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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3 제주(CJU)

<난기류를 지나 순항하는 시간의 조각> 최영

by 최영 Mar 09. 2025


이미지 출처 pinterest




승무원은 가면을 쓰고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내는 직업이다. 아침을 깨어 몸을 일으켜서 무표정으로 집을 나서더라도 ’승무원 답게‘라는 가면을 쓰고 무도회장에 입장하듯이 공항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브리핑실에 들어서는 순간 환한 미소가 그려진 가면을 쓰고 반가운 척 연기를 시작한다. 어젯 밤 무슨 일이 있었더라도 오늘은 비행기를 오르는 승객에게 나의 감정을 보이지 않게 감사함이 그려진 가면을 쓰고 승객을 맞이한다. 가면을 쓰는 것은 승무원에게 있어 직업 정신이지만 이날 만큼은 가면을 손에서 놓치고 만다.


새벽 6시 40분 쇼업 일정이었다. 새벽 3시에 깨어났을 때 긴가민가했지만 왠지 모르게 몸이 좋지 않았다. 그때라도 병가를 냈어야 했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정신이 들기 시작했고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두통이 심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다른 항공사도 그러겠지만 쇼업 시간 3시간 이후에 병가를 내면 *Miss Flight 처리된다.


인간 체면을 다 집어 던지고 네발로 기어가고 싶을 정도로 아팠지만 없는 정신을 겨우 모아 잡고 브리핑실로 출근했다. 일하는 내내 나 좀 죽여달라고 속으로 외쳤다. 감사하게도 사무장님과 선배님들이 나 대신 승객들의 탑승권을 찍어주고 틈만 나면 쉴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그 따뜻한 마음들 덕분에 아파도 서럽지 않았다. 퇴근하자마자 얼른 병원가서 수액부터 맞으라는 사무장님 말씀과 함께 제주도를 왕복 2번 갔다 오는 포레그 일정이 꿈처럼 지나갔다.


비행기 커튼을 여는 순간, 동료들과 가벼운 수다를 떠는 순간 뿐만 아니라 지상을 떠 있는 모든 순간 주머니에 꽂아둔 가면을 쓰고 승무원 다운 내 모습을 연기한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연기를 해서 일까 우리는 좀처럼 서로에게 진심을 내비치기 힘들다. 언제나 내 주변 사람들에게 진심을 보이는 투명한 마음을 가진 내게는 정말 잘 만들어진 가면이 그래서 필요하다.  


*  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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