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기류를 지나 순항하는 시간의 조각> 최영
어느덧 사계절을 다낭과 함께하고 있다. 이곳은 초겨울이지만 캐리어에 여름 옷을 집어 넣을 때마다 여름과 겨울을 넘나드는 것이 체감된다.
첫 다낭 비행에서는 같은 방 쓰는 선배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관광을 했었다. 막내 승무원을 챙겨주면서까지 함께 여행을 다녀주는 선배가 흔치 않다는 것을 많은 선배님들을 거치며 깨닫게 되었고, 그 선배님에게 아직도 많이 고맙다. 할로윈 장식을 꾸미느라 바쁜 직원들을 뒤로하고 홀로 에그반미를 먹으러 나섰다.
승무원들은 이곳을 흔히 경기도 다낭시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는 별명이라고 생각했으나, 매달 이 곳을 비행 오다 보니 언제나 묵는 이 호텔이 제 2의 집이 되어 있었다. 내 얼굴 만한 크기의 에그반미를 다 먹은 뒤 선배님들과 나눠먹을 것 하나 더 포장해서 호텔에 돌아왔다.
승무원들은 보통 *쇼업하기 4-5시간 전에는 잠시나마 눈을 감고 나온다. 어색하게 방을 나눠쓰는 선배님께 스몰토크로 인바 전에 잠은 잘 주뮤시는 편인지, 그렇다면 몇시에 주무실건지를 묻곤 한다. 오늘은 5시에 잠에 들어 9시에 일어나기로 선배님과 말을 맞췄다. 그러곤 다시 어색하게 각자의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잠에 든다.
다낭이라는 도시에서 한국인들은 귀족이나 다름없다. ‘신짜오’ 라고 인사해주며 호텔 정문을 항상 열어주고, ‘깜언’이라고 말하면서 택시 문도 열고 닫아주며, 조식 식사하러 갈 때에는 어떤 걸 마실 건지 물으며 친절히 에스코트해준다. 심지어는 영어보다 한국어가 더 잘 통한다. 대접받는 일이 점차 익숙해진다.
같은 방을 쓰는 선배 역시 적어도 이 방에서 만큼은 실세다. 후배가 문을 열어준 다음 버선발로 슬리퍼와 옷걸이를 침대 위에 세팅하는 동안 선배는 짐을 풀고 화장실에 가장 먼저 들어가 씻는다. 그동안 후배는 승무원 전용 무료 세탁물 신청서를 작성하고, 호텔 방문 앞에 세탁물을 놓는다. 다음 날 몇시에 일어나실 건지 조식을 드시는지 여쭤보고 선배의 사이클에 맞춰 행동한다. 물론 이는 선후배간의 암묵적인 시니어리티지만 점차 완화되고 있다. 이런 시니어리티를 선배들은 요즘 부담스러워 하고 미안해 하는 눈치다.
10월 29일 새벽 2시, 오늘도 다낭을 떠난다. 화초처럼 좌석에 심어진 승객들을 바라보며 이착륙하는 동안 일어서서 다치는 승객이 없도록 예의주시 한다.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지면 분주하게 식사 서비스와 면세품 판매를 위한 카트를 차린다. 카트가 두 번 지나가고 승객 휴식 시간이 도래헤서 객실 불빛등을 소등하면 비행기는 밤바다처럼 고요해진다.
그 고요함 속에 숨어 승무원들은 저녁 식사를 하고 안전 업무를 수행한다. 시간이 흘러 승객 하기 인사를 하다 보면 오늘도 무사히 착륙해서 집에 돌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출근과 동의어. 약속한 시간에 브리핑실 혹은 호텔로비에 모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