아요. 그런데도 “야, 어이, 거기 아줌마” 이러면서 반말을 하고, 하대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좀 있어요. 물론 꼬박꼬박 “오 선생님”이라고 존대하고 배려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요. 김치를 담그더라도 “너무 먹고 싶어서 부탁했는데 너무 고생했어, 미안해”이렇게 말 한마디라도 좋게 하면 저도 좋죠.   




*  <여성 재가 요양보호사의 산재안전망 경험에 대한 연구: 산업안전보건 및 산재보험 제도를 중심으로> 박고은. 2020, 『한국사회정책』, 27(3) 

** <요양보호사의 산업재해에 대한 소고> 최다솜, 2019 <공익과 인권>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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